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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티브스 Feb 27. 2019

장국영의 초기작 - (1) 실질적 데뷔작 '열화청춘'

烈火青春, nomad, 1982

* 곧 장국영의 16주기를 맞이하여 잘 알려지지 않은 그의 영화 몇 편을 소개하려 합니다.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열화청춘>의 인트로

1982년작 장국영, 하문석, 탕진업, 엽동 주연의 <열화청춘>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홍콩 뉴웨이브 영화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뉴웨이브 영화는 1970년대말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 유행한 경제 성장 이면에 중국으로의 반환이라는 불안한 홍콩의 미래를 청춘 영화에 녹여낸 일군의 작품들을 지칭한다. 대표적인 감독으로 서극, 허안화, 엄호, 담가명 등이 꼽히고 있으며 이들은 외국의 제작 환경을 경험해 본 적이 있거나 HKTVB를 중심으로 방송국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작업을 해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기획적으로 제작되는 그간의 관례에서 벗어나 최대한 자율권을 보장 받았으며 내용적으로는 허무의 정서를 담은 작품을 많이 만들어 냈다. 그 중 담가명 감독은 HKTVB에서 건너와 1980년 <명검>이라는 작품으로 감독 데뷔를 하였으며 <열화청춘>은 그의 8편의 필모그래피에서 세 번째로 만든 작품이다. 그의 스타일은 왕가위 등의 후배 감독 작품에서도 엿볼 수 있다.

서극                                                       허안화
엄호                                                     담가명

장국영은 <홍루춘상춘(1978)>이라는 작품의 고전극에서 주연으로 데뷔하였으나 주목을 끌지는 못했다. 이후 <갈채>, <실업생> 등의 작품에서 최고의 스타 진백강(陳百強)에 이어 종보라(鍾保羅)와 함께 청춘 우상으로 떠오르고 있었다(안타깝게도 세 명 모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열화청춘> 이전에 두 번째 주연작 <충격21>이라는 작품을 찍었으나 장국영 본인은 <열화청춘>을 본인의 진정한 데뷔작으로 본다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이 영화의 주인공을 맡은 배우들은 장국영을 제외하고는3편이하의 영화에 출연한 신인급이었으며 케이시 역의 하문석은 <열화청춘>이 데뷔작이었다. 하문석은 <열화청춘>에서 여러 차례 과감한 연기를 선보였는데 특히 퐁(탕진업)과의 버스 정사씬은 당시에 큰 화제가 되어 교육계의 반발로 이 영화는 상영정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탕진업은 우리에게 크게 알려진 배우는 아니지만 <폴리스스토리> 1편의 초기 도입부에서 겁에 질려 총을 쏘지 못하고 벌벌 떠는 형사 역으로 익숙하다. 엽동은 <열화청춘>에 이어 1986년작 <우연>에서 다시 한 번 장국영과 연인으로 이어지는데 장국영은 그녀를 몰입력이 매우 좋고 자신과 연기 호흡이 가장 잘 맞는 여배우로 꼽았었다.

<실업생>의 진백강, 장국영, 종보라와 <폴리스스토리1>의 성룡과 탕진업
최근의 하문석과 엽동
<열화청춘>의 네 주인공들

<열화청춘>은 네 명의 청춘 남녀들이 방황도 하고 사랑도 하다가 허무하게 꿈이 좌절된다는 내용으로 간단하게 요약할 수 있다. 네 사람은 퐁-케이시, 루이스(장국영)-토마토(엽동)이 짝을 이룬다. 퐁과 케이시 커플은 케이시가 주도한다.  케이시는 일본에서 온 유학파로 일본 문화를 거리낌 없이 받아 들이고 있으며 첫 만남에 퐁의 수영복을 빼앗아 그를 난처하게 만들더니 과감하게 그의 입술을 빼앗기도 한다. 점점 무르익은 그들은 달리는 버스에서 사랑을 나누기도 하고 부모님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과감한 애정 행각을 벌이기도 한다. 케이시는 다른 사람에게 무엇보다 퐁은 육체가 마음에 든다고 말할 정도로 개방적이고 당당한 여성이다. 그들은 서구적이고 충동적이며 본능에 충실하다. 반면에 토마토는 천박하고 남자에 의존적이며 진실함이 떨어진다. 버림 받아 갈 곳이 없어진 순간에 운도 좋게 루이스가 도와준다. 루이스는 본인이 외로움을 느끼며 자라왔기 때문에 토마토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만난 첫 날에 정사를 치루나 극이 계속될수록 그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을 하게 되며 각자의 외로움을 함께 치유한다. 이 네 사람은 영화 마지막에 죽음과 맞닥뜨린다. 일본의 적군파로 등장하는 킬러는 제일 먼저 케이시를 살해하고 뒤이어 퐁까지 해치운다. 루이스가 죽음과 직면하는 순간 토마토가 그를 구하고 킬러를 물리친다. 세상에 도발적이며 기존의 가치에 도전적인 인물들만 제거되며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남겨둔다. 이렇게 갈라놓음으로 해서 현실이라는 장벽은 더욱 크고 높아 보이며 절망은 더욱 깊어진다. 남겨진 루이스의 유약한 이미지도 이를 돕는다.

