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그 아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지혜 Jun 07. 2024

(7) 아내가 되다

  교육을 마치고 교육을 제공한 기관에서 일하게 되었다. 새로 들어온 나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같이 서울에서 일하는 친구, 후배, 광주 지부를 맡은 선배……. 새로운 일이 재미있었고,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누구와도 교제하고 싶지 않았다. 집에서 쉬고 있던 어느 주말, 광주의 선배가 전화했다. 


  “너를 만나기 위해 고속버스를 타고 올라가는 길이야. 지금 휴게소인데, 1시에 만나자. 거절하면 다시 내려가려고 해. 잠시 만날 수 있지?”

  이미 출발했다는 말에 ‘만날 수 없다’고 거절하기 어려웠다. 

‘잠시 만나서 이야기만 들어보고, 다시는 연락하지 말라고 해야겠다. 출발할 때 전화했으면 바로 거절할 건데. 짧게 인사만 하고 돌아오자.’ 생각했다. 


  첫 만남에 그는 나에게 프러포즈를 했다. 결혼을 전제로 만나면서 서로 알아가자고. 비현실적인 느낌이었다. 그냥 ‘생각해 보겠다’라고 했다. 그날 이후 그에게서 매일 전화가 왔다.

“지혜도 나를 알아야 미래를 생각할 수 있지 않겠어?”라고 했다. 

그의 말에 수많은 답이 머리를 맴돌았다. 

‘그래, 2~3년 동안 시간을 가지면 되겠지!’ 하고 생각했다.

그렇게 10개월이 흘렀다. 


  마침 일하는 기관에서 영국 유학을 지원해 주는 기회가 생겼다. 기관장의 추천이 있으면 영국의 학교에 갈 수 있다고 했다. 선배는 이 기회를 잡고 싶어 했고, 나와 같이 가기를 원했다. 오랜 시간을 두고 천천히 만나며 알아가려고 했는데, 쫓기듯이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소신이 있는 사람이니 나를 보호해 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했다. 어쩌면 나도 제대로 된 가정을 꾸릴 기회라는 생각도 들었다. 제대로 된 가정, 행복한 가정, 서로 사랑하고 웃음이 넘치는 가정. 그렇게 나는 그와의 결혼을 선택했다.


  그는 부모님 없이 자란 사람이었다. 모아둔 돈도 없었다. 결혼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경제적인 상황으로 남편 될 사람이 위축되는 마음을 갖게 하고 싶지 않았다.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생기는 거잖아. 그것보다 마음을 나누며 보듬고 힘이 되어주는 가족으로 세우는 것이 더 중요하지.’ 생각했다. 

결혼준비를 하면서 그에게 마음을 전했다. 

“다행히 내 국민연금과 직장생활 동안 모아둔 저축이 있어. 그걸로 할 수 있는 걸 생각해 보자. 우리 가정을 세워나가는 거잖아.” 

그렇게 결혼식을 준비했다. 

팔목까지 내려오는 소매, 네모 목둘레선의 웨딩드레스도, 그의 턱시도도 웨딩숍에서 내 자금으로 빌렸다. 우리 둘 다 결혼 준비를 의논할 부모가 없어 단출한 결혼식이었다. 결혼 전에 친정어머니가 딸의 생리 날짜를 고려하여 결혼식 날짜도 신랑 어머니와 조절한다고 하던데. 오히려 그런 것까지 신경 쓰게 하냐는 엄마의 말에 더 의논할 수 없었다. 그렇게 그를 따라 영국으로 향했다. 


  비행기는 한국에서 서서히 멀어지고 있었다. 멀어지는 기분을 나 스스로에게도 설명하기 어려웠다. 슬펐다. 이제 아무도 볼 수 없다는 것이 슬펐다. 아니, 후련했다.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나에게 짐을 지워준 존재들에게서 드디어 분리되었으니. 그리고도 외로웠다.

매거진의 이전글 (6) 안녕, 가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