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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이저 Oct 17. 2021

21.10.1

오늘 만난 j란 아이는 교실 벽에 붙어 있는 대한민국 전도를 내가 유튜브 보듯 재미있게 본다. 유튜브보다 더 열심히 보는 게 지도라니. 원고지를 쓸 시간에도, 교재에 있는 문제를 풀 시간에도 틈만 나면 '다 하면 지도 봐도 돼요?'하고 묻는다. 그러라고 하자마자 바로 의자를 돌려 앉고 벽에 붙어 있는 지도를 본다. 지나가다 누가 보면 벌 받고 있는 줄 알것 같다;; 

쉬는 시간에 못참고 지도가 뭐가 그리 재밌냐고 물으니 서울 말고도 세상에 재미있는 곳들이 많아 보인다고 한다. 이때싶 나는 제주도에서 왔다고 아이의 시선이 미처 닿지 않았던 지도 아래에 있는 제주도를 의기양양하게 가리켰다. '그리고 쌤은 전라도도 가보고 경상도 가보고 강원도도 가봤다~~' 허리에 손을 올리고 itzy의 어깨춤을 좀 췄다(진심으로 자랑하고 싶어하는 내가 나도 가끔 부끄럽다).

 '우와 쌤! 비행기타고 얼마나 걸려요? 배타고 가면요? 6.25때 제주도는 안전했나요? 일제강점기때는요?' 눈을 반짝거리며 질문을 쏟아내는 아이 앞에서 슬슬 자세를 고쳐앉고 내 인생 경험치, 지식을 총동원해야만 했다. 유치하게 애 앞에서 자랑이나 하려고 던진 가벼운 말은 곧바로 엄청난 책임으로 돌아온다.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기 전인 어린 아이들을 대할 때 내가 자꾸 간과하게 되는 것은 정말 이 아이들이 나를 통해 난생 처음 접하는 세상을 엿본다는 것이다. 게다가 나를 진짜 '선생님'이라고 생각한다는 것도... 초등학교 6학년 정도만 돼도 내가 좀 뚝딱이고 버벅거리는지 좀 알던데 4학년 이하의 아이들은 나도 모르는 게 있다는 걸 애초에 가정하질 않는다.  

 

j는 역사를 좋아해서 지도도 더 좋아졌다고 한다. 취업을 위해 한국사 자격증을 딴 나의 역사공부와 이런 애가 한 역사공부의 시선은 하늘과 땅차이다. 대답하는 것이 점점 자신없어진 나는 얼른 왜 역사를 좋아하냐고 질문을 했다. "하루하루는 느리게 가는 것 같고 변화가 없어 보이는데 역사책에서는 몇년이 하루처럼 느껴지게 써있는 게 너무 신기해요!" 선생님이라면 무슨 말인지 알지 않냐는 표정을 짓는 아이 앞에서 나는 또 할말을 잃었다. ' 음 뭔가 키팅 선생님 같은 쩌는 느낌의 대사로 마무리 해야해!' 라는 강박을 갖고 열심히 대가리를 굴렸지만 "와,,j 대단한데?!ㅎㅎ" 이상의 말은 나오지 않았고 좌절했다ㅠ.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이야기하는 게 내가 낮추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이런 아이들의 시선을 따라잡느라 가랑이가 찢어질것 같은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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