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있으랴
얼마 전에 빗길에 넘어졌다. 표준어는 아니지만 자빠졌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취기도 없고 매우 맑은 정신에, 그것도 토요일 대낮에 말이다. 공방 간다고 약간 서두르던 건 있었지만, 전혀 넘어질 거리는 아니었다. 집에 있던 알코올로 (술 아님..) 상처를 박박 닦아내고 밴드를 붙인 뒤 그냥 공방에 가서 하려던 작업을 마치고 돌아왔다. 상처는 시큰거렸지만, 그러려니 하고 잤다.
그런데 그 상처가 생각보다 크게 덧났다. 환부에 염증이 생긴 건 그렇다 치더라도, 욱신거려서 며칠 있다가 병원에 가보니 작은 실금이 가고, 인대에 무리가 간 것 같다고 했다. 살을 더 뺐으면 안 그랬을 텐데요, 하며 웃으며 나왔지만 기분이 별로 좋지는 않았다.
별건 아니지만 생활에 불편함이 더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넘겼다.
예전 같았으면 아픔을 잊기 위해 한 잔 하겠다고 말했을 것이다. 뜨끈한 술 한 잔 마시며 화타의 수술을 견뎌냈던 관우를 비유하면서, 친구들과 얼큰하게 마시고 잠을 이뤘을 것 같다. 그렇지만 요즘은 술을 조금씩이나마 줄여가고 있는 상황이고, 몸 관리를 제대로 하려고 마음먹고 있는 시점이다. 근력운동이나 유산소 운동도 하고, 가끔씩 한강을 달리기도 한다. 그래서 대학교 시절에 나와 함께 마포구를 유랑하던 친구들이 듣고는 식겁하고 있다. 사람이 너무 갑자기 바뀌면 죽는다며 걱정도 해주면서, 말이다.
모처럼 먹은 결심의 기세가 왼쪽 무릎 하나 때문에 꺾이는 것 같아서 짜증이 난다. 드레싱에다가 압박붕대까지 하고서는 별다른 운동을 할 수가 없다. 심지어 의사는 웬만하면 걷거나 계단도 오르지 말라고 하고, 일할 때에도 왼쪽 다리는 펴고 있으라고 한다. 운동을 엄-청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정말 답답한 노릇이다. 모처럼 결심을 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렇지만 뚜벅뚜벅 걸어서
집에 돌아오다 보니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내가 좋아하는 시 중 하나인 도종환 시인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일 것이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며,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겠냐는 바로 그 시이다. 삶의 모든 빛나는 존재들이 나름의 시련을 이겨내고 보여주는 것이 현재의 아름다움이기에, 그 과정에 찬사를 보낸다는 뜻으로 나는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생각의 방향을 조금 틀어 보기로 했다. 지금의 아쉬움이나 절실함을 기억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어차피 상처는 낫기 마련이기에, 곧 무릎이 낫게 되면 그때 열심히 운동을 하면 될 일이다. 그리고 결심이 조금 흔들리려고 할 때 지금의 기억은 나에게 큰 동기 유발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피곤해서 쉬고 싶다며 스스로 나태해지려고 할 때에도 지금을 생각하면서, 더욱 이를 악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한다.
내가 물론 꽃은 아니지만.
고작 무릎 조금 다친 것에 이렇게 생각이 많아지고 나름의 의미부여도 하는 이유를 생각해보니, 나의 화려한(?) 전적 때문인 것 같다. 나 같은 사람이 운동이나 관리라는 단어에 이렇게 열망하던 적이 언제 있었나 싶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20대 초반에 35kg 정도를 감량했을 때, 그리고 마지막 학기에 볼 면접이나 시험이 많아서 체력 관리에 신경 썼을 때 정도가 전부인 것 같다. 그 순간들을 제외하면 나는 막살았다고 봐도 될 것이다. 타고난 체력이나 체격을 믿고, 대충 살았다. 물론 현재를 즐겨라,라고 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현재를 즐기기보다는 불확실한 미래를 외면하기 위해 취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을 최대한 의미 있게 생각하고자 한다. 거의 단 한 번도 운동을 못해서, 혹은 자기 관리를 못해서 아쉽다고 생각했던 적은 없다. 그렇기에 지금 이 순간에 만연한 그 아쉬움을 기억해보고자 한다. 상처란 지금은 굉장히 거슬리는 것이지만 결국은 나을 것이기에, 나중에도 이 아쉬움을 곱씹으며 스스로를 관리하고 싶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 드는 아쉬운 감정을 잊지만 않는다면, 나의 새로운 습관은 몇 주 전처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상처는 언젠가 아물 것이다.
흔들리기도 하고 젖기도 했던 어떤 무언가가 결국은 화려한 꽃으로 피어나듯, 상처는 언제나 상처로 남지 않는다는 말이다. 나는 잠깐 아플 때 들었던 생각으로 과거를 미화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설혹 잠깐은 그럴 수 있더라도, 그 과거의 기억을 계기로 한 걸음 나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을 뿐이다. (뭐 거창한 이야기를 하나 싶지만, 결국 모처럼 운동하고 싶다는 이야기다.) 비록 그 걸음이 크지는 않더라도, 단 1cm라도 나아가고 싶다.
이렇게 조금씩이나마 성장하고 싶은 까닭은 삶의 과정에서 좌절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고, 주변에게 부끄러워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모든 것에 대비할 수는 없지만, 삶이라는 과정에 있어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의 준비는 해두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조금씩이라도 올바른 방향으로 발걸음을 내딛으며, 할 수 있는 최선을 위해 노력하고 싶다. 그래야 그 어떤 상황에서든 후회하지 않고, 한 송이의 꽃처럼 스스로 빛나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에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