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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츤데레 May 13. 2019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없.겠.지.만

이 책을 처음 샀을 때, 나는 사회생활의 첫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그 책이 덩그러니 내 책상 위에 놓여있는 걸 본 부장님은 웃으며 말씀하셨다. 


"ㅇㅇ님,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진짜 없으니까 울지 마요~"


그 문장을 들은 나도, 그걸 말한 그도 모두 가벼운 미소를 지으면서 스쳐갔던 기억이 난다. 눈물이 가지는 카타르시스는 있겠지만, 그것이 현재를 바꿀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회의 선배가 건네는 따스한 조언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혹자는 징징거린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여러모로 다사다난한 사회생활이었다. 누군가와 트러블이 있고, 싸우고, 갈등의 연속인 그런 난투의 장은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쉽지 않았던 기억의 연속이다. 내가 성격이 모난 것도,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눈물지을 날이 많았던 것 같다. 


실제로 울지 않고, 마음속으로만 그럴 때가 더 많았지만.


우리는 모두 고아가 되고 있거나 이미 고아입니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 


산문집 중 <고아>라는 글에서 나오는 글이다. 작가의 의도를 내가 정확히 파악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상당한 울림으로 기억이 된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지만, 같이 울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 이는 나에게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내가 그런 삶을 살아오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친구들이 나에게 고민을 이야기하거나, 의견을 구하는 일이 꽤나 있는 편이다. 나는 그때마다 나의 경험이나 상황을 통해서 조언을 해주곤 했다. 그들은 생각을 쥐어짜 내는 나의 모습에 대체로 고마워했다. 그 조언이 어떤 도움이나 가이드가 되었는지, 나는 정확히 모른다. 그렇지만 마냥 나도 조금은 도움이 됐겠거니 하면서 미소 짓곤 했다.


이제야 마음으로 알았다는 것은, 어쩌면 많이 부끄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이 글을 읽고 나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그들은 나에게 어떤 조언도 듣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저 그들의 크고 작은 사연을 들어주고, 공감해줄 만한 친구가 필요했을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건넨 것은 고민 끝에 정리된 조언이 아니라, 그 시련을 겪고 있지 않은 사람이 툭 건넨 알량한 우월감이 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많이 미안해졌다.


미안함과 동시에 스스로가 부끄럽기까지 했다. 

정말이지 한심한 일이다.




신영복 교수님은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늘 곱씹고 있었음에도, 행동으로는 그러지 못했던 나를 반성한다. 머리를 굴려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그저 그 상황에 공감해주는 침묵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고 요즘은 많이 생각한다. 그렇게 조금씩 노력하며, 상대의 아픔에 귀를 기울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시답잖은 조언보다 따스한 위로가 되길 바라며.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그래도 그 사람 옆에서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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