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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낌구름 May 27. 2018

다시 펼친 일기장

20170723. 추억.

        여름, 주말, 대낮. 책장에 꽂힌 일기장을 다시 들었다. 딱 1년 전 미국 생활이 짧게는 세 글자, 길게는 두세 페이지로 기록되어 있다. 약간의 시간을 들여 모든 페이지를 읽었는데, 갑자기 오늘이 며칠인가 싶다. 흔들리는 비행기, 먹구름 바로 아래 활주로, 한산한 입국장, 보라색 캐리어, 마중 나온 아빠, 마침 오는 장맛비, 물 다 빠진 인천 갯벌, 폭염 속의 집, 6개월간의 미국 여행을 마친 2016년 7월 4일. 모든 기억이 다시 생기를 띤다. 시카고 호수의 물비늘이며 센트럴 파크의 나뭇잎이 한꺼번에 머릿속에서 흔들린다. BGM이 깔린다. 샌디에이고-LA 고속도로 위에서 들었던 곡으로. 어둠 내리는 해변 앞인 것마냥 마음이 말랑말랑해진다. 이 이상한 감정이 뭔지 잘 안다. 추억 속으로 달려가고 있다는 징조다.



        사실 안다. 감수성에 젖은 남의 추억만큼 지루한 게 또 없다. 왕년에 대학에서 한 가닥 했다던 아빠 무용담, 군대 체육대회에서 1등 했다던 남동생 추억팔이, 세상에서 제일 귀엽게 애교 부렸다던 너희 집 강아지 이야기랑 여행기가 다를 게 뭐야. 나는 가 보지도 않은 장소, 너에게나 특별하지,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글을 쓴다. 대단한 서사도 없는 내 여행을 주제로.


        자랑하고 싶은 에피소드나 나누고픈 깊은 사유는 없다. 나이트 라이프는 커녕 관광도 거의 없는 소소한 일상이다.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은 날도 많은데, 바로 이거다. 내가 나누고 싶은 순간이다. 횡단보도를 건너는 방법을 몰라 멍 때렸던 거, 3H Parking에 걸릴까 봐 어학원 수업 쉬는 시간마다 뛰쳐나갔던 거, 센트럴 파크에 누워서 <또! 오해영>을 봤던 거. 온전한 나의 의지로 떠나 나만을 생각하며 내 발길 닿는 대로 쏘다녔던 여행. 사소한 순간들이 더 날아가 버리기 전에 사진과 글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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