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에 출근하는 일상은 늘 비슷하다. 불을 켜고, 먼지를 털고, 커피를 마신다. 별일 없는 날들이 쌓이면 그것이 곧 '일'이 된다. 그런 평온 속에서 나를 깨우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다름 아닌 도둑들이다. 그들은 매너리즘을 부수는 일종의 촉매제다. 문제는 그들의 존재를 결코 환영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도둑의 얼굴에는 '나, 도둑입니다'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지 않다. 오히려 그들은 대체로 세련되었고, 옷차림도 품위 있었으며, 언변은 유창했다. 처음 만났을 땐 친절함으로, 그리고 떠날 땐 미소로 마무리했다. 나를 배신한 건 늘 그런 미소였다.
프랑스는 생각보다 많은 면에서 아날로그 국가다. CCTV는 드물고, 경찰은 느리며, 정의는 가끔 쉬고 있다. 한국의 CCTV 문화가 인간의 도덕심을 대신해왔다면, 이곳은 여전히 인간의 선의를 믿는 나라였다. 문제는 그 선의가 자주 절도범의 손에 들어간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나라의 도둑들은 놀라우리만치 낙천적이다. 어제 훔치고 오늘도 훔치며, 내일의 약속까지 훔쳐가는 자들. 말하자면 그들에게 프랑스는 무한한 기회의 땅이다.
몇 달 전, 내 가게에도 그런 '꿈 많은 자들'이 찾아왔다. 그들은 모녀였다. 세련되진 않았지만 어딘가 독특한 개성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그날의 나는 피곤했고 그들은 활기가 넘쳤다. 그 활달함이 친근하게 느껴진 건 순전히 내 착각이었다.
그들은 가게를 둘러보며 여러 번 웃었고, 나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그 말들이 내 경계를 녹여 버릴 만큼 따뜻했다는 사실이 지금은 참 역설적이다.
그들이 떠나고 나서야 나는 이상한 공기를 느꼈다. 옷걸이에 걸려 있던 옷 여러 벌이 사라져 있었다. 대신 공중에는 낚싯줄 고리만이 덩그러니 매달려 있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이 하얘졌다. '무(無)'의 시간. 나중에야 그 단어를 떠올렸다. 아무런 감정도, 분노노, 심지어 공포도 없는 공백. 그리고 곧이어 번개처럼 한 가지 사실이 머리를 쳤다. 그들은 돌아온 것이다. 몇 달 전, 나를 속이고 800유로어치의 옷을 훔쳐간 그 모녀가, 부푼 꿈을 안고 다시 돌아온 것이다.
"Regardez derrière!" "뒤를 봐!"
그들이 내게 했던 마지막 말이었다. 나는 바보처럼 뒤를 돌았고, 그 짧은 순간이 내 인간애를 산산조각 냈다.
그들이 집시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그저 옷차림이 자유롭고 액세서리가 화려한 개성 있는 손님이라 여겼을 뿐이다. 그때의 나는 순진했다. 사람은 외모로 판단하면 안 된다고 믿었고, 의심은 부끄러운 일이라 여겼다. 그러나 이곳에서 몇 번의 도둑을 겪고 나서야 깨달았다. 의심은 예의의 반대말이 아니라, 생존의 동사라는 걸. 사람을 믿는다는 건 어쩌면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는 그날 내 판단력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인간애보다 더 뼈아픈 손실이었다.
한국에 있는 사장님께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 그녀는 잠시 침묵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할 수 없지 뭐. 옷걸이가 너무 아깝다. 그 옷걸이 지금은 구하기 힘든 건데..."
그 말이 너무 담담해서 웃음이 터질 뻔했다. 옷걸이가 아깝다고? 그 옷걸이는 이제 상실의 상징이 되었다.
나는 화가 났다. 감정이 폭발하면 일단 움직여야 했다. 그래서 경찰서로 향했다. 걸어서 갈 수도 있었지만, 분노는 언제나 과시적이다. 나는 택시를 탔다. 파리의 도로는 언제나처럼 막혀 있었다. 분노의 온도가 점점 떨어져 갔다.
경찰서에 도착했을 때, 경찰관은 심드렁하게 물었다.
"무슨 일이죠?"
"가게에서 도둑을 맞았어요."
"얼마 나요?"
"800유로 정도요."
그제야 그는 나를 사람처럼 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여기서는 그런 사건 안 다뤄요. 다른 경찰서로 가세요."
순간 나는 믿을 수 없었다. 도둑을 맞았는데 그 도둑을 찾지 않는 나라. 신고를 하러 왔는데 신고가 접수되지 않는 나라. 그는 심지어 내 불어가 괜찮다며 웃었다.
"당신 불어 잘하네요!"
미친 게 아닐까. 그 짧은 순간 나는 그와 나 사이의 문명이 다른 곳에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다시 택시를 탔다. 이번엔 체념이 동행했다. 새 경찰서에서 내 이야기를 들은 경찰관은 이렇게 말했다.
"신고는 사장만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사장은 한국에 있어요. 제가 직접 일을 겪었어요."
"그래도 안 돼요. 규정이에요."
규정. 이 나라가 무너져도 끝까지 남을 단어였다. 결국 나는 아무 소득 없이 가게로 돌아왔다.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도둑이 훔쳐간 건 옷 몇 벌이 아니라 나의 인간에 대한 믿음이었고, 경찰이 돌려준 건 허무였다.
이 나라의 정의는 느리다. 느림은 종종 관용과 혼동된다. 그들의 정의는 "살인사건이 아니라면 굳이?"의 형식으로 존재한다. 시위대는 진압하지만 도둑은 방치한다. 그건 이상한 일 같지만 어쩌면 더 인간적인 일일지도 모른다. 완벽한 정의는 피곤하다. 느슨한 정의는 삶을 견딜만하게 만든다.
가게로 돌아와 문을 닫았다. 텅 빈 옷걸이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셨다. 그날 이후, 나는 사람을 조금 덜 믿기로 했다. 집시 모녀는 나의 인간애를 부쉈지만 그 잔해 위에서 나는 새로운 질서를 배웠다. 이곳에서는 정의보다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모든 일에는 반드시 "그럴 수도 있지"라는 문장이 따라붙는다는 것. 어쩌면 그게 프랑스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나는 여전히 가게에 앉아 있다. 오늘도 문을 열면 어제와 비슷한 얼굴들이 들어온다. 그중엔 도둑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알겠다. 도둑은 사람의 얼굴을 하고 오고, 경찰은 웃음으로 응답하며, 나는 그 사이에서 여전히 살아간다. 가끔은 분노하고, 가끔은 체념하고, 그 모든 감정을 합쳐 '삶'이라 부르는 연습을 나는 여전히 계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