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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츤데레 Jul 10. 2019

바뀌어 가는 이상형의 의미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H스커트가 잘 어울리고 하이힐을 신으면 아킬레스건이 빡-서는 여자를 꿈꾸던 시절이 있었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까닭은 꽤나 오래 전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이는 짧게는 7~8년, 길게는 10년쯤 전 내가 꿈꾸던 이상형의 여성의 이야기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바뀌기는 했다. 그렇지만 스무 살 때부터 한 7년 정도는 저 큰 틀에서 벗어나진 못했던 것 같다. 주변에서는 이렇게 칭하기도 했다. 간 빼먹을 것 같은 구미호 느낌의 여자, 아나운서나 승무원이거나 그 직종을 준비하는 느낌의 여자, 조금은 싸가지없고 도도한 느낌의 도시 여자 같으면서도 성격 있어 보이는 스타일의 사람이라고 말이다. 그리고 동물을 비유하는 친구들은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다. 고양이이면서 개구리, 개구리이면서 붕어 느낌을 가진 사람이라고.


서른이라는 게 큰 의미도 아니고 벼슬도 아니지만, 하나의 계기는 되는 것 같다. 이상형에 있어서도 조금은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눈에 보이는 것에 끌렸다면, 작년 정도부터는 그러지 않은 것에 호감이 간다.


흔히들 남자는 이쁜 여자면 다 된다고들 이야기한다. 나도 그랬다. 얕고 넓은 습자지 같은 나의 관심사 덕에 그 어떤 사람과도 어느 정도는 이야기할 수 있고 받아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커버해줄 수 있는 노력의 범위 안에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나는 친구들에게 그렇게 말했다. 상대가 좋아하는 소재가 뭐든 내가 조금만 찾아보면 되는 것이고 싸가지없으면 참으면 되는 것이지만, 어찌 됐건 눈은 뜨고 다닐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냐고.


그렇지만 이제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조금은 변했다고.




조금은 변해버린 나의 관점을 세 가지 포인트에서 서술해보고자 한다. 소위 '얼빠'까지는 아니었지만, 눈에 보이는 것들이 종종 더 중요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내가 바뀌게 된 계기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게 별 것 아닌 가치일 수 있겠지만, 어느 정도 정착에 대한 생각을 하고 있는 나에게는 소중한 포인트이다.



1. 내가 못 들어본 말을 하는 사람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대화의 과정에서 상대의 이야기를 예측한다. 우리는 사회적인 동물이기에, 사회가 가르치는 바에 무의식적으로 충실하기 때문이다. 나이를 조금씩 먹어갈수록 이러한 경향은 더욱 커진다. 우리가 살아온 시간에 정비례하여 대화의 빅데이터가 쌓이기 때문이고, 그러면서 일종의 패턴이 생기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도 그런 패턴이 있다. 내가 이 말을 하면 상대가 어떤 말을 하거나 반응을 보이겠구나, 혹은 이러면 좋아하겠구나, 하는 식의 생각 말이다. 그렇지만 그러지 않을 때가 있다. 대화 상대가 컴퓨터가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비슷해 보이지만 제 각기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100% 예상할 수 없다. 아무리 현인이라도 말이다.


소설가 김영하는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소설 속 인물에 대해 상술해보는 과제를 내주었다고 한다. 그러면 학생들은 대개 '평범한 직장인', '20대 대학생' 이런 식으로 인물을 그리곤 했다. 그럴 때 작가의 코멘트는 한결같았다. "평범한 회사원? 그런 인물은 없어."라며, 모든 인간은 다 다르며,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딘가 조금씩은 다 이상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작가로 산다는 것은 바로 그 '다름'과 '이상함'을 끝까지 추적하여 생생한 캐릭터로 만드는 것이기에. (<여행의 이유>, p.57)


물론 그렇게 다 다른 사람이기에 예상치 못한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내가 듣지도 보지도 못한 말을 들으면 나는 놀란다. 그리고 그 말이 나에게  따스하며 참신하기까지 하다면, 호감이 생기는 것 같다. 예전에 만나던 사람 중 하나는 나를 볼 때마다 너무 예쁘다고 하곤 했다. 이내 습관이 되긴 했지만,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의 충격은 잊지 못한다. 나는 미소년 느낌의 사람은 전혀 아니고, 한국 사회에서 예쁘다는 남자와 서로 어울리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소한 이유로 사람이 다르게 보이기도 하고,  좋아지는 나이가 된 것 같다.



