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출장을 명분으로 혼자 삼박 사일 강원도에 왔다. 정선과 속초. 이틀동안은 리조트 밖으로 한발작도 나가지 않았다. 풍경이 좋다거나 리조트가 마음에 들어서가 아니었다. 도무지 뭔가를 하고 싶지가 않았다. 야외 풀장 선베드에서 맥주 한잔 시켜놓고 추리소설을 읽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별이 잘 보인다길래 밤 늦게 옥상에 가보았는데 인공위성 두어 개만 반짝일 뿐이었다. 기대했던 호텔 바도 문을 닫았다. 카페에서 파는 커피는 너무 진했고 와인은 너무 가벼웠다. 식사는 비쌌다. 뭐든 별로였지만, 아이들이 소리지르며 뛰어다니기 시작하니 조금 전까지 사치를 누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명상 수업에 참석해 보았는데, 젊은 강사가 마음을 편하게 하라는 말을 끊임없이 하는 바람에 마음이 심란해졌다. 명상 홀이 따로 있다고 해서 가보았더니 어느 대기업 워크샵을 위해 테이블을 깔고 네스프레소 머신을 설치해두었다. 도서관에서 책좀 읽어보려고 하니 예약 전화를 처리하는 목소리때문에 같은 문장만 계속 읽게 되었다.
사실은 제법 괜찮은 숙소였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어서 조용하다고 할만했고, 성수기도 주말도 아니어서 사람도 적은 편이었다. 방은 넓고 깨끗했고, 사우나에는 내가 좋아하는 노천탕도 있었다. 자판기에서 컵라면을 팔아서 파스타와 피자에 지친 속을 달래주기도 했다. 그런데 만족스럽다는 기분이 들지 않았다. 무엇이 문제일까. 무엇이 주어지면 만족할까. 리츠칼튼이나 포시즌처럼 세련되어야 할까. 삼대째 지켜온 료칸처럼 격식 있어야 할까. 죽은 자식이 돌아온 것처럼 반겨주는 안주인이 지키는 민박이어야 할까. 막상 이런 것들이 주어져도 못마땅한 점을 찾으려 들 것이다. 라운지의 샴페인 등급이 낮다거나 료칸의 파자마 손발이 짧다거나 안주인이 내놓은 밥이 질다거나 등.
왜 만족하지 못하는 것일까 생각하느라 더욱 만족을 하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다. 이 폭우는 엄청나서, 비만 맞고 있어도 죽을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폭우는 사납지도 거칠지도 않았다. 그저 태연했고 무심했다. 내릴 것은 다 내려야하고, 그 전에는 그칠 수 없다는 듯이 내렸다.
그 덕분에 기분이 좀 나아졌다. 속초 시내 바로 앞 카페에 주차하고 오미터 뛰어가는 사이에 양복 바지가 다 젖고 캠퍼 신발이 물에 잠겨도 괜찮았다. 그 카페 문이 잠겨 있어서 두드리니 안에서 놀고 있던 주인이 문을 안연다고 팔로 엑스자를 들어올려도 웃어넘겼다. 문 연 바로 옆 카페가 비싸고 지저분하고 커피가 쓰기만 해도 그 날 처음 커피를 마셨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출장이 이번으로 끝나지 않고 다음에 한번 더 와야 한다고 정해졌어도, 막무가내로 주차해 놓은 차들 때문에 주차장에서 차를 빼려고 오십미터는 살금살금 후진했어도 별로 개의치 않았다. 오늘 숙소는 체크인하느라 삼십분을 기다렸는데, 그 동안 방에 들어가면 목욕을 먼저할까 맥주를 먼저 마실까 고민하고 있으니 시간이 금방 갔다.
이 즐거움의 원천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궁리하다가 알아냈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내리는 비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받아내는 바다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받아들이려는 내 마음 사이 어느 한 지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