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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독관리사무소장 Nov 30. 2017

[그럼에도 불구하고]트레일 데이즈(Trail Days)

<시즌1> 2,189마일 애팔래치안 트레일 걷기 (D+24)

2017.05.20 SAT 흐리다가 비

Zero day + Trail days


마을에서의 휴식은 항상 짧게만 느껴진다. 호텔 체크아웃시간인 11시까지 꽉 채워 호텔에서 있다가 다시 산에 가기로 하였다. 호텔에서 나와 아침 겸 점심으로 햄버거를 먹으며 열리고 있는 트레일 데이즈에 참석할찌 여부를 한참 이야기하였다. 우리의 원래 계획처럼  트레일 데이즈가 열리는 다마스커스까지 걸어서 도착할 수 있다면 제일 좋았을테지만, 지금 있는 어윈에서 다마스커스까지는 적어도 100여킬로를 가야했기 때문에 히치하이킹을 하던지 해야했다. 그것도 말이 히치하이킹이지 몇번의 히치하이킹을 해야할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운이 좋아야 다마스커스 방향 혹은 트레일데이즈에 가는 사람을 만난다면 몰라도. 우리는 트레일데이즈에 흥미가 있기는 했지만 다녀오는 시간과 비용 등을 생각해보았을 때 굳이 갈 필요가 있을까도 싶었다. 아쉽기는 해도 트레일데이즈는 패스하기로 하였다.



햄버거를 먹고 트레일헤드로 가기위한 히치하이킹 이 잘 될 만한 자리로 걸어갔다. 그러던 중 어떤 한 차가 우리 앞에 멈춰섰다.


"너네 혹시 트레일데이즈가니? 나 지금 가는 중인데!"


신기하면서도 다소 황당한 순간이었다. 손을 들지도 않았는데 우리 앞에 트레일데이즈에 데려다 준다는 차가 멈춰선 것이었다. 오빠와 나는 순간 눈빛을 교환하고 마구 머리를 굴렸다. 어찌하는게 좋을까. 고민하는 우리의 모습이 보였는지


"트레일데이즈갔다가 너네가 원하는 때에 다시 이곳에 태워다 줄께."


라고 말하였다. 트레일데이즈에 갈까말까 고민하던 것 중 가장 큰 고민거리를 해결해 준다니 안 갈 이유도 없었다. 그래 가자!


우리를 태워준 친구와 한참 이야기를 하며 다마스커스를 향해 달려갔다. 그의 이름은 '자이언트'인데 이름에 걸맞는 체구를 가지고 있었다. 운전석이꽉 차보일 정도로 큰 키와 덩치였다. 마치 거인과 같았다. 그는 예전에 군인이었다가 AT를 걸었고 그때 추억이 너무 좋아 매년 트레일데이즈에 참가하고 있으며 그때마다 트레일엔젤처럼 하이커들을 태우기도 한다고 했다. 이번에도 혹시 트레일 데이즈에 가는 하이커들이 있나하고 마음으로 마을에 잠시 들렀는데 우리를 발견했던 것이다.


누군가가 들으면 위험하거나 다소 무모한 행동이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사전에 통성명도 없이, 히치하이킹을, 그것도 잘 가고 있던 사람 앞에 멈춰선 차에 탈 생각을 어떻게 하냐고. 나도 예전같았으면 상상도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도심에서는 여전히 겁내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왠지 여행객들, 그것도 이런 배낭여행 혹은 하이커들 대상으로는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나쁜 일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여행다니고 있는 곳이 주로 작은 마을이라 괜찮을 것이고 무엇보다 아직 세상은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물론 히치하이킹을 해서 나쁜일을 당하는 경우도 있으니 늘 조심해야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순간 좋은 인연을 만날 수도 있는 것이니 아이러니하기도 하다.


호스텔에서 만난 개. 이 아이도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고 있는걸까



한 시간정도 달리자 다마스커스에 도착하였다. 달리는 동안 점차 흐려졌던 하늘에서는 어느샌가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맙소사 트레일 데이즈에서도 비을 만나다니. 그것도 꽤나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다.

우리가 출발했던 마을로 돌아가는 날짜와 시간을 자이언츠와 약속하고 잠시 비를 피했다. 비는 쏟아지지만 마을은 하이커들로 매우 붐볐고 다들 한껏 신나 보였다. 비가 좀 그치고 나서 텐트사이트에 텐트를 치러갔는데 AT의 최대 행사답게 정말 많은 하이커들이 모여있었다. 아마 한 공터에 그렇게 많은 텐트가 쳐있는 모습은 생애 처음 본 것 같다.


집에 가지고 가고싶었던 익살스러운 느낌의 인형.


오후가 되자 다행이 비는 멈췄고 해가 얼굴을 드러냈다. 트레일 데이즈를 구경하러 나섰는데 예전 AT에서 만났던 친구들은 물론 스톤, 올굿 그리고 쉐퍼드도 만났다. 모두 반가웠지만 멕시코, 과테말라에서 같이 자전거여행을 했었고 AT일정을 맞추려고 계속 노력했던 쉐퍼드를 만나니 정말 반가웠다.


많은 하이커들이 모이는 행사였지만, 우리가 다른 하이커들에 비해 AT를 늦게 시작하였던지라 (가장 붐비는 시즌은 3월초부터 4월초인데 우리부부는 4월 말에 시작하였다.) 트레일데이즈에서 만나 함께 어울릴 만한 일행들이 별로 없어 아쉬웠다. 무엇보다 또 비가 내리는 바람에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함께 시간을 보낼 여유도 없었고. 아쉬움이 나기도 했지만 세상의 모든 경험을 해보고 싶은 우리부부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기도 하였던 그런 날이었다.


Facebook : @seeyouonthetrail
Instagram : @stella_sky_asit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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