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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싯적 문학소녀 Nov 11. 2022

무슨 소리야, 돈이 제일 중요하지

프리랜서가 견적 협상할 때 생각해야 할 것 

프리랜서가 이렇게 낭만적인 삶이었던 적이 얼마나 있었나? 

20대 때 내게 돈이란 열심히 그리고, 멋진 커리어우먼처럼 일하다 보면 자연히 따라오는 것이라고 허무맹랑하게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도 웃기고 철없는 생각이었다. 교통비와 점심값쯤 치르고 나면 몇 푼 안 되는 급여로 친구들과 밤새 술도 마시고, 아침 일찍 출근하더라도 일 자체에 전혀 불만은 없었다. 가끔은 인턴이라는 이유로 치사하고 나 자신이 작아지기도 했지만 그것 또한 나중에, 아주 나중에 정식 에디터가 되면 다 털어버릴 일이라고 치부했다. 에디터가 된 후에도 그런 감정은 생기지 않았지만. 


아, 돈을 제대로 벌어야지. 

이런 생각이 든 것은 아마 20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넘어갈 즈음. 20대 초반부터 휘황찬란한 명품에 휘감기며 살다 보니 내 월급으로는 작은 카드 지갑 하나를 6개월 할부로 쪼개 살아야겠더라. 그것도 정말 일이 힘들 때 충동적으로 산 명품들. 그 시절 주변 친구들은 내가 명품을 들고 가면 전혀 이름도 모르던 그런 것들. 이거 비싼 거라고 우겨봐야 비웃음만 샀던 시간들. 그 친구들과는 지금 사는 방식도, 살고 있는 모습도 많이 다르다. 


30대 이후에 내게 돈이란 내가 개척해야 하는 분야가 되었다. 패션 업계에서 조금 판을 넓혀 뷰티, 헬스케어, 테크 등 다양한 분야를 접했고 잡지사 에디터라는 세계가 정말 작은 세계였다는 사실도 깨우치면서 부딪쳐 가는 중. 일을 하면 당연하게도 돈이 들어오기 때문에 '돈'을 직접적으로 컨트롤한 일은 없었다. 아, 이 정도 주면 이 만큼 받아야지. 내가 하는 일에 대한 대가를 어떻게 산정해야 하는지, 얼마를 받아야 하는지 어떻게 결정해야 하는지 아무도 가르쳐준 적이 없기 때문에 나는 항상 돈 얘기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 직장에서도 연봉 협상이 제일 어려웠다. 


지금도 어린 친구들은 연봉 협상이 어려울까. MZ세대들은 자기 할 말, 못할 말도 잘한다던데. 그렇게 뭉뚱그려 얘기하는 것도 몇몇 친구들에 대한 부풀려진 얘기겠지. 요즘 친구들과 지난날의 내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25살인가, 월급의 반을 월세로 흘려보낼 때의 일이다. 모 잡지사의 연봉 협상 테이블. 나와 대면하여 이야기하는 이사님과 한쪽엔 발행인이 관심 없는 척 서류를 훑어보고 있었다. 귀는 열려 있었으리라. 나름 예쁨 받고 있는 막내였던 터라 연봉 협상도 수월할 거라고 지레짐작하여 앉았는데 결과는 대참패. 일단 이사님은 나에게 관심이 없었고, 내가 조목조목 읊어드리던 나의 성과에 대해 1도 관심이 없었으며 듣고 있는지조차 의심스러웠고 우리 잡지를 제대로 한 번쯤이라도 읽어보았는지 심히 의심이 아니라 보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었다. 오죽하면 발행인이 


"우리 잡지에 골프 꼭지가 있는 거 몰랐어요?"라고 했을까. 으이그. 


당황하는 표정으로 실질적인 연봉 이야기로 들어가니 어차피 내 연봉은 그 성과를 들으나마나 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잘 기억도 안 나는 한 자릿수 퍼센트로 만족할 수 없었을뿐더러 나와 1년 차이 나는 후배는 나와 연봉이 똑같다는 사실까지 알았다. 그때는 정말 납득할 수 없었다. 남자가 군대를 다녀왔기 때문에 후배라도 연봉은 똑같다... 그렇지만 내가 선배이기 때문에 일은 더한다...? 일을 더 한다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생각이지만, 실제로 그의 성격은 자기 할 일만 열심히 하는 타입이었다. 하나 납득하지 못하면 어쩌랴. 그만둘 수도 없고. 무엇보다 나와 함께 일하는 팀원들과 선배들은 존경하고 애정 하는 분들이었다. 



프리랜서, 팀을 꾸려 사업을 시작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매 순간의 미팅이 연봉 협상과 같으리라. 회사들은 항상 예산이 적고, 부족하다고 말한다. 자기네들은 돈이 없다고 말한다. 우리가 처음부터 큰 대기업과 일을 할 수 없으니 당연히 그런 일들이 생겨난다. 심지어 대기업조차 상당하게 돈을 아끼려고 든다. 한 없이 작은 우리 입장에서는 그들이 하자는 대로 하기 마련이다. 약간은 대범하고 일을 잃을까 약간을 졸아있던 초창기에는 나도 그들에게 이끌려 다녔다. 그렇다면 정말 내가 받아야 하는 최소한의 금액이라도 꼭 산정해 놓아야 한다. 그것만 해도 정말 현명하게 협상할 수 있을 것. 


