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NI Jun 02. 2020

100번째 글을 발행합니다

글을 쓰며 변화한 것




지난주 커피 일기를 발행하며 글 목록이 99개라는 걸 알았습니다. 2017년 8월부터 브런치를 시작했으니 꽤 긴 시간을 글쓰기에 기대고 있었네요.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통해 쓰는 습관을 들이고 싶었고, 이제는 글쓰기와 저를 연결하는 중요한 곳이 되었어요. 매주 한 편의 너무 가볍지 않은 에세이를 써보자는 생각으로 해왔는데 게으른 시간도 있었어요. 글 한 편당 구독자가 한 명만 늘어도 좋겠다는 욕심(?)에 비해 현재 구독자 수는 거대한 성과네요. 벌써 100번째 글을 올릴 때가 오다니. 그동안 더 열심히 쓸 걸 후회가 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누가 시키지도 않은 글쓰기를 지금까지 하고 있는 제 자신이 놀랍기도 합니다. 요즘에는 새로운 주제의 글을 계획하고 있어요. 대단하지 않아도 사소하지 않았던 시간들을 떠올려 보니 그동안 글을 쓰면서 느낀 소소한 일들을 공유하면 어떨까 해서 책상에 앉았습니다. 저도 이곳에서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서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위안을 받기도 했거든요. 그럼 정리를 시작해 볼까요.




글을 쓰며 변화한 것  



1. 나를 들여다보는 힘


  나는 분명 나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하는데 누군가와 대화하거나 싸울 때 나 자신도 몰랐던 나를 발견할 때가 있다. 나는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쓰기를 할 때 가장 먼저 끌어올 수 있는 글감은 나에 관한 이야기다. 친구와 나눈 대화, 간 곳, 읽은 책, 음악, 음식, 관심사, 추억,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 하고 싶은 일과 같이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글감이다. 예를 들어 어떤 책을 읽다가 유독 좋았던 구절은 당시 마음을 대변한다. 유독 지친 날에 유려한 문장보다 ‘힘내’라는 단어에 마음이 움직이는 것처럼 말이다. 힘이 나지 않았던 그날의 상황과 우연히 본 문장이 연결 고리가 돼서 이야기가 시작될 수도 있다. 하나의 소재가 떠오르면 생각이 난 이유, 분위기, 그때의 감정, 하고 싶은 말 등이 가지를 뻗는데 이것이 글을 쓰기 전의 구체화 과정이다.


  생각을 소재로 정하고 살을 붙이는 구체화를 하다 보면 ‘이야기’의 맥락이 생긴다. 한 사람 한 사람은 그만의 우주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사연이 있고 스토리가 있다. 그래서 글은 활자라는 속성을 넘어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다. 매일 다이어리에 일기를 쓰지만 공개된 곳에 글을 쓰는 것은 세상에 발 내딛고 사는 나를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2. 세상을 향한 미어캣 모드


  나를 소재로 끌어다 쓰는 이야기는 언젠가 바닥난다. 어떤 책에서 글쓰기를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발가벗는 일이라고 표현한 걸 보고 공감했다. 벗은 걸로도 모자라 내장까지 다 들어낸 기분으로 글을 쓰는 게 조심스럽고 지칠 때가 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겠지만 나만 아는 창피함이 있다) 이는 소재 고갈과도 다르지 않다. 직접적인 경험을 풀어내는 글쓰기에 지치지 않게 늘 간접적인 공부를 병행해야 한다.  더 나아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 상상 속의 이야기,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드는 글도 쓰고 싶다. 언제까지나 화자가 나인 이야기는 주관적인 시선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더 잘하기 위해 공부가 필요하다는 걸 알아간다. 이제는 습관처럼 미어캣 모드를 장착하고 주변을 탐색한다. 관찰의 확장을 가능케 한 세 가지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책은 나의 스승님


  글을 쓰다 보면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표현, 문체, 종결 어미, 문단의 연결성 등이 보인다. 같은 영화를 보고, 책을 읽어도 사람마다 다르게 쓴다. ‘어떻게 전개할 것인가?’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가장 친근한 대상은 책이다. 주로 에세이가 많은 내 경우는 다른 작가의 글에서 경험을 풀어내는 방식과 시선, 소재, 심지어 목차와 소제목까지도 도움을 받는다. 글을 다 써놓고도 제목을 정하는 게 어렵게 느껴질 땐 아무 책이나 붙들고 목차를 훑어보거나 책장에 꽂힌 책의 제목들을 지켜본다. 그냥 책상에 앉아 있는 것보다 능률이 있다.


  이야기하는 주제와 어울리는 책의 문장을 만나면 글이 든든하다. 내 문장에 편이 생기는 기분이다. 물론 분명한 이유가 있는 인용이어야 한다. 인용을 자주 가져다 쓰면 습관이 돼서 글이 지루해지더라. 이런저런 득과 실을 떠나서 책 읽기는 삶의 질을 높여준다. 또한 읽기로 멈추지 않고 동력을 제공한다. 좋은 책을 닮은 좋은 글을 쓰고 싶어진다.


