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혼 후 세 번의 만남(3)
뒤늦게 울던 그 애를 보고 온 다음 날. 헤어지고 나서 처음으로 사람들과 술을 마셨다. 갈증을 달랜답시고 집에서 맥주 한 캔 정도 한 적은 있지만 밖에서 사람들과 소주를 마신 건 처음이었다. 술을 마셔버리면 혹시라도 무너질까봐 참았고 코로나 시국은 그런 뜻하지 않은 금주를 도와줬다.
대학원 동료들과 학기 중간에 가졌던 술자리였다. 간만에 함께 한 사람들과 즐거웠고 술집에 흐르는 옛 노래들은 흥겨웠다. 이상하게 정말 오랜만에 마시는 소주였건만 도무지 취하질 않았다. 표면은 당장의 즐거움으로 파도쳤지만 그 아래엔 그가 깊고 밀도있게 흐르고 있었다. 술자리가 무르익을수록 선명해졌다. 가을 밤 공기는 적당히 차분했고 나는 연락을 했다. 너 이사 가기 전에 한번만 집 보러 가게 해 달라고.
차에서 내린 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으로 향했던 나는 아이패드를 설치하다 카톡으로 그에게 몇 마디를 남겼었다. 잘 쓰겠다고, 그리고 넌 좀 솔직하게 살라고. 집에 들어와 해가 질 때까지 한참을 울고 나니 비로소 모든 감정이 비워진 것 같았다. 그래서 마치 7년 전 친구 사이로 되돌아간듯 쿨하고 미련없이 말했다. 자신에게도 솔직하고 남에게도 그 마음을 좀 더 드러내고 살길 진심으로 바랐다. 그 역시 내게 잘 알겠다며 연락 줘서 고맙다고, 잘 살라 했다. 그랬던 대화창에 나는 또 다시 먼저 제안을 한 것이다.
7년을 만나고 평생을 약속한 사이, 결혼까지 한 달 남은 그런 사이였는데. 내 전부를 걸고 믿은 사람이었는데.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무책임한 도망은 그를 쉽게 놓아주질 못하게 했다. 들어야만 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건지. 왜 파혼 후 집 정리는 네가 아니라 네 누나가 했는지. 내게 남은 네 흔적들은 내가 치우는데, 내 흔적들을 왜 스스로 못 지우고 타인에게 놔뒀는지. 왜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그렇게 마무리까지 피하냐고 묻는 내게 되려 자신이 그런 사람이었냐고 화를 냈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까지 해놓고 너는 뒤늦게 울었는지. 이제 와서 아무런 소용없는 얘기지만 나는 알고 싶었다. 가을의 한낮에 보인 눈물로는 부족했다. 그의 입으로 무슨 말이라도 듣지 않으면 영원히 가라앉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내게 월요일 저녁에 오라고 했다. 나는 내 요청을 순순히 들어주는 그 역시 이것을 우리의 마지막으로 생각하리라 여겼다.
일과 후 나의 집, 우리집일뻔한 곳으로 향했다. 저녁을 먹겠냐는 말에 데이트도 아니고 밥을 또 먹냐고 거절했다가 그냥 그러자고 했다. 그가 먼저 이사를 오고 난 후 크리스마스 이브를 함께 보냈던 집 근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만났다. 매년 기념일마다 오게 될 줄 알았던 곳을 헤어지고 같이 오다니, 씁쓸했다. 그래도 헤어지고 세 번째 보는 거라고 이젠 밥 먹는게 좀 익숙했다. 두 개 메뉴를 나눠 먹었다. 지난 만남에서 말했던 여우가 그려진 니트를 입고 있는 걸 알아챘다. 헤어지고나서 젊어보이려고 비싼 옷을 사봤다고 했다. 나랑 만나던 때는 하지 않았던 것들을 시도했다는 사실에 우리의 헤어짐을 다시금 체감했다. 근데 너 그거 입는다고 어려보이는건 아니야, 피식 웃으며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향했다. 앞으로 손잡고 함께 오르고 내릴 생각에 행복하고도 당장의 헤어짐이 아쉽기만 했던 언덕 길이었는데 제법 차가워진 가을 바람 속에서 말없이 앞뒤로 떨어져 걸었다.
집에 들어갔다. 내가 집을 떠날 때와 달라진 건 없었다. 내 짐을 챙기러 엄마와 도착했을때, 이미 그의 가족들이 정리를 해놔서 내 흔적이 깨끗하게 사라졌던 그 날과 똑같았다. 내 사진, 우리 사진, 여행하며 모은 몇 개의 냉장고 자석들, 기념품 등 우리가 함께 했던 흔적들이 모두 사라졌던 그 집. 그대로네, 말했더니 뭐 달라진 게 있겠냐고 머쓱하게 대답했다. 내가 고른 냉장고, 함께 밥을 먹던 식탁. 동생이 선물해줬던 커플 머그잔이 싱크대에 엎어져 있는 걸 보고 웃었다. 넌 이걸 쓰고 싶디? 그 애도 뻘줌하게 웃었다. 식구가 늘면 가운데 모듈을 하나 더 사서 끼워넣으면 된다고 의기양양하게 골랐던 소파. 사놓고 한 번 잠들어보지도 못했던 혼자 쓰기엔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큰 킹사이즈 침대, 오랜 고민 끝에 거금을 주고 샀지만 한 번도 내 물건을 넣어보지 못한 맘에 쏙 들었던 서랍장까지. 둘러보는 데 5분도 안 걸렸던 것 같다. 코가 시큰해져서 집을 등지고 현관문을 향해 섰다. 집 구경은 이렇게 시시하게 끝날 줄 알았다. 나는 듣고싶은 말이 있어서 온 거였지만 등 뒤엔 침묵 뿐이었다. 돌아서서 소파에 다시 앉아 내게 할 말이 있지 않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신발을 신었다. 그에게 내가 먼저 그 말을 꺼낼 수는 없었다.