2. 말하지 않고도 나를 바꾸는 사람


나는 은근히 내 의견이나 생각이 확고한 편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나를 바꾸는 것도 굉장히 싫어한다. 그래서 부모님께도 어릴 때는 자주 대들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하면 오롯이 나를 생각해주는 분들께 행한 불효이지만, 그때는 스스로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족에게도 그러는데, 지난 연인들에게는 어땠을지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보다 어릴 때엔 그런 테마로 소소한 이슈가 많았다. 큰 잘못은 아니지만, 여자 친구의 관점에서 보기에는 '그것만 고치면 더 좋을 텐데', 싶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시는 바로 잠이다. 나는 연락을 곧잘 하는 편인데, 잘 때만은 그렇지 못하다. 아무리 술에 취한 상황에서도 위치 보고에 충실하며, 집에 들어오면 들어왔다고 전화한다. 그렇지만 혼자 오래 산 탓에 갑자기 스르르.. 훅 하고 잠에 드는 편이다. 씻고 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뚝하고 연락이 끊기니 많이 짜증 났던 모양이다. 그래서 자주 혼났던 기억이 난다.


이런저런 사소한 일로 꽤나 혼났지만, 노력해도 20년 넘게 살아온 습관은 한 번에 바뀌지 않았다. 좋은 말도 자꾸 들으면 지치는 법인데, 그런 일로 혼나는 것은 오죽했을까. 그러다 보면 자신의 기준에 나를 맞추려고 하는 상대에 나도 조금씩 지쳐갔던 기억이 난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들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나에게 굳이 듣기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아도, 나를 변하게 하는 사람들이 몇 있었다. 그들은 대개 말을 예쁘게 하는 사람들이었고, 나를 신경 써주고 진심으로 대하는 이들이었다. 그러한 그들의 배려에, 그리고 자연스럽게 바람직한 삶의 길로 들어서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되면 나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 같다.



3. 사랑받고 자란 사람


예전에는 사랑받고 자라야 이쁘고, 나는 이쁜 여자가 좋다는 정도의 마음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사랑받고 자란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알 뿐만이 아니라, 마음 속에 꼬인 것이 없기 때문이다.


꼬인 것이 있는 사람은 상대를 피곤하게 만든다. 진심으로 칭찬을 해줘도 무슨 꿍꿍이인지 나를 의심할 때도 있었고, 진심으로 신경이 쓰여 오랜 시간 이야기를 듣다가 조언 한 마디를 해줘도 되려 화를 내는 경우도 있었다.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나의 진심과 마음이 닿지 않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는 너무도 혼란스러웠다. 워딩 그대로 해석하면 될 나의 몇 마디를 저렇게 복잡하게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의 사고 회로가 신기하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느꼈다. 사랑받고 자란 사람을 사랑해야 내가 행복할 수 있겠다, 라고. 행복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런 사람을 만나야 혼란스러운 세상을 살면서 덜 불행할 것이라고 믿게 되었다.





물론 지금도 이쁘고 몸매 좋은 여자는 좋다. 거기에 부잣집 외동딸이라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게 꼭 필요한 핵심은 아니라는 것이다. 위에서 말한 세 가지가 없고 눈에 보이는 저런 매력들만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을 만날 수 없을 것 같다. 한두 번의 데이트가 있을 수도 있고, 약간의 고민과 동요가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들은 보이지 않는 것이 가진 여운을 이길 수가 없다고 믿는다.


그러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어린 왕자> 속 문장은 시간을 초월하는 무게감을 가지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혹은 간과할 수밖에 없는 진실을 간단명료하게 풀어낸 표현이기 때문이다. 나도 저 문장은 초등학교 때 읽었지만, 그때와 지금 느끼는 감정은 다르다. 너무도 보이는 것만 바라봤기에 드는 후회가 아닐까, 싶다.


위에서 이야기했던 저런 모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저런 사람이 존재하는지도 모르겠고, 존재하더라도 내 주변에 있는지는 더더욱 확신할 수 없다.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저런 사람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언제 올지 모른다는 것이다. 혹시라도 오게 된다면, 그 기회를 잡을 수 있도록 나도 저런 사람이 되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인 것 같다.


후, 열심히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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