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의 끝

by space b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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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번 훑었지만 아직도 남아 있다.

사람의 눈이란 것이 한계도 있지만 적과가 제대로 안 된 곳에는 그럴만한 이유들이 몇 가지 있었다.

시작하는 골은 놓친 부분이 거의 없으나 마지막 몇 골은 역시 허술하다.

마무리를 짓고 싶은 마음만 앞서다 보니 과정이 부실해졌다.

나뭇잎이 우거진 가지 사이을 헤집고 들어가지 않고 그냥 밖에서 바라본 경우는 여지없다.

허리를 구부리는 그 동작에 나태함을 보이고 말았다.

여기저기를 산만하게 작업을 한 경우도 그렇다.

가지 별로 기준선을 잡아하지 않고 눈에 띄는 대로 허겁지겁 일을 하면 놓치게 된다.

여러 번 작업을 해도 계속 보이는 각도에서만 바라보면 그 반복은 큰 의미가 없다.

위아래, 전후좌우로 몸을 놀려 다른 각으로 사과를 째려봐야 숨겨진 것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가끔 머리를 무겁게 하는 골몰한 생각들과 고민도 그렇다.

생각을 떨쳐 보려는 급한 마음에 얇은 봉합을 하게 되면 이내 실밥은 터 지고 그 생각들은 다시 고개를 내민다.

생각을 일단 시작하면 치열하게 파고들어 문제를 마주하여야 함에도 겉에서 그냥 바라만 보다 보면

생각은 근심 걱정에 머무르고 나는 '걱정하는 사람'이 되어 버린다.


살아가며 접하는 문제들은 대부분 복합적이고 내 혼자만의 영역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생각은 단선 구조로 치닫는다. 고민의 진원지가 여러 가지라면 받아들이고 그 갈래를 일단은 하나씩 타 볼 일이다.

봉우리를 하나씩 타다 보면 자연스레 온 산을 느끼게 되고 가야 할, 가지 말아야 할 산길도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 걱정 저 걱정을 산만하게 건드리다 보면 그 걱정들은 스크럼을 짜서 한 덩어리가 되어 나를 향해 달려온다. 우리는 동시에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한 순간에 한 가지 생각밖에 할 수 없다.

무언가를 생각하다 보면 같은 방향에서 같은 생각만 반복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계속 같은 방향에서만 보면 한 발짝도 내딛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무엇도 포기하지 못하고 원하는 결과에만 마음의 각을 맞추려 하면 계속 "어떡하지.. 어떡하지.."만 입안에 맴돈다.


의외로 문제란 것의 해결은 받아들임에 있었다.

받아들임은 대부분 그 대상이나 상태가 생소한 것이기에 부하가 있고 쓰라리기 마련이다.

받아들임과 체념은 다르다.

체념은 감정이 주입되어 필요 이상의 것을 포기하고 시작을 쉽게 떠올리기 어렵지만

받아들임은 포기가 아니고 사실의 확인이며 그러기에 치열하게 문제를 마주한 후에야 가능하다.

사실은 감정의 눈이 아닌, 객관적이고 상식적인 담담한 눈으로 들여다보면 모습을 드러 낸다.

그리고 확인된 사실, 거기서부터가 시작이다.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주변을 확인하고 달려가야 할 출발지점을 헤아리는 일인 것 같기도 하다.



장맛비 그치고 나면 나는 사과밭을 두리번거리다 어느 지점에선가 다시 장대 가위를 들고 서 있을 것이다.

사과야 사과야~~

이제 숨바꼭질 그만 하자.

재미도 없고 무엇보다 눈이 튀어나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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