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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nna 정연주 Jan 13. 2019

빨간 사랑을 했던 네게

       모든 것을 버리고 싶었단다. 사랑받지 못한다 생각했단다. 정확히는 그와 아직 살을 맞대고 싶어 좋아하는 건 아닌가 미련이 남았던 것 같기도 하단다. 더 정확히는 제게는 '신경 쓰이는' 사람인 상대가 더 이상 마음이 없음을 하루하루 깨닫는 시기였단다. 헤어지는 방향에 서 있었음에도 헤어지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는 서로가 한심하기도 했단다.  일주일을 울며 불며, 음악을 듣든, 드라마를 보든, 영화를 보든, 그 무엇을 하든 가슴이 미어지고 아팠고 우울했단다. 그 와중에도 자기와 연결된 사람들, 충격을 받을 사람들, 자기가 감히 생각할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큰 아픔을 겪게 될 사람들을 생각하며 참았단다. 뭘 참았냐고 묻는 따위의 조급함을 드러내지는 않았으나 적지않게 놀랐다.  평소 '빨간 색'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그녀가 했던 깊은 사랑 후에 찾아오는 더 깊은 이별 후유증을 앓았으리라 짐작해 말을 아끼며 듣기만 했다. 시간이 흐르며 어찌됐든 희미하게 웃을 수 있었단다. 그런 중에도 '신경 쓰이는', '하찮은' 그의 톡을 받으면 아픈 중에도 잠시 살아나는 것을 느끼며 웃음이 묻어나는 화가 솓구쳐올랐단다. 그렇게 처음에는 허우적거리는 감정을 다잡으려 잠시 책을 들었단다. 이 책 저 책 들쳐보다 그저 빨간 색에 이끌려 아주 무심코 <이동진 독서법>을 읽기 시작했단다.

       "이 사람 말야, 책 읽는게 그렇게 즐겁단다. 세상 그 무엇보다도 즐겁대. 난 이렇게 복잡한 마음인데 단순히 책 읽는게 그렇게 즐겁단다. 배가 아프더라. 이렇게 우울할 일이 아니다 싶어졌어. 책읽기가 즐겁다는 얘기하며 이렇게 희희낙낙하며 인세로 돈까지 왕창 벌어들일 사람 앞에서 내가 이렇게 아파하고 우울해하고 이런게 더없이 초라했다."

      그게 그럴 일인가, 그가 뭐라고 그럴 일인가. 가슴이 여전히 꽉 막혀있지만, 아주 무심코 든 책에서 아주 의도치 않은 방법으로, 아주 어이없이 초라한 자기를 발견하고 아주 황당해 오히려 주먹을 쥐었단다. 그게 뭐라고, 그가 뭐라고.


    시인 이상을 소재로 한 뮤지컬 <스모크>를 기다리며 대명문화공장 윗 층 김밥집에서 얼마 전 실연을 한 친구가 툭 던진 이야기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너를 데려와 이 작품을 보여주게 되서 다행이다 싶었다. 친구야, 네가 오늘 무대에서 만날 초, 해, 홍이라는 인물들이 있을거야. 네가 사랑으로 아파했을 때, 네가 그 앞에서 자존감을 잃어가고 있을 때, 네 안에서 살아가고 있을 초, 해, 홍 세 인물들도 또 다른 의미의 엄청난 몸싸움을 벌였었겠구나. 책을 읽다 네가 더없이 초라했었다고 했지? 그래, 넌 그 누구보다도 너 자신을 지독하게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느낄 수 있었던 초라함이었을거야. 이 공연을 보고는 그 초라했다는 마음조차 툴툴 털고 날아오를 수 있으면 좋겠다. 내가...

그랬었거든.


우리가 "얼마나 더 먼 길을 가야" 우리 "꿈에 다다를까"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우리,  "날자 날자 날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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