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브리나 Jul 13. 2016

매일매일 성실하게 글을 쓴다는 것

무라카미 하루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고민할 것도 없이 집어든 하루키의 에세이 <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300페이지가 넘는 결코 얇지 않은 두께임에도 불구하고 이틀만에 금세 다 읽었다.
그의 소설은 처음 접한 <해변의 카프카>와 <1Q84>가 기대보다 별로였어서 그런지 많이 읽지 못했는데 에세이만큼은 나오는대로 거의 다 읽었던 것 같다.
지금은 이야기가 다 섞여서 어떤 이야기가 어떤 책이었는지 기억도 안나지만, 읽는 그 순간만큼은 정말 재밌게 편안하게 잘 읽었던 기억 뿐이다.





그가 이번엔 작가로서의 자기 이야기를 가지고 왔다.
어떻게 소설가가 되었는지,
본인이 생각하는 소설가란 어떤 직업인지,
어떤 소설을 어떻게 쓰는지,
본인은 주로 어떤 방법으로 소설을 쓰는지 등에 대해 세세하고도 솔직하게 풀어내고 있다.

하루키의 에세이는 보통 플래그잇을 붙일 것도 없이 그냥 쭉쭉 읽고 끝내는 편인데,
이번엔 유난히도 인상 깊은 부분이 많아서 그 혼잡한 전철 안에서 플래그잇 붙이느라 엄청 유난을 떨었다 ㅋ
(플래그잇이 없을 땐 보통 핸드폰 카메라로 페이지를 찍어두는 편인데, 그 역시도 너무 번거로워서 아예 가방마다 플래그잇을 하나씩 넣고 다니고 있다)



겉표지를 벗기면 이렇도록 깔끔한 알맹이가 :)


하루키는 일본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팬을 보유한 베스트셀러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문학계에서는 그를 별로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기사인지 평론인지를, 일본 사이트에서 본 적이 있었다.
그 때는 나도 그의 소설이 그렇게 재밌다고 생각되지 않았었기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었는데,
그도 그 반응을 무시할 수는 없었나보다.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하지 못한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그가 그 부분에 대해 뭔가 반론이라도 하고 싶었으리라.
아쿠타가와 상은 아주 유명한 상이긴 하지만, 그 수상작들이 다 재밌고 높은 작품성을 자랑하는지는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일년에 두번이나 주는 (원서를 매달 사서 보지 않는 내게는 그 일년에 두번이라는 횟수도 엄청 자주였다.)신예 작가들이 받는 상.
왜 그렇게 유명한지는 나도 모르겠지만, 어쨋든 나 역시도 하루키가 당연히 이 상을 받았겠거니 했었다.
근데 그 상을 받지 못한 게 본인은 정말 아무렇지 않은데, 주변에서 어설프게 건네는 위로가 참 곤역이었다고 한다.
문학상이라는 것에 대한 하루키의 생각은 이렇다.


새삼스럽게 말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후세에 남는 것은 작품이지 상이 아닙니다. 이 년 전의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을 기억하는 사람도, 삼 년 전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기억하는 사람도 이 세상에 아마 그리 많지는 않을 것입니다.
당신은 기억하십니까?
하지만 한 편의 작품이 진실로 뛰어나다면 합당한 시간의 시련을 거쳐 사람들은 언제까지나 그 작품을 기억에 담아둡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노벨 문학상을 탔는지 안 탔는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가 노벨 문학상을 탔는지 안 탔는지, 그런 것에 대체 누가 신경을 쓸까요? 문학상은 특정한 작품을 각광받게 하는 건 가능하지만 그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지는 못합니다.
...
내가 진지하게 염려하는 것은 나 자신이 그 사람들을 향해 어떤 작품을 제공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뿐입니다.




하루키가 생각하는 소설가로서 필요한 항목은 다음과 같다.

- 소설을 쓰고 있을 때, 당신은 즐거운가
- 한 권이라도 더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 닥치는 대로 읽을 것.
- 자신이 보는 사물이나 사상을 세세하게 관찰하고, 실제로 내 손으로 글을 많이 써볼 것.


그는 우연히 주방 식탁에 앉아서 첫 소설 <바람의 소리를 들어라>를 썼고, 그게 운 좋게도 군조상을 받았고, 그래서 소설가의 길로 접어든 만큼,
뭔가 본인에게 굉장한 천재적인 감각이 있지는 않다고했다.
다만 그는, 하루에 하기 싫든 좋든 정해진 분량만큼 글을 썼으며 꾸준히 쓰고, 조언을 받아들여 수없이 고쳐쓰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성실함이 만들어낸 대작가였다.




어림 반푼 어치도 없는 소리같긴 한데,

웬지 그의 글을 읽다보니 나도 소설을 쓸 수 있을 것만 같은 희망(?)적인 희망이 어찌나 스물스물 올라오던지,
퇴근길에 작정하고 노트랑 펜을 살 뻔했다.

누구나 소설가가 될 수는 있지만, 누구나 대단한 소설가가 될 수는 없다는 게
그의 글을 읽기만해도 이렇게 오롯이 깨달아지는구만 그런 생각이 자꾸 드는 내 자신이 스스로도 웃겼다.
(사진집을 보다보면 사진을 찍고 싶고 동화책을 보다보면 동화작가도 되보고 싶은 나니, 뭐 무리도 아니겠다 ㅋㅋㅋㅋ)

하지만 이 책을 다 읽고 느낀 분명한 생각은,
작가는 될 수 없을 것 같지만 정말 더 많은 책들을 읽고 싶어졌다는 것이다.



만일 책이라는 게 없었다면, 만일 그토록 많은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내 인생은 아마 지금보다 훨씬 더 썰렁하고 뻑뻑한 모습이 되었을 것입니다.
즉 나에게는 독서라는 행위가 그대로 하나의 큰 학교였습니다.
그것은 나를 위해 설립되고 운영되는 맞춤형 학교고, 나는 거기서 수많은 소중한 것들을 몸으로 배워나갔습니다.
나는 커다란 '제도'안에 포함되어 있으면서도 책을 통해 그러한 나 자신만의 별도의 '제도'를 멋지게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마음을 움직이는 글쓰기의 비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