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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이저 Apr 23. 2018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신영복 지음, 돌베게 출판사

매 여름마다 피서(避書)함으로써 피서(避暑)하려고 합니다만 눈에 띄는 책이 많아 막상 피서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책에서 얻은 지식은 흔히 실천과 유리된 관념의 그림자이기 쉽습니다. 그것은 실천에 의해 검증되지 않고, 실천과 함께 발전하지도 않는 허약한 가설, 낡은 교조에 불과할 뿐 미래의 실천을 위해서도 아무런 도움이 못되는 것입니다.
비록 여름이 아니더라도 저는 책에서 무슨 대단한 것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지식인 특유의 지적 사유욕을 만족시켜 크고 복잡한 머리를 만들어, 사물을 보기 전에 먼저 자기의 머리 속을 뒤져 비슷한 지식을 발견하기라도 하면 그만 그것으로 외계(外界)의 사물에 대치해버리는 습관을 길러놓거나, 기껏 '촌놈 겁주는' 권위의 전시물로나 사용하면서도 그것이 그런 것인 줄을 모르는 경우마저 없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것을 지식이라 불러온 것이 사실입니다. 출석부의 명단을 죄다 암기하고 교실에 들어간 교사라 하더라도 학생의 얼굴에 대하여 무지한 한, 단 한명의 학생도 맞출 수 없습니다. '이름'은 나중에 붙는 것, 지식은 실천에서 나와 실천으로 돌아가야 참다운 것이라 믿습니다.

신영복 선생님은 책을 읽을 때는 책을 읽고 책을 읽지 않을 때는 사색과 관조의 시간을 보내셨던 것 같다. 나는 책을 읽을때만 생각을 하고 책을 덮을 땐 생각의 버튼을 끄지는 않았던가.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이라는 책에서 청송 교도소의 무기수가 세상 구경을 하고 싶어 대못을 삼켰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고통에 몸부림 치면서도 침대 위에서 그 무기수의 눈은 연신 사방을 돌아보느라 정신이 없었다는 이야기. 세상이란 곳을 호흡하고 자신의 눈으로 세상 그림을 사진 찍어대는 것으로도 이미 정신이 나가 있었다는 이야기.  

감옥에서의 생활은 가히 벽과의 싸움일 것이다. 물리적인 벽이 오히려 주체성으로서의 '나'를 무한히 확장시킬 수 있는 곳으로 여긴 선생님의 성정이 매우 존경스러웠다.

고등학생 시절 기숙사에 '갇혀있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갑갑해 했던 내가 어지러운 마음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칠때를 생각해보면 내가 만약 감옥에 가게 된다면 엄청난 불안과 막막함에 이성의 끈을 놓지 않을리 만무하다. 극한 상황에 가게 된다면 모두 생존본능만 남게 되지 않을까. 약 한달 뒤 가게 될 유럽에서 이틀에 한번 꼴로 테러 소식이 들려오고, 트럼프가 미국의 대선 주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인간에게 있어 '합리성'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지 의문스러울 때가 있다. 결국 사람 사는 세상은 동물들이 사는 양육강식의 세계 그 이상, 이하도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선생님의 글은 끝까지 사람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의 글이다. 그것이 어떤 사명감이나 의무감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 하던 고행자의 글이라기 보단 사람이기에 본능적으로 어쩔 수 없이 이성의 끈을 수차례 잡아당기는 느낌의 글이었다. 본능과 이성은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이 글은 더 놀랍고 경이롭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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