   신선 냉장고에 보관된 식품처럼 머릿속도 다양하고 새로운 정보를 채워야 한다. 책을 많이 읽는다고 글이 술술 잘 써지는 건 아니지만 쓰는 사람으로의 연결을 매끄럽게 만든다. 처음에는 좋아하는 분야의 책 위주로 읽었다. 시나 소설을 좋아해서 마음에 드는 표현을 필사하고 나도 이런 재주를 타고났으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했다. (한때는 문학소녀를 지향했다) 표현 찾기를 중심으로 하는 읽기는 소재나 사고를 확장시키는 건 아니어서 문학에서 점점 에세이나 인문, 고전을 넘나들며 독서의 폭을 넓혔다. 알고 싶기는 한데 당장 필요하진 않아서 미룬 역사와 과학 분야도 읽을 예정이다. 최근에는 마케터나 광고 기획자, 카피라이터가 쓴 책을 즐겨 읽는다. 영감을 얻는 방식과 기획의 과정이 담긴 스토리, 그로 인해 탄생한 몇 줄의 카피와 문구, 기획의 성과를 통해 창의력을 도구로 살아가는 삶을 엿볼 수 있다. 글을 쓰면서 책에 기대는 폭이 훨씬 넓어졌고 여러 분야에 관심을 가질수록 생각의 외연이 넓어질 거란 기대가 있다.  



② 책 밖의 세상과 아이디어 노트


  책 읽기는 시간을 필요로 하지만 시대의 속도와 발맞춘 다양한 매체가 존재한다. 한마디로 읽을 것만큼 볼 것도 넘치는 세상에 살고 있다. SNS 계정이 없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시대인 만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글과 사진, 영상으로 드러낸다. 타인의 계정을 보다가 몰랐던 나무와 꽃의 이름을 알게 되고, 영화와 책을 접하고, 사소한 생각을 적은 글에서 영감을 얻는다. 드라마에서 무심코 흘러나온 대사나 라디오의 사연도 마찬가지이다. 책을 소재로 한 팟캐스트를 들으며 같은 책을 읽은 사람들의 생각을 엿보기도 한다. 서점에 가지 못해도 인터넷으로 서점의 큐레이션 메일을 받고, 자산 운용에 관한 메일링 서비스를 통해 요즘 무엇이 돈이 되고 시장을 움직이는 키워드인지도 알 수 있다. 텍스트를 좋아하다 보니 간판 이름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최근 가장 신선했던 가게 이름은 5일장에서 본 ‘엿 먹어’였다.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서 사람의 내면을 상상하기도 하고 그 질문을 나에게도 한다. 음악의 가사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열린 감각으로 세상에 널린 영감의 재료를 줍고 수집한다.  


  글을 쓰기 전에 항상 아이디어 노트라고 부르는 종이에 이런저런 생각들을 낙서한다. 단어나 생각나는 문장을 늘어놓고, 노랫말, 오늘 본 꽃의 꽃말을 찾아 적을 때도 있다. 거리나 커피숍에서 우연히 들은 말도 놓치지 않는다. 가령 커피숍에서 아주머니들이 대화를 나누는데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야”라고 하는 말이 재밌어서 적기도 했다. ‘나도 누군가에게 고쳐 쓰지 못할 사람일까?’,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나?’, ‘고쳐 쓰지도 못할 인간은 어떤 인간일까?’ 이런 식으로 생각이 똬리를 풀고 자연스레 이어지도록 둔다. 오합지졸로 놓인 기록들은 노트를 차지하고 앉아 “날 가지고 뭔가 써보지 그래?”라고 말을 건넨다. 기록(글쓰기)을 위한 기록(메모)이 중요한 일상이 되었다.



③ 새로운 표현의 도구


  매거진 <커피 일기>는 바리스타 학원을 수강하면서 시작했다. 원래는 글로 쓰려다가 커피를 배우는 과정을 글로만 표현하기에는 뭔가 아쉬웠다. 그때 나는 겁도 없이 그림을 그리기로 결심했다. 낙서로도 뭔가를 그려보지 않은 내가 무작정 선물 받은 아이패드로 디지털 드로잉을 시작했다. 익숙지 않은 무료 애플리케이션으로 그리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그렸고, 역시 세상에 쉬운 일은 없었다. 글의 재미를 위해서 소소하게 시작했는데 소소는커녕 일거리가 하나 더 늘어버린 기분이었다. 그러나 평소 글에 집중했던 사고방식에서 방향을 틀어 그림으로 표현해보니 또 다른 감각이 발휘되는 즐거움이 있었다. 가끔 글과 그림이 잘 어울리고, 주변에서 반응이 좋으면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커피 일기뿐 아니라 간혹 에세이를 쓰는 날에도 글과 어울리는 그림을 그린다.


