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봐, 쭈꾸미.
부부가 우정이 아닌 애정으로 살기 위해서는 데이트 코스가 중요하다.
밑줄을 좀 긋고, 필요하면 굵게 쓰고 하이라이트 좀 치고.
다만 아이가 태어나면 달라진다. 각자의 생존이 가족의 행복이 된다.
우정도 애정도 아닌 전우애. 내가 쓰러져도 넌 살아서 애를 봐야 한다.
육아에 휘말려 살다, 어느 날 갑자기 우리의 데이트 코스가 사라진 것을 알았다. 더 이상 아이가 없던 때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수많은 시점. 그중 하나는 술을 즐기지 않는 우리가 그나마 맥주 한잔 나누던 동네 술집이 사라진 것을 눈앞에서 보게 된 그날.
보승회관이 나쁘진 않다.
아이가 태어나고 둘의 첫 외식은 산부인과 앞 보승 회관의 국밥. 나쁘지 않다 정도의 그 맛을 잊을 수 없는 것은 결국 그 시간이 우리에게 무척이나 중요한 의미였기 때문이겠지.
하지만 보승회관은 나빴다.
이제 성수동에 돌아와서 본 것은 우리 추억을 대신해 들어선 또 다른 보승회관.
새로 얻은 기억과 빼앗긴 기억 사이에서 죄 없는 보승 회관은 뭐가 그리 기쁜지 밝게 살랑이고 있다.
그곳은 매운 음식을 못 먹던 내가 마요네즈와 날치알을 어떻게든 섞어가며 깻잎쌈을 싸 먹던 곳.
넌 생맥주 한 잔, 그동안 난 두 잔을 먹으며 동네 소음을 죄다 끌어모은 난리통을 견디던 곳.
진짜 불 맛인지, 불 맛 소스를 사용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쭈꾸미의 탱글함은 진짜였던 곳.
<쭈전부리>는 그렇게 갑자기 사라졌다.
도저히 옆을 돌아볼 수 없는 전투 중에 갑자기 사라져 시신조차 찾을 수 없는 전우처럼.
한 번 더 손을 내밀어 보지 못한, 도저히 쓸데없는 죄책감과 이를 대체한 신병에 대한 이유 없는 미움만 남기고.
기억에 남긴다면 기억에 남겠고, 잊으면 잊겠지만
단 한 번도 우리 둘 외 다른 사람을 데려가 본 적 없는 그곳의 기억은 좀 더 빨리 잊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