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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Joon Sep 17. 2022

남을 변화시킨다는 불가능

안 좋아하는 걸 좋아하게 할 순 없다

너무나도 유명한 일화다. 한 작가 지망생이 어렵게 존경하는 작가를 만나 조언을 구했다. 당장 세상이 끝나도 꼭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말겠다는 구구절절 절실한 마음을 조용히 듣고 나서 작가가 물었다. "어떤 글을 쓰고 있나요?" 당황한 지망생이 대답했다. "바빠서 아직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눈살이 찌푸려진 작가가 다시 물었다. "그럼 책은 읽고 있나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가 겨우 나왔다. "아니요. 읽을 시간이 없습니다." 차가워진 얼굴의 작가는 단숨에 외쳤다. "때려치워라, 이놈아. 하고 싶고 되고 싶은데 하루에 단 1분도 사용치 않고 바라기만 하는 게 도둑놈과 뭐가 다르냐!"


책을 내고 나서 종종 질문을 받는다. 어떻게 책을   있었냐고. 다른 이유가 없기도 하고 진실이기도 해서 글쓰기가 좋아 계속하다 보니 되었다고 하면 별로 믿지 않는 눈치다. 뭔가 특별한 계기나 결심이 있었던  아니냐며 재차 묻는다. 그런  없이 쓰는  재밌어서 꾸준히 즐겼더니 기회가 찾아왔다고 솔직하게 전할 뿐이다. 가끔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본인도 쓰기 좋아하고 이름 박힌    내는  평생소원이라며 대화를  이어 나가려는 사람이 있다. 반가운 마음에 그저 먼저 했을 뿐인  경험이 도움이 된다면 얼마든지 알려 드리겠다며  발짝 다가서지만,  단단하게 가로막힌 벽을 발견한다. 그렇게 좋아한다면서  글자도 안 있기 때문이다. 쓰는  그렇다 치더라도 내고 싶다는 책도    읽는다.  이상 해줄 말이 없어 서둘러 뒤돌아 도망친다. 좋아서 한다는 유일한 공감대가 빠진 상태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테니. 쓸데없이 잡혀있기 싫어 아무거나 둘러대고 빠져나오면 문득 심각하게 궁금해진다. 시간과 정성을 전혀 들이지 않는데 입으로만 좋아한다고 하면 좋아하는 건가 싶어서.


이젠 흔해진 '덕후'라는 말. 좋아하면 깊숙하게 빠져들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지식과 경험을 쌓기 마련이다. 누가 봐도 좋아하는 진심을 알 수 있다. 온몸으로 행동하고 있기 때문에. 실천이 빠져있는 취향이 진실일까. 운동을 좋아하는 데 몸으로 직접 하거나 눈으로 관람하지 않고, 노래를 좋아하는 데 목으로 직접 부르거나 귀로 듣지 않는다면 좋아한다고 할 수 있을지. 관심이 있다면 움직이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만큼 덜 좋아한다는 뜻이다.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과의 데이트에 나가기 싫은 마음을 떠올려보자. 적극적인 행동을 위해선 취향의 강도가 세져야 한다. 요만큼 밖에 좋아하지 않는 걸 이만큼이나 당장 움직일 만큼 좋게 만들어야 한다. 억지로 '이제부터 이걸 많이 좋아하겠어!'라고 다짐해도 마음이 변할 리 없다. 아무리 혼자 좋아한다고 생각하고 주변에 좋아한다고 떠들어도 정작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면 딱 그만큼 덜 좋아하는 거다.


문제는 혼자 해결하지 못하는 욕심을 채우고 싶어지면서 생긴다. 별로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정말 좋아하는 사람만큼 이루고 싶은 마음에 괜히 안달이 난다. '나도 이만큼이나 간절하고 바라는데  나는  될까?'라면서 조급해진다. 행동이 없어 생기는 차이가 쉽게 좁혀지지 않자 답답해하며 실제로 즐기는 남을 찾아간다. 소용없다. 바라는 도움은 남이 해줄  없는 대상이다. ' 좋아하게 만들어 주세요.' 이걸    있는 남이 어디 있겠나. 남의 행동을 끌어낸다는  결국 취향을 변화시킨다는 말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사람을 '덕후' 수준까진 아니어도 주변에서 한눈에 알아볼 정도로 실제로 즐기게 만들어야 한다.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불가능하다는 말은 이럴  써야 한다. 자기 마음도 좋아하고 싫어하는  마음대로  한다. 근데 그걸 밖에 있는 남이 이래라저래라   있겠는가. 도울  있는  없다고 시인하면 믿지 못한다. 별것도 없으면서 감춘다고 여기며 못마땅해한다. 나도 너만큼 좋아하는  여건이   뿐이라며 편하게 핑계를 뱉어가면서.