“다 봤다. 이제 가볼게.”
현관문을 나와 긴 복도를 걸으며 마지막 풍경을 눈에 꾹꾹 담았다. 설렜고, 때론 뭉클했고 아쉬웠고, 깊게 절망했던 밤의 복도를 떠나 침묵 속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그는 주차장 입구까지 데려다준다고 했다가, 차가 있는 곳까지 배웅을 하겠다고 했다 이내 차에 올라탔다. 지하까지 내려왔으니 지상에서 내려달라고. 너도 이게 마지막이라는 걸 느꼈구나. 올라가면서 파혼 전날 광경이 재현됐다. 나와 만나는 7년 동안 단 한 번도 헤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던 그의 옆모습이 겹쳐졌다. 물론 그 말이 이제는 헤어져야 하는 때라는 뜻이었다는 걸 나는 시간이 지나 알게 됐었다. 주차장을 천천히 빠져나가며 그가 먼저 입을 열길 기도했다. 그러나 그의 입술은 여전히 무거웠고 우리는 어느덧 아주 천천히 아파트 단지를 배회하고 있었다. 마지막이라는 걸 알면서도 너는 왜 나를 보지 않는건데.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먼저 물었다.
“나한테 할 말 없어?”
비상등을 켜고 차를 세웠다. 그는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나는 할 말이 있지 않냐고 울음을 터뜨리며 다시 소리쳤다. 나를 위해서라도 이제 너에게 더는 기회를 줄 수 없어. 그는 나를 바라보는 대신 차문을 열며 말했다.
“우리 이게 마지막이 아닐거야.”
나는 오늘 모든 걸 털고 가려고 했지만 그는 아니었다. 도대체 이게 마지막이 아니면 언제가 마지막이라는 거야. 얼마나 더 아파하라는 거야. 파혼을 고하는 편지를 받은 날처럼 나는 오열했다. 그러나 그가 언제나 피해왔듯 나는 또다시 마지막까지 더 기회를 줬다. 차에서 내려 서있는 그에게 창문을 내리고 소리쳤다.
“오늘이 마지막이야. 이제 더는 없어!”
내게 말해줘. 그 이해할 수 없는 무책임했던 끝은 새로운 갈등에 너무 힘이 들어서였다고. 사랑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말도, 힘들고 정신이 없어서 일단 그렇게 덮어버렸던 거라고. 그렇게 갑자기 내 손을 놓아버려서 미안하다고 해줘. 혼자 도망쳐버려서 비겁했다고 반성해줘. 그렇게 떠난 자리 홀로 추스르느라 고생했다고 말해줘. 아니, 미안하고 고생했고 그런 말도 필요없어. 그저 우리가 한 건 사랑이 맞았다고, 우리가 사랑하긴 했었다고 말해줘 제발. 내게 너는 처음이었고 또 마지막일 사랑이었다는 걸 잘 알잖아.
그러나 그는 그대로 등을 돌려 내려갔다. 드라마 찍는 것도 아니고 나는 운전대를 붙잡고 소리내어 울다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집에 돌아왔다. 나는 오늘 모든 걸 끝내야만 했다. 나를 위해서 더는 이 감정을 길게 끌 수 없었다. 왜 오늘 그를 보러 갔는지, 그에게서 무엇을 바랐는지, 잘 보내주고 싶었다고 연락을 남겼다. 그러다 답이 없기에 전화를 걸었다. 그는 전화를 받았다. 나는 감정에 북받쳐서 바보같이 떨리는 목소리로 울며 얘기했다.
“너 나한테 사과해. 미안하다고, 고생했다고 말해. 그 얘기 들으려고 간거였어.”
내가 다시 무너진 걸 보았기 때문일까 전화 너머 그는 우는 것 같지 않았다. 그는 내가 요구한대로 차분하게 미안하다고, 고생했다고 말했다. 소리지르는 모습이 마지막인건 싫었는데 미안하다는 바보같은 내게 그는 말했다. 소리지르는 사람으로 기억했다면 안봤을거라고, 항상 예쁜 사람인 나를 더 이상 아프게 하고 싶지 않다고. 그렇게 말하는 그에게 ‘내가 그렇게 예쁜데 나를 왜 놓았어’라는 질문은 메아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을 직감했다. 나는 더 묻는 대신 내 눈을 보고 말했어야 한다고 비겁하다고 했다. 그는 어떤 이유가 됐든 연락줘서 고마웠다며 늘 나를 응원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걔보다 더 멍청하고 착해빠졌다. 바보같은 난 말도 없이 떠나버린 그의 마음까지 보듬으려 했다. 그래, 너도 내 손 놓느라 힘들었겠지. 날 놓는 게 덜 힘들 것 같아서 놓았겠지만 그래도 고생많았어. 나도 네 삶을 응원할게.
그렇게 가을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