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윈도 닦으세요, 무슈 호베르

by 경계인

프랑스의 겨울은 비로 시작된다. 여름에 비가 콸콸 쏟아지는 한국과는 반대인 셈이다. 하지만 한국과는 그 양상이 조금 다르다. 늘 구름이 끼어 흐리고, 비는 부슬부슬 내리다 말다 반복하는 형태로 겨울의 끝까지 지루하게 이어진다. 이러니 우산을 쓰는 것보다 대충 모자를 뒤집어쓰고 다니거나 아예 비를 맞는 사람도 많다. 나도 그중 하나다.

세차게 비가 쏟아지면 시원하다는 감탄사라도 내뱉겠지만 파리의 비는 그렇지 않다. 샤워기에서 물을 흩뿌리듯 내리다가, 간혹 세찬 비와 함께 우박이 후두둑 떨어진다. 그런 날이면 프랑스인들의 예민하고 변덕스러운 기질이 약간은 이해된다. 길고 지루한 겨울을 살다 보면 몸 안에 곰팡이가 피어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곳 사람들이 해만 나면 옷을 벗고 햇볕 아래로 뛰쳐 나가는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다.


북향으로 앉은 가게에서 겨울을 나는 일은 쉽지 않다. 동굴처럼 길게 뻗은 가게는 해가 들지 않고, 백 년이 넘은 석조건물이라 핸드폰 신호도 약하다. 대체 나는 지금 몇 세기를 살아가고 있는걸까.


'가위 갈아요', '쇼윈도 닦아요' 아저씨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도 비슷한 기분이었다. 요즘 세상에도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있다니 놀라웠다. 어느 날 사장님이 말했다.


"쇼윈도가 지저분할 땐 이분께 연락하면 돼. 끝나면 5유로 드리면 되고."


그렇게 알게 된 사람이 바로 쇼윈도를 닦는 호베르 아저씨였다.


파리의 비내리는 겨울에도 해가 잠시 반짝 드는 날이 있다. 그런 날에는 가게 쇼윈도가 아주 가관이다. 수많은 빗방울과 손자국이 얼룩처럼 남아있다. 그럴 때면 어김없이 호베르 아저씨에게 전화를 건다.


"무슈 호베르, 오늘 가능하세요?"


"물론이죠. 지금 다른 가게 닦고 있는데, 오후에 들를게요."


얼마 지나지 않아 아저씨가 나타난다. 사장님과 아주 반갑게 비주를 한다. 나이를 가늠하기 힘든 아프리칸의 얼굴. 프랑스에 와서 살다 보니 아시아 사람들만 동안인 게 아니라 아프리카 사람들도 만만치 않게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저씨 손에는 커다란 플라스틱 물통과 자루걸레, 등에는 세제가 든 가방을 멨다. 아저씨는 말없이 유리창을 꼼꼼히 닦는다. 쇼윈도의 바깥면과 안쪽, 그리고 거울까지 닦으면 일이 끝난다. 나는 구겨진 5유로 지폐를 반듯하게 펴서 건넨다. 일의 대가로 드리는 돈인데도 왜 그렇게 쑥스러운지 모르겠다. 어쭙잖은 동정심이 내 안에 깃드는 순간이 가장 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더 밝은 목소리로 "메르시, 무슈 호베르!"하고 말한다. 역시나 나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사장님처럼 아저씨와 비주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다른 프랑스 사람들처럼 볼을 스치듯 맞대는 인사가 아니라, 호베르 아저씨는 찐하게 볼에 입을 맞춘다. 나는 뒤돌아서서 옷깃으로 슬쩍 그 자리를 닦는다. 이렇게 뜨겁고 정 많은 인사는 우리 시할아버지 이후 처음이었다.

아저씨는 프랑스의 해외 영토, 과들루프 출신이었다. 길게 땋은 드레드 머리에 노랑, 초록, 검정이 섞인 머리끈을 하고 있어 나는 자메이카 사람인 줄 알았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아니, 과들루프야."


쉰다섯 살쯤 되어 보였지만 실제로는 예순이 넘었다. 그래서 이 일을 아들에게 물려줄 계획이라고 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떻게든 자식 공부시켜 좋은 대학 보내고, 안정된 직장을 찾아 남들처럼 사는 걸 보는 것이 부모들의 공통된 바람일텐데, 가게 쇼윈도 닦는 일을 물려주겠다니.


가게에 앉아 있으면 하루에도 몇 번씩 물통과 자루걸레를 든 아프리칸 남자들이 유리창을 두드리며 지나간다. 대부분 프랑스어가 서툴러 알아듣기 힘들지만, "10유로, 아니 7유로, 5유로..." 혼자서 흥정을 하거나 가게에 손님이 있든 없든 "어이!"하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그럴 때면 난 놀라면서도 묘하게 서글프다. 어이, 라는 말은 만국 공통어 같았다.

하지만 호베르 아저씨는 달랐다. 손에 물통과 자루걸레를 들고 거리를 다니긴 하나, 다른 사람들처럼 그는 유리창을 두드리지 않았고, 억지로 닦겠다고 조르지도 않았다. 아저씨는 품위가 있는 편이었다. 그의 품위 덕에 퐁토슈 가의 상점들이 그에게 일을 맡겼다.


그런 그가 어느 날 말했다.


"아들도 곧 시작할거야. 내가 이 일을 물려줄 거거든."


그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내가 믿어온 가치와 성공의 기준이 통째로 흔들렸다. 그러나 그 순간 깨달았다. 그에게 이 일은 생계의 수단을 넘어 삶의 방식이기도 했다. 자신의 손으로 세상을 조금씩 깨끗하게 만드는 일. 그 일에 부끄러움은 없었다.

한편 다민족 국가인 프랑스의, 특히 다양하고도 많은 이민자들이 몰려 있는 파리에서 내가 그동안 보아왔던 건 극히 일부의 삶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연히 유럽은 백인들이 산다는 착각,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선진화되어 있다는 오해, 그럼에도 이들이 이민자와 어려운 사정으로 몰려온 난민들을 대하는 방식을 보면서 인간애란 이런 거구나 하고 느끼기도 했다.


호베르 아저씨를 동정하고, 그의 결심에 내 잣대를 들이대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어쩌면 나는 삶을 살아가는 방법을 이곳에서 모조리 새로 배워야만 하는 걸지도 모른다. 마음에 혐오의 씨앗이 자라지 않도록, 동시에 나 또한 이민자임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무수한 작은 것들을 더 많이 사랑하자고도 말이다.


가게 유리창을 닦는 그 자루걸레의 반복된 움직임을 보고 있으면 그것이 일상이자 기도가 되는 것 같았다. 비 내리는 파리의 겨울 속에서 호베르 아저씨는 얼룩을 닦고, 나는 내 마음의 먼지를 닦고 있었다.



*비주: 볼에 하는 키스,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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