'하고 싶은데 못해서' 남에게 상담과 조언을 받고 만족해하는 걸 목격하면 의심한다. 도대체 무슨 말을 주고받고 나서 흡족하게 돌아섰을까? 타인의 선호도를 올려줄  있는 상담가가 대단한 건지, 아니면 남의 말을 듣고 순식간에 취향이 강해진 방문객이 대단한 건지 모르겠다. 사실이라면 이제부터 세상에 짝사랑은 사라져야 하지 않을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갑자기 좋아하게 만드는  가능해졌으니까. 남이 좋아하는 대상과 정도를 마음껏 휘두를  있다면 손쉬운 일일 테니. '무슨 헛소리를 이렇게 진지하게 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제대로 의도를 파악했다. 바로 그게 ‘정말 좋아하는  아직 시간이 없어서  하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있을까요?’ 들을 때의  마음이다. 실제로 좋아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남이 좋아하게 만들  있을까? 다른 이의 취향을 변화시키는  어불성설이다. 취향이 변하지 않으면 행동도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타인의 행동을 바꾸는  있을  없는 일이다.


'무엇이 좋다'라고 착각하기 좋은 세상이다. 보기에 화려하고 멋져 보이는 게 많으니까.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다 좋다. 말로 좋아하는 건 쉽다. 계속 내뱉다 보면 진짜로 좋아한다고 믿게 된다. 환상이 사라지는 건 한 발짝 나서서 실행하려고 할 때다. 망설여지고 귀찮아지고 미루게 된다. 손쉽게 느꼈던 흥분된 감정은 온데간데없다. 행동할 수 있는 취향은 많지 않다. 살면서 진짜로 좋아하며 움직이는 순간은 손에 꼽는다. 시간과 정성은 유한하기에 몸으로 보여주는 대상이 우리가 정말로 좋아하는 거다. 전부 다 하고 살 순 없다. 이걸 좋아해서 하면 저걸 좋아해도 할 수 없다. 어제 기꺼이 한 일을 떠올려보자. 운동을 하고 책을 읽었다면 그걸 좋아하는 거다. 유튜브를 보고 게임을 했다면 지금은 그걸 좋아하는 거다. 우리가 한 일이 지금 우리가 좋아하는 일이다.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 건 의지나 노력이 부족해서 그런 게 아니라는 점이다. 단지 덜 좋아할 뿐이다. 행동과 바람이 다르다고 스스로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이거 좋아하는데, 저거 하고 싶은데’라는 말은 무의미하고 무용하다. 아무리 그런다고 행동 없는 희망 사항이 갑자기 온몸을 바칠 정도로 바뀌지 않는다. 차라리 '많이 안 좋아해서 말만 하고 안 하는구나'라고 인정하는 게 덜 괴롭다. 한 발짝도 물러서기 싫어서 '절대 그런 거 아니고 이런저런 이유 때문이야'라고 줄줄이 입에서 나온다면 이미 안될 이유가 좋아함을 앞선다는 반증이다. 진짜로 좋아하면 핑계는 사라진다. 안 좋아하는 걸 괜히 좋아한다고 비틀어 위안하며 스스로 괴로워하지 말자.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살기도 짧은 시간이니까.


남이 무엇을 좋아하게 만드는 방법을 모른다. 그런 방법이 있다고 믿지도 않는다. 남에게 내가 좋아하는 것을 권하지 않는다. 확률 없는 일에 소중한 에너지를 쓰고 싶지 않아서. 건강하기 위해 운동을 하라고, 세상을 알기 위해 책을 읽으라고, 더 나은 자신을 위해 글을 쓰라고 하지 않는다.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저 좋아하는 대상과 강도가 다를 뿐이다. 변화는 스스로 깨닫고 정말로 좋아지면 일어난다. 결국 다 자기가 알아서 하는 거다. 취향의 변화, 그러니까 행동을 바꾸는 일은 남이 해 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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