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때에는 자잘한 사건사고 하나 없이 조용한 날들이 이어지기도 했다. 마치 시간이 공기처럼 느리게 흘러가는 계절. 패션위크가 지나고, 거리의 조명이 꺼지고, 밤의 길이가 발목까지 늘어날 때쯤이면 파리의 공기는 다시 눅눅해진다.
센 강변엔 여름의 잔재가 흩어져 있다. 춤바람이 지나간 자리엔 식은땀 냄새와 공허가 남고, 사랑과 사기와 약속과 배신이 한데 섞여 한 계절의 열기가 길게 늘어진 밤의 자락 속으로 가라앉는다. 그런 계절이면 사람들의 얼굴은 조금 더 마르고, 표정은 조금 더 단단해진다.
길 위엔 배고픈 개와 추운 노숙자가 함께 앉아 있다. 집이 있는 자와 없는 자 사이의 간극이 한 뼘씩 더 벌어진다. 빛과 어둠의 경계가 분명해지고, 그 사이에서만 살아남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이 파리의 겨울이다. 잔혹하고 아름답고 완벽하게 무심한 계절.
그 겨울의 한가운데서 퐁토슈 가의 늙은 개 이네스는 마지막 계절을 맞았다. 몇 안 남은 이빨이 빠지고, 발톱이 통째로 떨어졌다. 다니엘 아저씨는 이네스의 발에 붕대를 감고 그 위를 개 배변봉투로 덮었다. 어설픈 응급처치였지만 아저씨만의 사랑의 마지막 형식 같았다.
이네스는 먹지도 못할 비스킷을 물고 여전히 사람에게 꼬리를 흔들었다. 마치 "나는 아직 사랑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런 집요한 생의 의지를 보며 나는 가끔 인간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한편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다니엘 아저씨는 그토록 소중한 개를 그렇게 방치하는 걸까. 빗물과 먼지에 뒤섞인 털. 그 모습은 사랑이라기보단 체념에 가까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알게 되었다. 그건 방치가 아니라 포기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고. 사랑이 끝에 다다르면 우리는 가끔 손을 놓는 방식으로만 그것을 이어간다. 이네스는 그 손에서 놓여난 채, 끝까지 다니엘 아저씨 곁에 있었다.
열다섯의 이네스는 빠르게 달라져갔다. 이네스의 털은 엉키고 눈은 아예 생기를 잃었다. 그 눈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단 하나의 색도, 감정도, 생명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불투명한 검은 공간, 아무것도 담지 않은 깊은 어둠. 나는 그 어둠 속에서 처음으로 '죽음'을 어렴풋이 이해했다. 죽음이란 건 단순히 삶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빛이 천천히 빠져나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고.
오래전 부모님이 키우시던 개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며칠을 울었다. 눈이 부을 만큼 울고 또 울었다. 잘해주지 못한 일들이 떠올랐고, 다신 해줄 수 없는 일들이 마음을 후벼 팠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건 개를 위한 슬픔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슬픔이었다. 개는 이미 아픔에서 벗어나 있었고, 내가 울던 시간은 결국 내 상실을 애도하던 시간이었다. 내 개가 죽고 몇 년이 흐르자 소중했던 개의 존재감은 하나의 커다란 덩어리로 마음에 남았지만, 그 개와 함께했던 많은 기억들이 알록달록한 셀로판 상자에 쌓여 점차 그 투명성을 잃어갔다. 시간은 사건을 희석시키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이네스는 그 해 겨울, 세상을 떠났다. 작고 까맣고, 늘 누더기 같던 그 개는 그렇게 사라졌다. 그리고 그날, 다니엘 아저씨는 새 강아지를 데려왔다. 이네스의 죽음을 통보받은 지 불과 몇 시간 후였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슬픔은 멀리서 천천히 다가오는 줄 알았는데 그에게는 애도할 시간조차 사치인 듯했다.
"개가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어."
아저씨는 담담하게 말했다.
"개가 없으면 밖에 나가지 않아.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않게 돼."
아저씨의 얼굴에서 절대적인 고독을 보았다. 그에게 개란 단순히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세상으로 통하는 유일한 문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후로 아저씨는 나를 피했다. 길에서 마주쳐도 눈을 피했고, 더 이상 비주도 하지 않았다. 나는 아저씨가 새로운 개를 안고 걷는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그의 그림자 곁에서 새 개의 앙증맞은 다리가 바쁘게 움직였다.
나는 사랑에도 여러 형태가 있다는 것을 느리게 이해하게 되었다. 외로움을 잘 타지 않고 고독을 즐기는 내가, 반대로 그것들이 몹시 견디기 힘든 사람들의 마음을 한 번도 깊이 들여다보려고 했던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개가 없으면 죽을 것 같다는 다니엘 아저씨의 말도, 그게 얼마나 절박한 마음인지 알게 되는데 시간이 걸렸다.
냄새가 나고 털이 엉망이어도 이네스는 아저씨와 한시도 떨어진 적이 없었다. 우리가 멋대로 선택한 이 생명들에게 가장 잘해줄 수 있는 일은 함께 있는 것 아닐까. 그게 비록 아저씨 자신을 위해서든 아니든 간에 이네스는 행복한 개였을 것이다. 퐁토슈 가의 터줏대감 이네스는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지루하고 축축한 날들이 지속되었다.
겨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