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딩 시절 배구 좋아하던 사촌 동생 따라 배구 경기를 보다가 홀린 듯 어떤 선수에게 빠져 들었다. 배구 선수답게 훤칠한 키는 당연했다. 선 굵은 외모에 반했던 것 같다.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끝까지 배구는 쌀알만큼 알까말까한 상태로 덕질을 이어간 걸 보면 뭔가에 단단히 꽂힌 게 맞다. 바로 외모. 곤피곤피하던 직딩 시절 벌겋게 충혈된 두 눈으로 올스타전에 가서 경기를 직관하고 직접 싸인까지 받았다. 그가 나온 스포츠 잡지를 집에 모셔놓았다. 엄마가 눈을 흘겨 보며 말했었다. 얼굴 좀 그만 봐라. 엄마는 딸을 잘 알고 계셨다.
이제 나는 나대로 그는 그대로 결혼하여 각자 가정을 꾸리고 자식을 키우는 입장. 선수와 팬이 공유할 수 있는 경험치고는 연배가 생겨야먄 가능한 일이라는 점에서 같이 늙어가는구나 하고 가끔 즐거이 떠올렸다. 고생을 자처해가며 얻은 훈장과도 같던 싸인볼은 이사할 때마다 우리와 함께였다. 번듯하게 전시는 하지 않았지만. 10여년이 지나며 공에서는 바람이 조금씩 빠졌다. 이걸 버릴까 하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당근에 올려둔 걸. 최근에 거래했다. 스포츠 선수가 직접 싸인한 유니폼, 공 등을 모으는 사람 같았다. 젊은 날의 스타와 나. 추억이 깃든 물건을 비워내며, 내 덕질의 한 장이 끝났다. 베테랑 운동 선수의 명예는 수집가의 손끝에서 귀하게 지켜지리라. 안녕, 문군. 안녕, 내 20대.
사진출처: https://newssunday.co.kr/bbs/board.php?bo_table=news&wr_id=35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