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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츤데레 Jun 09. 2019

신촌예찬

부족함이 주는 여유에 대하여

몇 년 전 유행했던 <이태원 프리덤>이라는 노래에는 '신촌은 뭔가 부족하다'는 가사가 나온다. 당시 이 노래를 듣고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다. 나도, 내 주변의 사람들도 20대의 대부분을 신촌에서 보냈다. 공부도 하고, 연애도 하고, 술도 마시고 웃고 울며 떠들었던 곳이다. 나름 소중한 추억들이 깃들어 있는 장소이지만, 우리 모두에게 신촌이라고 하면 왠지 모를 애매함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래서 그 노래 가사를 공감하며 흥얼거리곤 했다. 

힙해 보이는 이태원을 부러워하면서.




내가 듣기로 신촌은 90년대에 정점을 이루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홍대입구역으로 패권을 빼앗긴 상업지구이다. 그렇게 신촌에 있던 패권은 주변으로 퍼져갔다. 처음엔 홍대로, 그리고 지금은 홍대가 지닌 핫함이 연남동, 연희동, 망원동, 합정동 등 인근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그렇지만 홍대의 경우에는 신촌처럼 부족하거나 애매하다고 칭해지지 않는다. 홍대라고 하면 그만이 가지고 있는 일종의 정체성이 있기 때문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나도 그 지역이 가지고 있는 '젊음'이라는 특색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신촌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연대, 서강대, 이대가 모여있는 대학가 정도가 가장 적당한 표현일 것 같다. 하지만 신촌은 그 세 학교의 학생들과 주민들의 장소일 뿐, 어떤 무언가를 상징하지 않는다. 홍대가 가진 젊음도, 이태원이 가진 힙한 이국적인 느낌도 없다. 신촌은 그저 번화가일 뿐, 주변의 핫 플레이스들처럼 바글거리지도 않고 상징적인 특성도 부족하다. 


자주가도 질리지 않는, 뭔가 부족한 장소가 주는 여유로움이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나는 신촌을 좋아한다. 


내가 신촌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 애매모호한 부족함 때문이다. 명확한 정체성도, 바글거리는 유동인구도, 엄청난 랜드마크라고 불릴 것도 없는 그곳이 가지고 있는 부족함을 나는 좋아한다. 아마도 그 부족한 공간을 여유로움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고, 그걸 내가 채워갈 수 있는 부분으로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신촌에는 수도 없는 식당과 카페가 있지만, '꼭 가봐야 할' 명소랄 곳은 딱히 없다. 경의선 숲길이 생겨서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여유로이 걸을 곳도 마땅치 않다. 그래서 사람들은 신촌을 적당히 번화하지만 애매한 곳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다만 나에게는 조금 다르다. 신촌은 나만의 단골집이 있고, 나만의 명소와 산책로가 있다. 꽤나 특색 있는 장소들이고, 친구들 모두가 또 오고 싶어 하는 곳이며, 지나가다가 눈빛이 스치면 웃으며 인사할 수 있는 곳이다. 신촌에서 보자고 하면 모두 애매하다고 고개를 저었던 이들이 익숙한 새로움을 맛볼 수 있는 이유는 모두가 강요하고 정해놓은 정체성과 레퍼토리가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신촌이 주는 부족함은 단순한 결핍이나 결여가 아니다. 오히려 나름의 방법으로 부족함을 채워갈 수 있는 여유를 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굳이 의미부여까지 해가면서 신촌을 예찬하게 된 이유에는 부족함에 대해 바라보는 나의 관점이 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보다 더 어리고 단편적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에는 모든 의미가 하나의 정의를 갖는다고 믿었다. 그 편이 단순하고 편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조금 더 지나고 보니
하나의 편리한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는 없었다.


사랑은 따스함과 동시에 불안함을 가지고 있었고, 안정은 포근함과 동시에 권태로움을 띄고 있었다. 부족함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애매함과 동시에 여유로운 공간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분 단위로 시간을 쪼개가며 자기 관리를 하는 사람이 주는 완벽하고자 하는 모습은 칭찬할 만한 것이지만, 그 이면에는 주변까지 영향을 주는 일종의 강박이 존재한다. 부족함은 그러한 강박보다는 상대에게 편안한 공간을 주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단어의 이중성은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서도 더욱 잘 드러나곤 했다. 의도를 가지고 보려던 것은 아니지만,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정말로 다양한 사람들이 있지만, 그들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는 완벽하게 잘나서(비꼬는 표현이 아니다.) 빡세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친구들도 있고, 약간의 여유를 가지고 살아가는 친구들(전자에 비해서 못났다는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도 있다. 



