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에 무인 가게가 많다. 간식을 파는 곳이 제일 많고, 문구점, 심지어 곰탕집이랑 건어물 가게도 무인점포다. 얼마 전 큰 동심이가 무인 샌드위치 가게에서 샌드위치를 사 먹었다고 했다. 그런데 가진 건 현금뿐인데 계산대에서는 카드 결제밖에 되질 않아 고민하다가, 볼펜과 쪽지가 보이길래 사장님께 돈과 함께 메모를 남겨두고 나왔다는 거다. 3,900원어치 사 먹고 4,000원 내고 간다, 카드가 없어 현금을 두고 간다, 죄송하다, 대신 거스름돈 100원은 안 주셔도 된다가 요지였단다.
일단 양심적인 행동은 칭찬해 줬다. 그런데 누군가 그 돈을 훔쳐간다면? 사장님한테 돈이 전달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었다. 걱정병 엄마 머릿속에 떠오른 풍경은 무인샵마다 내걸린 엄포와 같은 공지. 무전취식, 절도에 가까운 행동들에 대한 경고였다. 그리고 그 공지 속 CCTV 화면에 큰 동심이가 등장하는 풍경. 영화 '기생충' 포스터처럼 얼굴을 가린대도 또래들끼리는 누가 누군지 알 텐데. 혹시라도 그렇게 되면 곤란할 거라는 생각.
부랴부랴 무인점포 연락처를 검색해 사장님과 통화했다. 다행히 사장님께서 아이가 떠난 직후 가게에 들르셨고, 쪽지와 돈 모두 무사히 전해받으셨단다. 다행이었다. 만의 하나 내가 우려하던 상황이 벌어졌다면 교훈이야 있었겠지만 데미지가 있었을 거다. 아이에게는 앞으로 무인샵에서 사 먹어야 할 땐 내게 전화하라고 했다. 카드나 간편 결제가 아니면 계좌 이체가 방법이라고 사장님께서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동심이에게 아직 카드를 줄 생각은 없기에 어쩔 수 없다.
사장님께서는 아이의 행동을 칭찬하셨다. 아이는 혹시 돈이 도난당하더라도 자기는 돈을 내고(두고) 간 것이 CCTV에 찍혔을 것이므로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단다. 양심적인 아이니 양심적으로 자랄 확률이 크겠지. 아이가 기특한 한편, 이 험난한 세상 때 묻고 타협해야 하는 많은 순간에 아이가 다치지 않을까 걱정 됐다. 그런데 말이다. 양심적인 행동은 좋은데, 지갑을 두고 오면 어쩌자는 거냐. 으이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