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쑥쑤루쑥 Jun 26. 2024

순정남이 돌아왔다.

작은 동심이에게 일편단심 대단한 애정 공세를 퍼붓던 남자 아이가 있었다. 중간에 순정남이 다른 여자 친구와 단짝이 되는 바람에 동심이가 한참 속상해했었는데. 사랑이 돌아왔다. 소녀가 아니라 소년의 마음이 갈대였던가보다. 자존심 상할법도 한데 동심이는 그저 좋단다. 


어쨌든. 둘은 다시금 신났다. 학교에서는 다른 반이지만, 어학원에서는 같은 반이다. 각자 갈 길이 달라 같이 가는 길이 몇 발자국이나 된다고. 그걸 매일 서로 기다려준다. 둘다 혼자 다니기 시작했고, 휴대폰은 아직 없는 관계로. 같이 놀고 싶으면 잠자리 한쌍마냥 우르르 양쪽 집에 들러 각자 부모님께 허락을 받고 신나게 한 판 놀고 귀가한다. 요즘은 친구 엄마 휴대폰을 빌려 전화로 허락을 받기도 한다. 그런 둘을 보고 있으면 피식 웃음이 날 때가 있어 적어본다. 


어느 날은 둘이서 이미 어학원에서 약속을 했단다. 하원하고 동네 핫플 탕후루 집에 가기로. 순정남이 어학원 문을 나서자마자 왼쪽으로 꺾어 전력질주를 시작한다. 동심이가 외친다. "야, OOO! 거기로 가면 돌아가는 거야~." 그러자 우리의 순정남. 그 말이 끝난지 정말 0.00001초만에 몸을 휙 돌려 반대편으로 달려온다. 마치 처음부터 뒤로 돌려던 것처럼 행동이 너무 부드럽다. 흡사 콩트의 한 장면이다. 


또 어떤 날은 동심이가 말했다. "정말 고민이야. 나중에 ㅁㅁ랑(가장 친한 여자친구) OOO(순정남) 중에 누구랑 같이 살지 정말 고민이야." 그러자 순정남이 무심한 듯 간절하게 동심이에게 묻는다. "그래? 그래서... 누구랑 같이 살 건데...?" 나는 보았다. 도도한 몸과 그렇지 못한 마음을. 어깨이하 몸통은 도도했지만, 작은 동심이 쪽으로 잔뜩 기울던 고개와 길게 뽑은 목, 그리고 궁금해 죽겠는 맘에 한껏 올라간 눈썹을. 


또 다른 날. 어학원의 다른 남자아이가 하원길에 작은 동심이더러 못생겼다고 했단다. "엄마, ㅍㅍ가 방금 나보고 못생겼대." 나는 그 아이에게 "ㅍㅍ는 누가 ㅍㅍ더러 못생겼다고 하면 기분이 어때? 외모 평가 하는 거 아니야~" 라고만 가볍게 얘기했다. 그런데 동심이의 민원을 듣고 그 아이 쪽으로 몸을 돌리려는 찰나. 이미 순정남이 그 아이 앞에 가 있는 게 아닌가. 양팔을 360도로 끝없이 휘두르면서. 팔에 모터가 달린 줄 알았다. 그 친구한테 닿지는 않게. 하지만 나름대로의 응징임을 알 수 있었다.  


큰 동심이를 보니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차 동성 친구들과 어울리게 되던데. 언제까지 이렇게 가까이 그리고 사이좋게 지낼까. 어쨌든,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두 아이들이 빚어내는 순수한 동심의 향연을 마음껏 즐기는 중이다. 관전하는 재미가 상당하다. 


사진: UnsplashChristopher Beloch


순정남 그 첫 번째 이야기 

https://brunch.co.kr/@ddalkuk11/344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