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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그라피 시작하기 : 필기구

소소하게, 그렇지만 초라하지는 않게 캘리그라피 시작하기

by 츤데레

캘라그라피를 시작한 지 어느덧 1년 반 정도가 되었다. 틈틈이 하나하나 사 모으다 보니, 제법 도구도 다양해지고 많아졌다. 지인의 추천을 받아, 블로그 구경을 하다가, 서점에서 구경하다가, 혹은 인스타그램을 보고 혹 해서 하나씩 사기 시작한 것들이 산을 이루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장비는 필요하지 않다. 필요하지 않다기보다는, 장비가 많으면 안 좋다. 내가 스스로 생각해본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장비병에 걸려서 쓸데없이 수집에만 치중한다.

2. 그러다 보면 필요 이상의 돈을 쓰고 지친다.

3. 장비에 신경 쓰느라 정작 필요한 연습에는 소홀해진다. (어느 장비도 사기만 했지, 잘 못쓰는 상태)


그래서 가장 좋은 방법은 오프라인 매장이나 캘리그라피를 하는 지인에게 몇 가지 도구를 빌려서 직접 써보고, 본인 스타일에 맞는 도구만 마련하여 그걸 중심으로 연습하는 게 좋다. 그러다가 익숙해지면 다른 필기구도 써보고, 잉크도 써보고, 종이도 바꿔보고.. 그때 가서 하면 될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펜, 만년필, 붓펜, 딥펜, 마카 정도를 사용해보았다. 지금까지 써 본 걸로는 딥펜이, 그중에서도 Steno 펜촉이, 가장 잘 맞는 것 같다. 잉크는 이로시주쿠의 제품이 제일 달라붙는 기분이고, 종이는 Fabriano의 250g/㎡ 짜리 수채화용 듬직한 종이가 좋다.


1년 반 동안 정말이지 이거 저거 많이도 사 모았다..


이런 식으로 캘리그라피를 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필기구, 잉크, 종이 등을 찾는 것이 좋다. 내가 겪은 시행착오를 조금이나마 덜 겪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정말이지 솔직한 추천 혹은 입문 가이드에 대해 써보고자 한다. (1편은 필기구, 2편은 종이와 잉크에 대해 다룰 것이다.) 약간의 주관이 가미되어 있지만, 이번 글은 거의 설명문 느낌일 듯하다.


좌측부터 펜(유니볼 시그노), 만년필(라미), 붓펜(쿠레타케), 딥펜(스테노 펜촉), 네임펜(모나미)


정말이지 다양하다. 거창하게 말해서 캘리그라피이지, 쉽게 말하면 그냥 글씨를 자신의 스타일로 표현하여 쓰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흔히들 쓰는 연필, 마카, 펜, 만년필, 붓펜, 딥펜을 시작으로 진짜 붓을 쓰는 사람도 있고, 나무젓가락에 잉크를 찍어서 거친 느낌을 살리고자 하는 사람도 있다. 결론적으로는 글씨를 쓸 수 있기만 하면 되긴 해서, 뭔가를 묻혀서 음영을 보여준다면 거의 모든 것이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장소가 어디든 상대적으로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고, 흔히들 캘리그라피라고 하면 연상되는 필기구인(그리고 내가 주로, 자주 쓰는) 펜, 만년필, 붓펜, 딥펜 정도를 여기서는 다루고자 한다.


대충 이러한 느낌으로 각자의 필기감을 가지고 있다.


1. 펜

가장 단순하고 익숙한 종류의 필기구이다. 개인적으로는 선명하고 미끄럽게 쫙- 그어지는 느낌을 선호해서 Mitsubishi Uniball Signo의 0.38mm 펜을 많이 쓴다. 필기를 빼곡하게 하던 고등학생 시절부터 써오던 펜이라 캘리그라피를 입문하면서도 가장 처음 쓰게 되었다. 가장 다루기 쉬우면서, 본인만의 폰트 및 필체를 반복적으로 연습하기 쉬운 장비 같다. 어디서든 쉽게 구매할 수 있고, 종이의 퀄리티도 잘 안 타기에 접근성도 매우 뛰어나다.