  몇 달 전부터는 프로 크리에이트 툴로 그림을 그리는 온라인 수업을 듣고 있다. 선생님은 “꾸준히 그려보세요.”, “계속해보세요.” 라는 말을 자주 한다. 창의력의 원천은 갑자기 튀어나온 참신함이 아니라 부단한 연습과 노력에 있음을 배우는 중이다. 처음에는 작은 그림 하나를 그리는 데도 손에 힘이 들어갔는데 계속 그릴수록 전보다는 나은 것 같다. 그림을 그리거나 온라인 수업 내용을 적어두는 그림 전용 노트도 만들었다. 글쓰기 덕분에 그림도 그리게 된 셈이다. 더 노력해야겠지만 이런 변화는 그린 라이트라고 생각한다. <커피 일기>는 느리긴 해도 나만의 그림체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자 글쓰기의 즐거움을 더해주는 표현의 도구이다. https://brunch.co.kr/magazine/coffeenote




3. 조금은 비참하고 조금은 대범해진다


   앞서도 적었지만 내 이야기를 한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은 글을 읽고 ‘이런 일이 있었구나’라고 할 수도 있고, ‘별 것도 아닌 일인데 과장해서 썼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또 어떤 이는 내 생활에서 글쓰기가 차지하는 비중을 잘 모르고 “그건 취미 생활이야?” 묻기도 하고, 코로나 바이러스로 일을 잠시 쉬고 있다고 하니 “그럼 집에서 글 쓰면 되겠다”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브런치 구독도 안 하고 내가 쓰는 글에 일절 코멘트가 없던 사람의 말이라 황당했다)


  사실 내가 쓰는 글을 더 드러내고 용기를 내지 않는 이상 사람들의 반응은 그 정도일 것이다. 브런치를 벗어나 표현할 수 있는 용기, 과정의 지난함도 공유할 수 있는 여유가 아직은 부족하다. SNS를 잘 활용하는 창작자들을 보면 혼자 밑 빠진 독(브런치)에 물을 붓는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주변에서 잘 읽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공감되는 피드백을 얻기도 한다. 그렇게 조금은 비참하지만 조금은 대범해지고 있다. 좋아하는 일을 잘하고 싶은 마음에는 변함이 없어서 가능한 일이다. 이런 마음과 관련해서는 도움을 받은 글이 있다. 재수 작가의 인스타그램 계정에서 본 글을 인용한다.




SNS를 창작에 도움이 도는 방식으로 활용하는 창작자분들께


 SNS를 창작에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활용할 때 오히려 가까운 지인들의 반응이 가장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반응이 가장 중요하다고 쉽게 착각하기 때문에 지적 혹은 무반응까지도 창작열을 저하시키는 쪽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넘어서야 창작물을 만들고 또 보여주는 것에 용기가 생깁니다. ‘SNS를 내 창작물에 대한 가까운 지인들의 반응 그 너머를 살피기 위한 활동’이라고 생각을 콕 집어두면 마음이 더 편해집니다. 그때부터는 오히려 가까운 지인들의 그 어떤 반응도 이해가 되고 한층 더 고맙게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생각으로 얻어지는 마음의 작은 여유를 확보하는 것은 창작활동에 도움이 되지 않는 자잘한 번뇌와 마음의 옹색함을 떨쳐버리는 것에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이것을 내가 더 일찍 알았으면 어땠을까 생각이 들어 정리해둡니다. 아주 미묘한 부분이지만 저와 입장이 비슷한 창작자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출처: @jessoo)     




4. 다시 글쓰기


  브런치를 둘러보면 솔직하고 재미있는 글이 넘쳐난다. 제목만 봐도 클릭을 부르는 글부터 이렇게 솔직해도 괜찮을까 싶은 글을 읽으면서 내가 가진 이야기 주머니를 뒤적인다. 잡지사에 다닐 때도, 오랜 강사 생활을 하면서도 늘 가방 속에는 책이, 마음 한편에는 글이 있었다. 그것이 마음만은 아니라는 것을 브런치를 시작하면서 시험해 보고 글을 쓰면서 이어갈 수 있었다. 청탁이나 출판을 위한 목적으로 쓰는 글이 아니더라도 쓴다. 아무래도 나는 계속 쓸 것 같다. 바람이 있다면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고 실패도 하면서 계속 쓰는 것이다. 글을 쓰면서 변화한 것들을 되짚어 보니 ‘왜 쓰는가’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쓰면서 나를 위로하고, 보다 타인을 살피고, 삶을 바라보는 혜안을 넓혀 나간다. 어쩌면 쓰는 사람은 사랑에 빠진 사람이 아닐까. 하필 사랑에 빠진 이유를 묻는다면 답하고 싶은 문장이 있다.



 사랑의 시작은 어쩌면 사소한 디테일에서부터가 아닐까? 우리는 무언가의 디테일 하나에 마음을 뺏기고는, 그것을 사랑할 100가지 이유를 찾고 있는 건 아닐까?   


                                                    유병욱 <평소의 발견> 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