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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호성 Mar 31. 2020

PJH

그가 내 사무실에 들어온 것은 지난 금요일 오후 세시 반. 오후 내내 한가했고, 어쩌다보니 사무실에 나 말고 아무도 없었다. 햇살이 좋은 날이었다. 그는 아까부터 문 밖에서 얼쩡거리다가, 담배 한대 피우고 어디론가 갔다가 다시 왔다가 하기를 두어번 하더니, 마침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마스크를 하고 있었을 때 그의 눈은 약간 매서워보였다. 경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했고, 주눅든 것을 들키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마스크를 벗으니 제때 교정하지 않아서 튀어나온 입때문에 고집스러워보였다. 여드름도 많았는데, 그것은 청소년기의 기억보다는 중년의 고단함에 더 맞닿아 있는 듯했다.    


나는 그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장황하게 했다. 그러다가 나이를 물어보았는데, 서른? 이라고 묻자 그가 맥없이 웃으면서 올해 스물 여섯이라고 한다. 나이가 좀 들어보이죠, 한마디 덧붙인다. 나는 좀 더 신중하게 말을 내뱉을걸 하고 후회했다.


그렇다면 그가 사고를 당했을 때는 스물 넷이었다. 돈을 조금이나마 더 벌수 있어서 이 공장에 취직했다고 했다. 그 전에 이것저것 안해본 것이 없단다. 그런데 그 공장은 최저임금도 제대로 지키지 않는 곳이었다. 그 전에는 어떤 곳에서 얼마를 받고 무슨 일을 했던 것일까.


사고를 당하고 나서 병원으로 실려간 날, 집에도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에게 전화해서 친구네 집에서 며칠 자고 들어간다고 했단다. 그게 무슨 자랑이라도 되는 것처럼 말한다. 혼자 담담히 그 상황을 감내했다는 사실을 남자다움 혹은 성인다움이라고 믿고 싶었던 것일까. 입원한 날 병원에서 외롭지는 않았을까. 침상에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출혈이 너무 심해 한밤중에는 쇼크도 왔다고 한다. 진통제와 쇼크와  절단된 손가락에 감긴 붕대 사이에서 그는 자신의 인생이 앞으로 더 힘들어 질 것임을 예감하지는 않았을까.


엄마는 뭐라셔? 글쎄, 내가 왜 이 질문을 했을까.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엄마는 이혼해서 따로 산다고 한다. 아차. 난 아마도, 엄마가 걱정 많이 하셨죠, 맨날 울었어요, 정도를 예상했나보다. 그러나 그런 가정이었다면 병원에서 혼자 첫날을 지내려는 각오를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는 아까보다 좀 더 후회했다.  


손을 보자고 하니 옷소매 안에 깊숙히 숨겨두었던 오른손을 꺼낸다. 중지 약지는 한마디씩 줄어들었고, 검지, 새끼는 거의 대부분 잘려져나갔다. 다행히 엄지는 사고를 안당했네. 엄지가 제일 중요하지, 내가 말했다. 그는 자신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는 듯이 씩 웃으면서 이런 각도로 사고가 나서요 라고 손 위의 허공에 선을 그어가며 설명한다. 프레스를 피한 엄지는 약간 외로워보였다.


나는 괜히 친절하고 싶어져서 이런저런 얘기를 해줬다. 그도 뭔가 이런저런 얘기를 한다. 그러다가, 남들은 사고를 당하면 좌절하고 자살하는 사람도 있다지만, 저는 밝게 살려고 해요. 제가 힘들어하면 제 주변 사람들만 더 힘들어지니까요, 라고 말했다. 그가 의식적이고 의도적으로 이 말을 되풀이하는 단계에 있는지, 아니면 어느 정도 이 말을 진지하게 믿기 시작한 단계에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를 보내면서 왼손으로 악수를 건내도 될까 고민하다가 결국은 하지 않았다. 현실적인 이유였는데, 왼손으로 담배와 핸드폰을 쥐고 있어서 내가 손을 내밀면 그 물건들을 주머니에 넣는데 한참이나 걸릴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대신 등을 약간 세게 두들겨주었다.


스물 여섯.

앞으로 그의 인생에는 어떤 것들이 놓여 있을까. 그가 다치지 않았으면 가질 수 있었던 것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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