2. 만년필

펜으로 조금 익숙해진 다음에는 선물 받은 라미 만년필로 넘어갔다. 펜보다는 잉크 조절이 어렵다는 단점이 있지만, 손에 익으면 좀 더 부드러운 필치를 표현해낸다. 슥슥 부드럽게 그어지는 필기감이 예술이다. 다만 펜보다는 종이를 가리는 바람에, 얇은 종이의 경우에는 쉽게 번지고 거미줄 모양의 자국을 남기기도 하니 주의! 다만 어디 제품을 쓰느냐에 따라서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참고로 파이로트 펜촉 기준으로 EF-F-SF-FM-SFM-M-SM-B-BB-PO-FA-WA-SE-C-MS 순으로 두껍다.)


별 차이 없어보이지만, 막상 써보면 차이가 좀 큽니다.


3. 붓펜

캘리그라피 용도로 가장 많이들 쓰는 쿠레타케의 붓펜을 사용한다. 인터넷을 검색해도 쉽게 살 수 있고, 급하다면 핫트랙스 같은 대형 문구점에서 살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22호와 24호 붓펜을 가지고 있는데, 22호가 더 세필로 섬세한 표현이 가능하다. 주변에 캘리그래피를 붓펜으로 한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22, 24호는 둘 다 가지고 있으니, 무난한 제품군이라고 할 수 있겠다.


붓과 같은 느낌을 굳이 먹을 갈지 않고도 표현할 수 있으니 편리하고, 잉크가 소진되면 펜의 뒷부분을 리필 카트리지를 교체하여 쓸 수 있다. 게다가 조심스럽게 붓 모가 닳지 않게 쓰면 오래 쓸 수도 있다. 붓의 느낌을 좋아한다면 참 장점이 많은 제품이다.


종이에 따라 딥펜과 만년필은 거미줄을 남기며 번지기도 한다. 그래서 종이까지 신경써야하는 녀석들이다.


4. 딥펜

개인적으로 최애 필기구이다. 사각사각 적어가는 필기감도 좋고, 약간 귀찮을 때도 있지만 잉크에 찍어가면서 쓰는 동작도 참 감성적이다. 그리고 필압에 따라서 굵기를 자유자재로 조절 가능하여 다양한 표현도 가능하다. 잉크만 바꾸면 다양한 색을 골라가면 쓸 수 있는 것 또한 매력일 것이다.


다만, 펜촉(종류가 많기는 한데.. 그래도 Steno 펜촉 하나면 충분하다는 게 일단의 결론)도 펜대도 다양하고 잉크도 브랜드별로 색깔별로 너~~무 많고 다양하고 복잡하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잉크를 많이 품는 펜이고 조금만 필압이 변해도 잉크가 콸콸콸.. 할 수 있으니 종이 질에 따라서 번지기도 잘 한다. 또 필압에 따른 표현력이 장점인 만큼, 단점도 그것인데.. 그만큼 익숙해지기 어려운 장비이다. 그래도 그만한 매력이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가장 많이 사용하는 필기구이다. 신중하게 사각거려야 하는 딥펜의 매력에서 아직도 헤엄치고 있다.


5. 네임펜 및 마카

국산으로는 모나미 제품이 가장 흔하고 쉽게 구할 수 있다. 조금 앙증맞거나 직선을 표현할 때 개인적으로 많이 쓰는 편이다. 이런 느낌의 필기구를 사용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지그펜을 써서 다양한 색감을 감성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필자는 잘 사용하지 않는 도구이다. (#개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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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그라피에 대해 처음 입문하던 때의 연습 노트. 그땐 잡히는 필기구를 가지고, 보이거나 들리는 대로 이거 저거 적어보며 연습했다. (지금 보면 다소 부끄러운 수준이지만)


1년 반 넘는 시간 동안 캘리그라피를 하면서 사용해본 필기구들을 중심으로 개략적인 소개를 하였다. 아무래도 필기구는 개인의 취향이 절대적인 만큼, 아무래도 몇 번이라도 써보고 본인에 맞는 장비에 집중하는 게 제일 좋다. 다만 장비가 걱정되고 주변에 도와줄 사람이 없다면 핑계 대지 말고 일단 뭐든지 가지고 써보자.


그래서 주변에 그냥 가지고 있는 펜이나 연필로 '일단' 시작해보는 걸 추천한다.

캘리그라피란 그저 스스로의 글씨를 쓰는 것일 뿐, 캘리그라피가 그리 거창한 것은 아니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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