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하는 말은 내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님을 알아가기에
어릴 때부터 나는 '말을 잘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어른들도 나를 좋아했고, 친구들은 나랑 노는 것을 재밌어 했다. 처음 만나건, 오래 본 사이건 나를 어색해 하는 사람도 없었다. 인기가 많은 스타 느낌의 사람은 아니었지만, 어딜 가던 자연스럽게 분위기에 녹아드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래서 내가 정말로 말을 잘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말을 잘 한다고, 표현력이 좋다고 하는 것을 그저 칭찬으로 흘려들었다.
하지만 서른에 가까워 지는 요즘 드는 생각은 나는 말을 잘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는 그저 표현이 화려하며 유려한 말솜씨를 지닌 약간 유머러스한 사람일 뿐이었다. 특히 유머러스하다고 생각되는 측면은 내가 생각하는,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장점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는종종 공격적이어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나 자신을 혹은 누군가를 희화화하면서 다수에게 재미를 주기도 하였던 것이다. '내가 밴담도 아닌데 너무 공리주의적(?)으로 생각해서 말한게 아닐까?' 하고 후회되는 말도 많이 했다. 그만큼 그저 다수가 재밌으면 된다고 쉬운 합리화를 하기도 했으니 말이다.
너무 뻔하고 흔히들 하는 이야기는 다소 꼰대적이기도 하지만 진리일 경우가 많다.
그만큼 오랜 기간 동안 많은 사람들의 컨펌을 받았으니, 꽤나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말을 잘한다는 것도 그런 것 같다. 말을 잘 한다는 것은 잘 들어준다는 것이다. 나는 잘 들어주지 못했고, 내 말만 하는 경우가 많았다. 표현은 유려했지만 속이 비어있는 경우가 많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어떠하다고 더 이야기하고 싶다. 그렇지만 변명이나 핑계는 각설해야 할 것 같다. 나는 그냥 속 빈 강정이었고, 말을 못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 책의 필자는 교수이다. 강의, 즉 말로 생계를 꾸리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 사람이 성대에 이상이 온다. 그래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시작했던 묵언 수행의 기록을 책으로 쓴 것이다. 커뮤니케이션학을 가르치는 필자가 아이러니하게도 말을 하지 않음으로써 소통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일수도 있지만 말이라는 것이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 않음으로써 듣게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스스로 할 수 있는 실수도 줄이고, 상대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다. 아이러니 하다. 자기PR의 시대라고 모두가 목소리를 높이는 시점에서 말을 하지 말라니? 그것은 조금 더 본질적으로 고민해보면 금방 해답이 나온다.
사람들이 말을 하는 이유가 뭘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상대방과 소통하기 위해서이다. 가족, 친구, 연인, 선후배, 직장상사 등등과의 대화에서 모든 사람들은 상대와 소통하기 위해 말을 한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전달하고, 상대가 원하는 바를 들으려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상대와 자신을 조율하는 소통의 과정에 집중하는 것이다. 나는 내가 원하는 바를 정확히 전달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때로는 논리적으로, 때로는 감성적으로 주절주절 표현을 늘어 놓으며 내 이야기를 상대에게 주지시키고 이를 관철시키려 했다.
그러나 이는 그저 욕심이었다. 말을 한다는 것은 오히려 들어주는 것이다. 뉴턴이 일찍이 말했던 '에너지 총량 보존의 법칙'처럼, 대화도 총량이 보존된다. 내가 적게 하면, 상대는 상대적으로 말을 많이 할 것이다. 그리고 남은 공간을 나에 대한 호기심으로 채우고자 한다. 내가 말을 적게 하고 들어줌으로써, 상대에 대한 이해도도 높일 수 있고 상대 또한 나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을 더 많이 갖게 되는 것이다.
항상 막연하게만 생각하던 것을, 이 책을 읽고 이렇게 글을 써보니 새삼 깨닫게 된다. 그러고 보니 스스로 너무 불필요한 단어들과 문장들을 많이 뱉어낸 게 후회가 된다. 그리고 몇몇 사람들과의 기억을 돌이켜 보니 미안함만 늘어간다.
책의 내용은 그리 많지 않다. 묵언 수행의 기록인 만큼 여백도 많다. 두 번 읽어보니, 그 여백이 더 강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며 글을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