1. 빡세게 살아가는 사람들

개인적으로 전자의 사람들에게는 배 아프거나 존경스럽다는 감정보다는 피곤하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좋은 자극을 받고 나도 열심히 살고자 노력하게 되는 것에 대해서는 고맙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그들이 그들의 기준을 나에게 들이대며 강요할 때, 나는 티는 내지 않았지만 정신적으로 심하게 지치곤 했다. 


그래서 딱히 할 말이 많지는 않다. 바쁘게 사는 모습, 굉장히 목표지향적으로 사는 성취욕이 강한 모습은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들의 노력에 대해서도 박수 쳐주고 싶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사회적인 성취나 눈에 보이는 가치들보다는, 더욱 소중하고 지향해야 되는 다른 무언가가 있다고 믿는다. 때문에 나에게 그들의 삶은 열심히라기보다는 강박으로 느껴지곤 했던 것 같다. 


2. 다소 여유로움을 견지하는 사람들

후자에 속하는 친구들은 여유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대개 본인의 장단점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편이다. 그래서 본인의 장점은 계속 발전시키고, 단점은 천천히 고쳐간다. 스스로 계획을 짜서 강박적으로 고쳐나가기보다는, 주변과의 소통을 통해서 차분하게 보완하는 것이다. 본인에 대해 주변의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나름의 변을 하기도 하면서 말이다. 


작은 말에도 쉽게 상처를 받던 친구는 덤덤히 스트레스를 풀어가는 이의 이야기를 듣고 상처를 굳은살로 아물게 하는 법을 배우고, 외강내유의 친구가 외유내강한 이의 부드러운 강인함을 배우는 것을 보았다.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의미 있는 성장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차분하고 묵묵하게 걸어가고 싶다.


나 역시도 그러했다. 좋은 친구들이 주변에 많은 덕에 그들과의 관계에서 많은 걸 배우고 채워나갔다.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도 완전하게 채워지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간 많이 둥글어지고 단단해졌다. 창의성이나 개성이라는 핑계로 방치했던 나의 모난 구석을 다듬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침묵도 하나의 말하기라는 걸 배웠고, 기다림이 배려의 표현이라는 것도 체감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예쁘게 말하기, 즉 그 상대가 누구든 상처 주지 않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완벽한 사람이 되고자 강박적으로 바쁘게 사는 삶을 폄하하고 싶지 않다. 그들의 뼈를 깎는 듯한 노력 또한 대단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사람은 누구나 완벽할 수 없기에, 이를 받아들이고 부족함에 대한 생각이 선행되어야 믿는다. 부족함을 빠르게 채워나가는 것보다는, 그 부족함을 정확히 인지하고 수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삶에 있어서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이다.


부족함이란 하나의 공간이 되어 
상대방과 대화를 하고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를 준다. 


그리고 그러한 여유 속에서 많은 걸 배우게 된다. 내가 부족한 부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급하게 모든 걸 강박적으로 계획하지 않아도, 방향만 정확하다면 뚜벅뚜벅 걸어 나갈 수 있다. 100% 완벽한 무언가는 존재할 수 없음을 인지하고, 여유로움을 견지하면 될 일이다.


뭔가 부족하다는 신촌을 변호하고자 재미있게 시작한 글이었는데, 그 이유를 곱씹다 보니 약간은 무거움이 커진다. 부족함이 주는 여유라는 표현이 쉬울 뿐, 그 과정은 결코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렵지만 이를 피하는 것보다는, 조금씩이나마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삶은 혼자서의 노력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는 일련의 과정이기에, 상대와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핵심이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신촌과 같은 공간이 있는 것처럼,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스스로 잘난 삶보다는 주변과 함께 걸어가고 싶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의 모습으로 살아가길 바라며 글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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