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NI May 11. 2020

사랑하는 표사마  



  “산소 한 번 가야 하지 않아?”  남편이 묻기 전까지 깜빡 잊고 있었다. 이제는 어버이날이 빨간 날이 아니기도 하고, 엄마와 시어머니께 드릴 선물을 생각하고 오랜만에 가족 여행 날짜를 잡느라 깜빡한  것이다. 얼마 전만 해도 꽃게탕을 먹다가 살을 다 발라주던 아빠를 생각했으면서 어버이날에 아빠를 쏙 빼놓고 있었다니. 평소 아무 때고 생각하면서 까맣게 잊고 지내는 시간도 있다는 게 신기하다.  

  말이 나온 김에 추모원에 갔다. 내비게이션 즐겨찾기에는 ‘표마사’라는 이름으로 아빠가 계신 추모원이 주소처럼 찍혀있다. 표사마는 내가 아빠라는 말보다 자주 불렀던 애칭이다. 어버이날 전날인데 장례식장에는 주차할 곳이 없을 정도로 차가 많았다. 입구에서 카네이션이 큼지막하게 든 꽃을 사면서 긴급 재난 카드를 내밀었는데 결제가 안 됐다. 영업 이익이 10억이 넘는 업장은 카드를 쓸 수 없다고. 장례식장과 영업이익은 뭔가 생각해보지 않은 그림이지만 그만큼 장례식장에 오고, 추모원에 안치되는 사람이 많다는 걸 의미했다. 그도 그런 것이 6년 전만 해도 안치함이 텅텅 비어있던 곳이 몇 년 사이에 빈틈없이 채워지는 걸 봐 왔기 때문이다. 오늘을 살아가느라 의식하지 않는 삶의 순간에는 매일 죽는 사람들이 있구나. 다시 한번 알았다.     

  아는 것과 겪는 것은 다르다. 돌아가다, 떠나다, 사망하다, 영면하다 등 죽음을 표현하는 많은 단어가 있지만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겪기 전까지는 허공에 있는 말일 뿐이다. 중・고등학생 때 부모님을 잃는 친구들을 종종 봤지만 그땐 죽음을 알기에 어렸고, 그 말이 아무리 외워도 외워지지 않는 단어 같았다. 겪고 나서야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앞으로는 삶의 테두리 안에 숨 쉬는 소중한 이들이 하나 둘 떠나는 걸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것에는 순서도 예고도 없다는 예감과 함께 내성이 없는 슬픔을 안고 살아야 한다는 것도. 그러나 슬픔이 감정을 포위하는 것만은 아니다. 존재의 부재는 한 사람의 인생이 왔다 감으로써 생겨나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아도 남아 있는 것들이 있다. 아빠는 작은 풀꽃, 나무, 전어와 굴, 바다, 마카롱, 두릅, 청바지, 파마머리, 비 오는 날, 비틀스와 자동차를 좋아했다. 시도 때도 없이 좋은 마음을 감추지 않고 말해서 옆에 있는 사람에게도 온기를 전하는 분이셨다. 남은 사람은 세상의 모든 자연, 사물, 음악에 한 사람의 언어와 다정한 미소와 정신이 깃들어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래서 부재를 침묵과 슬픔으로 일관하지 않는다. 말라버린 지난 꽃을 거두고 생생한 꽃을 유리에 붙이며 “표사마, 저희 왔어요”라고 불러보았다.       한집에 살 때 표사마는 내가 이런저런 불만을 말하면 가만히 들어주다가 감사한 마음을 가지라고 했다. 직장에 대한 불만을 말할 때는 “일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야.”, “널 고용한 사람들에게 감사해.”, 일이 잘 안 풀린다는 주제로 말을 해도 “지금 건강한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해라.”라는 식이었다. 맥이 풀리는 기-승-전-감사 이론 후에는 대화가 더 길게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마음 한 구석에 맺혔던 게 풀린 기분이었다. 당장의 해결책은 아니지만 딱히 큰 일도 아니고, 조금만 마음을 고쳐먹으면 감사하지 않은 일도 없으니 말이다. 결혼을 한 후 퇴근길에 무서운 놀이터 구간을 지날 때 꼭 아빠에게 전화를 했다. 뻔한 대답이 나올 걸 알면서도 괜히 “힘들어 죽겠어 “라고 푸념을 하면 역시나 감사로 끝이 났다. 경비실 앞에 도착해서 전화를 끊고 하늘 한 번 보고 숨을 크게 뱉으면 아빠의 엉뚱한 감사 이론에 웃음이 났다.  이제는 내가 습관처럼 감사를 말하고 다닌다. 그건 내게 다정한 말이고 위로였는데 전염성이 있어서 남편, 동생, 엄마 할 것 없이 “그래도 이건 참 감사한 일이야 “라는 식의 말을 하고 있다. 일과 육아로 지친 동생이 푸념을 할 때면 “그래도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빈이가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이야.”라고 말하고, 탁구 실력이 늘지 않아서 걱정이라는 엄마에게는 “그래도 건강한 몸으로 친구들하고 탁구 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해요.”라고 한다. 긍정의 마음을 불러온다는 감사 일기도 써 보려고 했는데 나를 주제로 한 감사는 오글거려서 작심삼일로 끝났다. 나는 원래 긍정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아빠 덕에 수시로 감사할 거리를 찾는 습관이 생겼고, 사소한 일에도 리액션이 큰 사람이 되었다. 당신의 말을 기억하고 그 마음을 닮은 사람으로 살 수 있어서 감사하다.               

  어버이날이 왜 공휴일이 아닌가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어버이날은 원래 미국에서 유래된 것이고 우리나라도 2013년부터 공휴일로 지정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여태껏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쉬는 날이 늘어나는 것에 대한 경제적 득과 실의 문제, 기혼 가정에서는 또 하나의 이벤트가 늘어나는 것에 대한 부담, 다른 공휴일과의 형평성 문제, 지정된 날이라도 부모님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입장 등 여러 이해관계 때문이다. 어린이날은 공휴일인데 어버이날은 아닌 게 의아하긴 하지만 빨간 날의 유무가 진정한 문제는 아닌 듯하다. 어버이날이 있든 없든 중요한 건 의무가 아니라 마음이 아닐까. ‘어린이날도 힘든데 어버이날까지 부담된다 ‘, ‘먹고살기 힘들다’라는 식의 댓글을 보니 마음이 불편했다. 있을 때 잘하라는 고리타분한 말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표사마 잘 있어요. 또 올게요.”

 

  한참을 서 있다가 인사를 했다. 아빠가 계신 추모원의 방 이름은 사랑실이다. 사랑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얕은 산에 분홍색과 빨간색 영산홍이 피어 있었다. 차를 타고 가거나 함께 길을 걸었다면 예쁘다고 감탄하는 말을 아끼지 않았을 당신이다. 아빠의 위치에서 바로 보이는 장소에 좋아하는 꽃과 나무가 있고 계절이 보인다. 정말 아빠가 그곳에 계신다면 늘 창 밖으로 계절을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참 감사한 일이다.


  

  표사마가 없는 여섯 번 째 어버이날, 나는 당신을 애도의 마음보다 그저 감사의 마음으로 떠올린다. 이제는 당신의 사랑과 감사의 말이 내가 물려받은 더없는 유산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