최초의 블랙리스트, 마담 나탈리

by 경계인

그녀는 언제나 자신만의 무대를 끌고 다니는 여자였다. 키는 작았으나 플랫폼 힐로 그 결핍을 보충했고, 늘 한쪽 어깨를 드러낸 옷차림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짧게 잘린 곱슬 머리카락은 다갈색으로 빛났고, 고양이 같은 눈은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되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나탈리.


나탈리가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올 때면 마치 누군가에게 쫓기는 사람처럼 서둘러 들어오곤 했다. 그러나 일단 발을 들이면 두 시간은 기본이었다. 그 시간 동안 그녀는 거울 앞을 떠나지 않았다. 거울을 향한 질문은 곧 나를 향한 질문이었고, 나는 그 곁에서 대답을 강요당했다. “뚱뚱해 보이나? 키가 더 작아 보이지 않니? 어깨는 충분히 드러났을까?” 그녀의 질문은 끝이 없었고, 대답은 언제나 함정이었다.

나는 속으로 그녀를 ‘나탈리스트’라 불렀다. 나르시시스트가 자신을 과잉 사랑한 자라면, 나탈리는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한 채 집요하게 파고드는 자였다. 사랑 대신 불만, 그러나 그 불만조차 그녀의 에고를 끊임없이 북돋우는 연료였다.


그녀는 가게 최초의 블랙리스트 손님이기도 했다. 옷을 사면 반드시 바꾸러 오는 여인, 물론 입은 흔적이 역력한 옷마저 태연하게 교환하려 했고, 피팅룸에서 위아래 망사 속옷 차림으로 가게를 활보하는 담대함을 지닌 그녀. 사장님도, 동료도, 나도 그녀 때문에 진저리를 쳤다.


그러던 어느 날, 나탈리가 한 벌의 옷을 사면서 말했다.


“오늘이 마지막일 거야.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거든.”


그 순간 나는 속으로 환호했다. 드디어 이 고난에서 벗어나나 싶었다. 그러나 그 희망은 오래가지 않았다. 몇 달 후, 그녀는 재취업 소식을 들고 다시 나타났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나탈리는 여전히 나탈리였다.


나는 결심했다. 이번에는 절대 그녀에게 옷을 팔지 않겠다고. 그래서 대답들을 정반대로 돌려놓았다.


“바지가 좀 작지 않아? 살 빼면 입을 수 있겠지?”


“아뇨, 길이도 너무 길고, 다이어트가 그렇게 쉽나요. 안 사시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이 드레스는 어때? 뚱뚱해 보여? 키가 더 작아 보이지 않아?”


나는 숨을 고르고 정직하게 말했다.


“네, 뚱뚱해 보이시고, 네, 작아 보이십니다.”


나의 태도는 노골적인 거부였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계산대 앞에 선 나탈리가 환히 웃으며 말한 것이다.


“재이, 난 네가 정말 좋아. 넌 정직해. 다른 가게는 전부 예쁘다, 잘 어울린다며 아첨만 한다고. 사장에게 꼭 말해야겠어.”


이쯤 되면 나는 장사꾼이 아니라 심리치료사였다. 게다가 환자가 치료비를 내는 게 아니라 옷을 환불하며 카운슬링을 받고 있었다.

솔직한 대답으로 쫓아낼 생각이었지만 돌아온 반응은 뜻밖이었다. 나는 어리둥절했다. 쫓아내려던 손님이 오히려 내 진솔함에 환호하다니. 기분 좋게 돌아선 그녀는 몇 주 후 다시 가게에 나타났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그녀를 몰아낼 방법이 없다는 것을. 그 뒤로 나는 태도를 바꿨다. 그녀를 손님이 아니라 이웃집 언니쯤으로 여기기로 한 것이다. 그러자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벼워졌다. 나탈리는 까다로웠지만 적어도 무례하거나 오만하지는 않았다. 내가 서툰 불어와 영어를 섞어 말할 때도, “괜찮아, 영어로 해도 돼. 나 미국에서 석사 했거든.”이라며 웃곤 했다. 그녀는 피곤한 손님이지만 미워할 수는 없는 사람이었다.


그녀와의 관계 속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혹시 내가 손님들 앞에서 너무 경직되어 있었던 건 아닐까. 실수하지 않으려 애쓰다 보니 작은 일에도 더 깊이 상처를 입고, 더 쉽게 지쳐버린 건 아닐까. 결국 나를 소진시킨 건 프랑스어가 아니라 나 스스로의 과잉 긴장이었는지도 모른다.

나탈리는 그것을 비집고 들어왔다. 그녀는 나를 비관에 빠뜨렸고, 동시에 이상한 방식으로 해방시켰다. ‘될 대로 돼라’는 태도는 나의 무장이 풀려나가는 최초의 경험이었다. 그녀 덕분에 나는 손님을 더 이상 손님으로만 보지 않게 되었다. 때로는 블랙리스트조차 은밀한 스승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달까.


그럼에도 그녀가 유리문에 나타나면 아직도 심장이 벌렁거린다. 인간은 늘 모순적이다. 싫어하는 사람을 보면서도 웃을 수 있고, 떨쳐내고 싶은 사람에게서 배움을 얻기도 한다.


얼마나 더 많은 나탈리들을 겪어야 비로소 이 나라에서, 내 나이의 사람으로 설 수 있을까. 여전히 나는 어른이 되려 안간힘을 쓰는 불완전한 어른아이일 뿐이다. 하지만 그 불완전함이야말로 내가 이 거리에서 새 삶을 시작하게 한 원동력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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