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탄천길을 걷다 문득 교토가 떠올랐다. 카모강이 보이는 커피숍에서 본 풍경이 그랬다. 4월이었고, 일곱 시를 넘긴 시간이었다. 열린 창문으로 부드럽고 선선한 강바람이 불었고 하늘은 코발트블루빛에서 채도를 더하고 있었다. 아직 가로등 불빛이 들어오지 않아 산과 나무는 서서히 형태만 드러났고, 징검다리로 건널 수 있는 반대쪽으로는 자전거를 탄 사람들, 걷고 달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위쪽 큰길엔 버스와 자동차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이 서두르듯 스쳐가고 있었다. 저녁에서 밤으로 이어질 때 모든 사물의 실루엣이 선명해 보일 때가 있다. 그래서 환한 낮에는 일부러 보지 않았던 풍경도 밤이 될 때는 눈에 담고 싶어진다. 십수 년을 다닌 탄천 길인데 전혀 다른 곳의 일상적 풍경이 겹쳐진 게 신기했다. 기억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그동안 탄천 길이 교토의 저녁과 같은 기억으로 떠오르는 곳은 아니었다. 몇 해 전 겨울, 한참 아빠의 병문안을 갈 때 매일 탄천을 가로질러 병원에 갔다. 청명한 하늘 아래 윤슬이 흐르는 길을 걸으면서도 풍경이 마음을 비집고 들어올 여유가 없었다. 병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나오면 밤이었다. 갈 때는 마음이 급해서 2킬로미터 남짓한 거리를 빠르게 걸었지만 집으로 가는 길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길 옆의 산과 나무들은 그림자를 덮어쓴 것처럼 어둑한데 가로등 불빛이 내린 탄천은 눈이 시리게 아름다웠다. 청둥오리가 자맥질을 하거나 물이 흐르는 소리도 낮보다 더 또렷이 들렸다. 나는 시퍼런 탄천을 뚫어져라 보거나 밤의 그림자가 된 나무와 산등성이를 오래 응시했다. 별이나 달빛도. 볼 수 있는 풍경은 다 보려고 했다. 그땐 어떤 간절함이 주변을 바라보게 한 것 같다. 내일이면 괜찮아질 거라는 희망을 눈 씻고 찾으려 했다. ‘사랑에는 모양이 없다.’ 영화 <윤희에게>를 보고 다이어리에 적은 말이다. 영화에 대한 기록보다 감정을 써 두려고 하는 편인데 첫마디는 그랬다. 이 영화는 한 통의 편지를 계기로 서울의 윤희와 일본 오타루의 쥰이 다시 만나게 되는 이야기이다. 화려한 미사여구도 사랑 고백도 없는 사랑을 보여준다. 편지를 먼저 읽고 여행을 제안한 윤희의 딸, 쥰이 부치지 못한 편지를 한국에 부친 고모가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게 역할을 해낸다. ‘겨울의 오타루엔 눈과 달, 밤과 고요뿐’이라고 했던 쥰의 편지처럼 사방이 어둡기만 할 때 더 생각나는 사람이 있고, 짙어지는 그리움이 편지를 쓰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쥰의 고모는 버릇처럼 ‘눈은 언제쯤 그치려나’라는 말을 한다. 여기서 눈을 사랑과 그리움으로 바꿔도 영화는 충분히 은유적인 아름다움을 뿜어낸다. 두 사람은 결국 만나게 되고, 서로를 지긋이 바라보고 함께 걷는다. 그리고 다시 각자의 인생을 살아간다. 그리움이든 절절한 사랑이든 사랑하는 존재를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인생은 그 자체로 충만한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의 원제는 만월(滿月)이었다고 한다. 그냥 좋다고 표현 하기에 먹먹한 감정이 남는 영화였는데 얼마 전 이소라의 곡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지 말아요’를 듣다가 <윤희에게>가 떠올랐다.
내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고는 말하지 말아요 보이지 않는 길을 걸으려 한다고 괜한 헛수고라 생각하진 말아요 내 마음이 헛된 희망이라고 말하지 말아요 정상이 없는 산을 오르려 한다고 나의 무모함을 비웃지는 말아요 그대 두 손을 놓쳐서 난 길을 잃었죠 허나 멈출 수가 없어요 이게 내 사랑인 걸요 (중략) 아빠의 장례를 치르던 날엔 눈이 내렸다. 2월에 내리는 눈이었다. 지긋지긋한 겨울이라고 생각했지만 계절에 대한 감각이 흐려질 무렵 봄이 오고 있었다. 처음엔 탄천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병원 건물만 봐도 목구멍이 아파서 눈을 피하기에 바빴다. 몇 번의 계절이 바뀌고 언젠가부터 다시 탄천길을 걷는다. 이제는 탄천을 걷다가 교토의 카모강을 떠올리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 절대적인 것은 없는가 보다. 절대적인 사랑도 절대적인 슬픔도 없다. 바람과 파도에 천천히 깎이고 다듬어지는 암석처럼 슬픔으로 가득했던 마음도 변화했다. 이제는 의식 안에서 살아있는 사랑은 삶과 멀어지지도 않고 오히려 가깝다는 걸 느낀다. 대상이 사라졌어도 여전히 존재하는 무정형의 사랑이 있다고 말이다. <윤희에게>에서 한 통의 편지가 두 사람의 만남을 가능케 하지만 편지가 아니었더라도 사랑은 남아 있다는 걸 알듯이.
사랑에는 방법도 형태도 없지만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있고, 눈을 바라볼 수 있을 때가 모든 사랑의 순간이다. 세상에는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이를테면 탄천과 교토, 아빠, 영화 <윤희에게>, 이소라의 ‘사랑이 아니라고 말하지 말아요. ‘같은 것들. 쭉 나열해보니 연관성 없는 낱말 카드를 한데 모아놓은 것 같다. 섞일 수도 없고 애초에 모양이 없던 것들이 주는 묘한 힘을 믿고 싶다. 내일 걸을 길에는 또 어떤 풍경이 겹쳐질까. 나는 모양이 없는 것들에 자꾸만 마음이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