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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그라피 시작하기 : 잉크

다채로운 색채가 주는 행복함 혹은, 선택 장애

by 츤데레

이번에는 잉크에 대해 다뤄보고자 한다. 잉크는 아무래도 만년필이나 딥펜으로 하는 캘리그라피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다. 개인적으로도 딥펜성애자이기 때문에 이런저런 잉크에 대해서 많이 알아보고 써보고 사보고 구경해보고 했다. 그래서 약간 할 말이 많긴 하다. (뭐 그래 봐야 제일 자주 사용하는 파이로트의 이로시주쿠 시리즈 이야기가 주를 이룰 테지만) 그래도 최대한 요약해서, 다른 곳에서는 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써보고자 마음을 먹었다.




나의 잉크들
inks.jpg 가지고 있는 모든 잉크들. 선물 받기도, 인터넷에서 사기도 하고, 해외 가는 친구에게 부탁도 했다.

이 글을 쓰기 전에 한 번 세어보니, 나는 총 14개의 잉크를 가지고 있었다. 그중 11개는 파이로트의 이로시주쿠 시리즈였고, 두 개는 윈저&뉴튼의 잉크, 그리고 다른 하나는 딥펜을 살 때 세트로 들어 있던 브라우스 사의 잉크였다. 개인적으로 처음에는 검은색 브라우스 잉크(맨 왼쪽 상단)와 검은색 윈저&뉴튼의 잉크(맨 왼쪽 하단)로 연습을 했었다. 검은색이라 무난했기 때문이고, 이로시주쿠의 잉크보다는 조금 더 매트한 느낌이 강해서 상대적으로 번짐이 적었기 때문이다. (물론 저 두 개가 저렴하기도 했고, 윈저&뉴튼 잉크가 번짐이 덜 하다.)


postit.jpg 번짐의 차이가 극명하니 참고.




스스로 꼽아본 TOP 3

파이로트의 이로시주쿠 시리즈를 좋아하는 1인으로써, 그리고 가지고 있는 잉크의 8할 정도가 이로시주쿠인 사람으로서 다양성에 대해서 논하기는 다소 어려워 보인다. 그래도 가지고 있는 잉크 중에서 써보고 색감이 특출 나게 이뻐서 추천하고 싶은 잉크를 세 가지 정도 소개해보고 싶다. 아무래도 이로시주쿠 시리즈는 종류가 24종이나 되다보니 고르기가 쉽지 않은데 (게다가 웹에서 이미지로 보는 거랑 실제로 써보는 거랑은 느낌이 천지차이) 이 글이 약간의 도움이 되면 기분이 좋아질 것 같다.


top.jpg 왼쪽부터 철쭉, 공작, 무라사키시키부


1. 이로시주쿠 tsutsuji (철쭉)

철쭉의 향을 눈으로 보는 것 같은 색깔이다. 마르면 마를수록 약간 버건디 빛깔이 나는 자주색이 되면서 태두리에 금테가 씐다. 빛의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매력이 있지만, 사진으로 찍었을 때에는 잘 보이지 않을 수도 있으니 참고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색깔이라 용량도 대용량으로 샀고, 주변에도 선물로 써서 줄 때 많이 썼던 색 중 하나이다.


2. 이로시주쿠 ku-jaku (공작)

짙은 남색으로 살짝 쇠 빛깔도 가지고 있다. 철쭉이 약간 화려하다면, 공작은 차분한 무거움을 가지고 있어서 개인적으로는 담담한 어투로 표현하는 작은 글씨에 자주 쓰는 편이다. 철쭉이 금테를 가지고 있었다면, 공작은 적테를 가지고 있다. 마르면 마를수록 테두리가 살짝 붉은빛으로 반짝거린다는 말이다. 처음에는 이게 운치 있고 멋있어 보였는데, 친구가 핏빛 같다고 해서 그 뒤로는 종종 아주 약-간 놀라기도 한다. 그래도 이로시주쿠 시리즈 중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색 중 하나이다. (이거 주문하기 전에 송로syo-ro와 고민을 많이 했는데, 둘 다 써본 결과 이게 낫다는 생각이다.)


