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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Jul 16. 2024

2. 첫사랑에서부터

  어릴 적 나는 연애에 별 관심 없는 편이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내가 게이라는 걸 알게 된 게 중학교 무렵이었고, 주위에 나 같은 애들이 많지 않다는 걸 자연스럽게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동성애자라는 게 밝혀지면 떠나갈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내 반경에 굳이 들여야 할까? 어릴 때부터 그런 생각을 가져왔기에 내 주위를 둘러싼 사람들에게 무관심했다. 대신에 많은 책을 읽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부터 움베르트 에코, 미하엘 엔데, 발터 뫼르스, 그레고리 메과이어 등등... 이제는 검색해보지 않으면 작가의 이름이 기억나지 않을 만큼의 책들을 읽었다. 점심시간에 책 읽기를 조금 좋아하던 친구를 거의 억지로 도서관으로 끌고 가서 읽어댔으니 말이다. 10분 정도의 쉬는 시간에도 나는 자리에 앉아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그렇게 장원급제를 노리는 선비처럼 외부와 단절돼서 책만 읽었느냐 하면 사실 그건 또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나는 가십거리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A랑 B랑 헤어졌대, 너 B 좋아하지 않았어?" 이런 자극적인 대화들을 책을 읽으면서도 놓치지 않았다.


  누구랑 누구가 사귀고, 남자애가 여자친구 만나겠다고 다른 반에서 찾아오고. 그런 모습들을 보고 나는 코웃음 쳤다. 나이도 어린것들이(비록 나도 어렸지만) 사랑이 뭔지나 알고 사랑놀음을 하겠단 건가? 웃기는 일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내가 더 나이를 먹고 성숙해지면 저런 풋내 나는 불장난 말고 진짜 제대로 된 사랑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 정작 성인이 되고 나서 한 연애들을 어릴 적 내가 보면 뭐 하고 있냐고 욕하겠지만 말이다.


  나의 첫사랑은 다정한 사람이었다. 함께 한복 전시회를 본 뒤 언젠가 한복을 맞춰 입고 경복궁에 가보자고 하고, 함께 캐나다에 이주해서 결혼하고 살자고 하면 따라와 줄 거냐고 묻기도 했다. 시큼한 레몬맛 아이스크림을 각자 한 손에 쥐고 후덥지근한 여름의 이태원 밤거리를 산책하기도 했다. 서로의 이니셜을 새긴 반지를 맞추기도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한 달 만에 환승연애 당했으니 말이다. 헤어지고 나니, 아니 차이고 나니 그의 환승연애 피해자들이 몰려와 너도 당했냐고 물어보기까지 했다. 만나기 전에 그의 평판을 알아봤어야 했는데. 어린 나이에 버스 정류장으로 적당히 이용당한 꼴이었다. 그럼에도 그 모든 빈말들이 다정하게 느껴졌던 것은 작은 불티마저 따스하다 느낄 만큼 고독했기 때문이었을까.


  그렇게 내 기념비적인 첫사랑은 한 달 만에 끝나버렸다. 그가 소문난 바람둥이인 걸 알고 난 뒤로도 한참을 이별 후유증에 시달려야 했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썩 유쾌하지는 않다. 집에서 질질 짤 그 시간에 차라리 친구들과 양꼬치 무한리필 집이나 갔으면 좋았을 것을. 나는 분명 어린애들의 풋내 나는 불장난 같은 사랑 말고 성숙하고 서로의 곁에 남을 수 있는 사랑을 해보고 싶었던 건데, 나보다 나이가 떡국 5그릇 이상 많았던 그는 그냥 여러 사람을 만나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캐나다에서의 동성결혼을 들먹이며 말이다. 웃긴 점은 이후로 만났던 남자들에게서도 캐나다에 가서 같이 살자 급의 휘황찬란한 플러팅은 받아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흔히 말하는 커플템도 이후로는 맞춰본 적 없고. 어린 시절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보면 마구 구박할 게 분명하다.




  "첫사랑은 근사했어?"

  "아니."

  "그럼 사랑하기는 했어?"

  "아마도."

  "사랑에 아마도가 어딨어? 사랑을 해보겠다면서 여태 뭘 하고 다닌 거야?"

  "그러게."




  당시에는 망해버린 첫사랑에 눈물을 줄줄 흘리며 현실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원망이라는 감정도 결국 시간이 지나며 희미하게 바래갔고 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했으므로 그와의 기억은 그저 조금 짜증 나고 황당한 추억으로 남았다. 


  떠나간 사람의 빈자리는 다른 무언가로 채워지지 않는다. 그저 계속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일을 겪으며 내 세계를 넓혀가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지도를 그려나가듯 내 세계를 늘려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뒤돌아봤을 때 소중했던 사람과의 이별로 인해 생겨난 구멍은 더 이상 크게 보이지 않는다. 물론 돋보기로 확대해 보면 그 장소는 여전히 텅 빈 채 변하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겠지만, 더 이상 예전만큼 공허해지지는 않는다. 가고 싶은 곳, 머무르고 싶은 곳이 훨씬 많아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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