상당히 강단이 쌓인 지금도 어려운 것은 견적 협상이다. 회사마다 다 같은 퀄리티의 결과물을 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회사 규모에 따라 대강의 견적을 예상하고 가는 게 좋다. 


EX) 

개인 사업자의 경우 - 나의 최소 견적에서 원하는 분량에 따라 맞춰준다.

스타트업의 경우 - 앞으로 지향하는 작업 퀄리티에 따라 나의 최소 견적 ~ 퀄리티 공수 비용을 추가한다. 

중소기업의 경우 - 현재 원하는 확실한 작업 퀄리티에 맞는 견적. 예산이 없다고 한다면, 아예 예상 버짓이 얼마인지 문의해 가이드를 마련할 수 있다. 

대기업의 경우 - 대부분 확실한 퀄리티와 크리에이티브한 작업을 원하기 때문에 내 최선을 다했을 때 받아야 할 견적을 얘기하는 게 좋다. 실제 미팅했을 때 일할 분량보다 더한 것을 요구하는 경우가 종종 생김. 추가적인 공수가 많이 들기 때문에, 처음부터 제대로 된 견적을 부르는 게 좋다. 어차피 네고 요청이 들어온다. 



일을 같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의 일을 제대로 쳐주는 곳과 일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능력과 나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고 그에 맞는 견적이 상응한 지 잘 따져봐야 한다. 그들의 기대치에 못 미치는 결과물을 전달할 경우 오히려 자신감도 떨어지고, 그들과는 영영 멀어지게 된다. 반대로 나의 가치를 인정해줬음에도 불구하고 돈을 못 받는 경우도 생긴다. 지난 13년 동안 평범했던, 혹은 잘 나가는 것처럼 보였던 직장에서도 돈을 못 받는 일이 숱하게 많았다. 회사에서도 못 받는데 프리랜서 입장에서는 더 흔한 일이다. 내 돈을 써가며 일했는데 한 달, 두 달 뒤에 정산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프리랜서라면 꼭 일을 시작하기 전에 계약서를 쓰고 계약서를 썼더라도 일정한 금액의 계약금을 꼭 받을 것. 우리 입장이야 무조건 일을 완성해서 주지만(설마 잠수 타겠나, 생계인데) 그들은 일을 다 해줘도 추가 네고를 해달라고 하거나 그들에게 맞춰서 원하는 방향으로 제대로 일을 해주고도 윗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돈을 깎는 경우가 많다. 얼굴 붉히지 않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인 날들이 억울할 뿐. 


무조건 선금 100%. 그게 안 되면 선금 50%. 그래도 안 되면 10%라도 받자. 그렇지 않으면 일하지 않는 게 낫다. 일이 끝나도 다음 날 바로 입금되지 않고, 익월 말에 입금될 것이다. 많은 스텝들에게 내 돈은 상당히 지불되었다. 촬영을 한다면 촬영에 대한 소품비까지. 일이란 가만히 컴퓨터에 앉아서 하더라도 많은 비용이 든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지금 당장 저 일을 따내야 하는데... 하고 안절부절못하지 말자. 지금 그 일이 아니라도 더 큰일이 기다리고 있다. 속상하고 불안하고 스트레스받는 업체와 끝내 일을 함께 해봐야 작업을 다 납품한 뒤에도 여전히 스트레스가 따라다닐 테니. 

많은 미팅 중에 한 업체에게만 끌려다닐 수 없다. 과감하게 안 되는 건 NO라고 얘기할 것. 다음 업체가 기다린다. 

계약서 사인만 하면 되는데 돈부터 나가는 게 좀 그렇다던(?) 업체도 엊그제의 일이다. 나 혼자 하는 일이라면 받아들였을 수도 있겠지만, 큰 일일수록 다 함께 하는 일이기 때문에 리스크도 크지 않나? 그 업체의 리스크는 무엇이란 말인가.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때 우리를 선택한 리스크? 미팅은 두 번이나 진행되었고, 우리의 각종 포트폴리오와 회사소개서와 기타 등등을 충분히 주었는데도 업체를 잘못 선정할 수가 있을까. 그것 또한 그들 책임이거늘. 그럼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정산할 수 없다는 말로 이해해도 될까? 신뢰의 고리가 점점 약해지고 끊어질락 말락 할 때는 작업 또한 유쾌하지 않다. 


"싫은 고객과 내키지 않은 채로 거래를 하면 일시적인 이익은 얻을지 모르겠지만, 분명히 장기적으로는 정신적으로나 수익적으로 손해를 보게 된다. 그러니 영업을 할 때는 누구든 고객으로 삼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나에게 어울리는 고객을 선택해야 이익을 얻을 수 있다."


간다 마사노리의 <비상식적 성공법칙>의 문장. 요즘 들어 계속 되새기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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