3. 이로시주쿠 murasaki-shikibu (무라사키시키부)

보라색이다. 딱 그 말이 잘 어울린다. 다른 표현이 필요 없을 정도로 보랏빛 그 자체이다. 테두리가 변하고 이런 건 크게 없지만, 모두가 머릿속으로 그리는 맑은 보랏빛의 이데아를 표현한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위의 두 색깔보다는 무거운 느낌이 덜하고 시원시원한 느낌이다. 싫어할 만한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다. 이 잉크는 좀작살나무 열매 색깔이라고 하는데 찾아보니 정말 그렇긴 하다. (https://www.flickr.com/photos/bastus917/15165906002) 잘은 모르겠지만 무라사키 시키부라는 이름은 일본의 시인의 이름에서 따온 것 같다.


111.jpg 철쭉의 금테가, 공작의 적테가 보인다. 일부러 잘 보이게 찍었기에 저렇게 보이고, 실제로는 은은히 보인다.


#잉크 구매의 TIP!
개인의 형편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거 저거 사다 보면 잉크 가격은 은근한 부담이 된다. 그래서 수입된 제품을 온라인 쇼핑몰에서 사는 것보다는 현지 구매, 중고 구매, 소분 구매 등의 방법을 추천하는 바이다. 본인이 직접 써보기 전에는 제대로 모르는 것이니 아무래도 이렇게 하는 편이 가성비가 좋다.

- 현지 구매 : 이로시주쿠 잉크를 모을 때 경험에 따르면, 일본 화방에서 파는 가격은 한국 온라인 가격의 50~60% 정도의 가격이다. (15ml 작은 병 1개 한국 가격 12,600원 / 일본 가격 560엔) 일본에 갈 수 있다면, 혹은 일본에 가는 지인이 있다면 꼭 부탁해보자. 한국에서 한두 개 사는 가격으로 일본 가면 세네 개를 살 수 있으니 말이다. 일본 도쿄, 오사카 등지의 큰 화방에 가면 모두가 판다.
(개인적으로는 도쿄에 가는 지인에게 세카이도 화방에 가서 사달라고 부탁했었다. 다시 한번 감사!)

- 중고 구매 / 소분 구매 : 사람들이 쓰고 남은 잉크를 사는 것이 중고 구매이며, 막상 사고 보니 너무 많아서 나눠 쓰자고 올려놓은 것을 사는 것이 소분 구매이다. 중고나라나 캘리그라피 카페 등지를 찾아보면 금방 나오니, 초록창에게 물어보도록 하자.




갖고 싶은 잉크

지금 가지고 있는 것도 제대로 다 못 쓰고 있는 형편이다. 그래서 딱히 당분간 별로 사 모으고 싶거나 하는 마음은 없다. 그렇지만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들의 글씨를 보노라면, 그리고 잉크 색깔에 대한 이미지를 보고 있자면 끌리는 잉크는 아래 두 가지이다.


1. 펠리칸 4001 터콰이즈

영롱한 터키석 색깔이다. 그냥 옥빛이라고 말하기보다는, 살짝 맑은 CYAN 색깔이 투명한 기운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 좋을 것 같다. 이 잉크의 경우에는 마르고 나면 핑크색 테가 둘러진다. 푸른빛과 핑크빛이라고 하면 뭔가 반대 색깔의 느낌이 강해서 안 어울릴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직접 쓴 이미지가 없으니 첨부는 못하겠고, 검색해보면 쉽게 나오니 찾아보는 걸 추천.


2. 이로시주쿠 tsuyu-kusa (닭의 장풀)

베스트펜에서 매번 눈팅하면서 끌리던 색깔이다. 푸른색 잉크들이 가진 오묘한 색감 차이를 좋아해서, 비슷비슷한 색깔이 이미 많지만 이 역시 다른 색깔이라 가지고 싶다. 비슷한 색깔의 틴트지만 오렌지 빛나는 레드와 레드 빛나는 오렌지 틴트를 모두 사는 사람들의 심리와 유사할 듯한 나의 마음이다. 푸른빛이지만 약간 탁해 보이는 게 요즘 내 인생 같아서 감상에 젖는다.




별 이야기할 게 없을 줄 알았는데 잉크 자랑을 하다 보니 글이 길어졌다. 나의 잉크 리스트는 그저 참고용일 뿐, 결론적으로는 모든 건 개인의 취향과 형편에 달려 있다. 그리고 처음 시작할 때에는 다양한 걸 굳이 살 필요는 더더더더더더-더욱 없다. 그저 윈저&뉴튼의 검은색 잉크 (7,000원 정도) 하나 사서 연습이나 많이 해보는 게 최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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