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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서고생 Sep 11. 2019

조국 그리고 한국저널리즘


  2014년 4월 6일. 누군가는 잊으라 하고 누군가는 기억하는 날짜다. 세월호 사건 이후 정부의 무능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국민은 정권을 교체했다. 충격적인 일들이 한 둘이 아니였지만 가장 충격적이였던 것은 정보전달창구의 오작동이였다. 세월호 현장에도 있지 않았던 관료가 어설프게 퍼뜨린 정보를 언론이 그대로 실어 나르면서 생긴 참사였다. 세월호참사 오보 사건 뒤 각 언론사는 자정작용을 하겠다며 너도 나도 외쳤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2185)


  미국에도 똑같은 사건이 있었다. 2006년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 톨먼스빌에 위치한 탄광에서 폭발사고가 났다. 광부 13명이 탄광에 갇혔다. 그들은 위급상황시 버틸 수 있는 교육을 받았고 1시간을 버틸 수 있는 산소통이 있었지만 그 뿐이였다. 사고 발생 41시간이 지나고 기적 같은 뉴스가 나왔다. 모든 광부가 전원 생존했다는 뉴스였다. 사람들은 구조팀에게 환호했고 교회에 모여있던 가족들은 눈물을 흘리며 신께 감사드렸다. 오보는 꽤나 오래 지속되었다. 아직도 우리나라 언론에는 매몰광부 전원 생존이라는 기사도 존재한다.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0046242) 그러나 이 또한 현장에 있지도 않은 관료의 말실수와 그대로 실어 나른 언론의 참사였다. 팩트는 모두 사망했고 1명만이 생존했다.


  언론은 사과 따위 하지 않았다. 자신들은 저널리즘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저널리즘이 무엇이길래 저런 오보를 내놓고 사과도 하지 않는 것인가. 종이신문을 읽는 시대와 다르게 세상이 변하긴 했다. 전날의 사건을 다음날 아침에 오는 신문으로 확인하지 않는다. 사건이 터지면 그와 동시에 웹상에서 뉴스를 쉽게 접할 수 있다. 그에 따라 언론은 누구보다 빨리 기사를 내야 했고 동시에 많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어야 했다. 정보의 전달과 주장만을 하는 뉴스가 판을 치자 팩트체크와 정확성은 아무 의미가 없어졌다. 


  최근 조국 이슈가 불거졌다. 무수히 많은 뉴스가 암세포 전이 되듯 퍼져나갔다. 문제는 크게 2가지다. 

  첫번째, 어떤 뉴스의 의혹제기에도 팩트나 크로스체크는 보이지 않는다. 조국이 사모펀드를 가지고 있다더라, 근데 익명의 증권사직원에 의하면 사모펀드는 부모의 재산을 자식에게 편법으로 상속하기 위해서 사용한다더라. 끝이다. 정보전달과 주장만을 하고 뉴스는 끝난다. 어디에도 조국의 사모펀드가 해당 형태를 띄고 있는지 사모펀드의 어느 부분이 그런 편법상속을 가능하게 하는지 등의 체크는 없다. ( 관련 기사 : https://www.edaily.co.kr/news/read?newsId=03975366622589944&mediaCodeNo=257). 

  두번째는 한 언론이 의혹의 기사를 내면 다른 언론은 그 의혹이 사실인 것으로 가정하고 또 다른 의혹 기사를 내는 문제다. 순환참조라고 한다. 이렇게 되면 뉴스를 보는 국민들은 참조한 의혹을 진실로 받아 들이고 기사를 읽는다. 언론사가 무수히 많은 의혹을 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언론이 저널리즘을 행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는 정보를 전달하는 것에만 주안을 두지 않고 파고들어 사실 확인을 하고 취재하여 세상을 바꾸었다. 영화 스포트라이트를 보면 소름이 돋는다. 그런 역할을 게이트키핑(Gate Keeping)이라고 한다. 잘못된 정보가 대중에게 넘어가 선동 당하지 않게 문을 지키는 일. 현재는 게이트 키핑을 대중이 하고 있다.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는 조직으로서 언론의 보도는 일반인들의 그것과는 수준이 달라야 한다. 국민이 카카오톡 단체방에서나 할 법한 이야기로 단독보도를 내는 것을 기사라 부를 수 없다. 저널리즘은 관찰한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고 관찰한 것에 경중이 있음을 따지고 전달한 것이 어떤 시각으로 읽힐지 고민하는 것이다. 


  2015년 “내부자들”이라는 영화가 900만을 찍으며 흥행을 했었다. 이경영 선생님의 힘찬 잔치기로 유명하기도 했다. 극 중 언론사 논설주간으로 나오는 이강희(백윤식)가 한 말이 유행어였다. “아, 끝에 단어 3개만 좀 바꿉시다. '볼 수 있다'가 아니라 '매우 보여진다'로” 현실에 있을 법한 일에 대중은 공감했고 영화는 대박이 났다. 지금 우리는 매우 보여진다 식의 기사를 읽고 똑같은 실수를 하는게 아닌가? 난 그렇게 매우 보여진다.


모든 사건의 처음은 의혹이다. 나도 인정한다. 의혹을 내지말라는 것이 아니다. 의혹을 기반으로 기사를 쓰기위해선 이정도는 쓰라는 것이다. ( https://newstapa.org/article/xFH9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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