퐁(탕진업)과 케이시(하문석) 커플
루이스(장국영)와 토마토(엽동) 커플
도발적인 케이시와 외로운 루이스

<열화청춘>에는 신기한 캐릭터가 한 명 있는데 바로 루이스의 계모이다. 그의 계모는 대사가 한마디도 없으며 거의 대부분 피아노에 앉아서 연주에만 열중한다. 모르는 사람이 집에 들어와도 아는 척도 인사도 없다. 거의 마네킹, 투명인간과 같은 수준이다. 퐁의 아버지 역시 잠깐 등장했다가 자리를 비우며 집에 와서도 퐁에게는 관심이 없고 친구들과 마작하는데 정신이 팔려있다. 루이스의 아버지와 퐁의 어머니는 아예 등장하지 않지 않는다. 청춘들은 부모와는 단절이 되어 있다. 루이스는 라디오 진행자였던 어머니가 45세에 일찍 돌아가셔서 어머니가 보고 싶을 때마다 그녀의 마지막 방송 녹음 테잎을 듣는다. 외로운 그는 라이터의 가스를 들이마시며 환각에 빠지기도 한다. 케이시는 기모노를 입고 일본 춤을 춘다. 그들은 욱일승천기가 그려진 포스터 앞에서 대화를 나누며 아예 토마토는 일본은 패션도 세련되고 볼거리도 많은 곳이라 꼭 가보고 싶다고까지 이야기한다. 이들은 일본에 반감이 있던 어른 세대와는 확연히 다르다. 또 이 영화에서는 당시에는 보기 힘든 동성애 코드도 녹아있다. 퐁과 루이스는 다투던 중 갑자기 입을 맞추기도 하고 속옷 만을 입고 돗자리에 누워서 자기도 한다. 의상실 디자이너와 그의 조수로 암약하는 킬러는 선탠 오일도 발라주고 서로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대화를 나눈다. 모기장 안에서 함께 잠을 자는 네 청춘의 모습도 심상치는 않다.

루이스의 계모와 퐁의 아버지
일본 문화에 우호적인 청춘들
동성애적 코드가 묻어나는 장면들

<열화청춘>은 청춘물로 시작해서 중반까지는 같은 톤을 유지하다가 막판에 갑자기 잔혹 살인극으로 방향을 전환한다. 청춘들이 동경하는 일본에서 온 킬러가 일본도를 휘두르며 그들을 죽인다는 설정은 비극을 극대화시키기 위함임은 알겠으나 흐름상 갑작스러움을 넘어 당황스러우며 살해의 방식도 저렇게까지 해야 했을까라는 의문이 남는다. 또 임신한 몸의 죽은 줄 알았던 토마토가 뒤집힌 배를 들고 일어나 (하필 딱 그녀 앞에 있던)작살을 날려 한 번에 킬러를 처치하는 장면은 무협영화와 별 다름이 없다. 무협영화는 만든 사람이나 관객이나 암묵적으로 그러려니 하고 보는 우연과 과장의 장면들이 있는데 <열화청춘>과 같은 영화에서는 어울리지 않아 아쉽다. 어쨌든 기존과는 다른 문법으로 <열화청춘>은 1983년 제2회 홍콩영화금상장 후보에 무려 8개부분에 노미네이트 된다. 수상은 못했으나 2005년 홍콩영화금상장 시상식에서 ‘중화권 영화 백 년 중 가장 아름다운 영화 중 한 편(一百年最佳華語片之一)’으로 꼽혔다. 장국영의 초기작으로는 작품성과 화제성 모두 제일 뛰어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일본 적군파의 등장
그들의 꿈은 물거품이 된다


- 줄거리 -

수영장에서 안전요원으로 일하는 퐁은 안전수칙을 무시하는 여성 일행 중 한 명이자 일본 유학파인 케이시와 티격태격하다가 정분에 빠진다. 한편 퐁의 친구이자 케이시의 사촌인 루이스는 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토마토가 실연당하는 모습을 보고 그녀를 도와주다가 연인이 된다. 네 남녀는 청춘의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나 다른 곳으로 떠나 새로운 인생을 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사실 케이시는 일본 적군파 출신의 남성과 이미 사귀고 있던 관계였고, 적군파를 탈퇴하고 홍콩으로 들어온 그를 일본에서는 여성 킬러를 의류 디자이너의 비서로 잠입시켜 살해하고자 한다. 루이스의 도움으로 적군파 출신 남성은 노마드라는 이름의 배에 숨어있었고 네 남녀는 멀리 떠나기 위해 해변에서 노마드호를 기다리던 중 일본 킬러가 나타난다. 그녀는 적군파 출신 일본인 남성과 퐁, 케이시를 차례로 살해하고 루이스에게 칼을 휘두르려던 순간 토마토가 쏜 작살에 맞아 죽고 청춘 네 남녀의 꿈은 파국으로 마무리 된다.

청춘들을 태우지 못하고 떠나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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