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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짓말의 거짓말 Oct 03. 2022

노리코, 연애하다 by 다나베 세이코

10p

"부럽지, 노리코?"

이렇게 묻는 미미에게 그래그래, 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노인과 어린이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타입이라 눈 치켜뜨고 미미하고 논쟁 따위 하지 않는다. 


27~28p

나는 아직 그에 대해 모르고 그도 아직 나를 잘 모른다. 하기야 나도 나를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 덕분에 서로 주고받는 대화를 은근히 즐기면서 틈틈이 곁눈질로 상대를 훔쳐보며, '이게 맛이 있을까 없을까?'를 가늠하는 것도 나쁘진 않았다. 내가 보고 있으면 그도 그런 생각으로 관찰하고 있었는지 곁눈과 곁눈이 부딪치고, 그것을 감추기 위해 둘은 황급히 씨익 웃어 보였다. 그때의 그의 웃음에서 그가 나를 '맛있게 생긴 여자다!'라고 생각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의 눈, 뚜렷한 모양의 검은 눈이 신호를 받아 정지한 순간, 반짝하고 빛을 발하며 나를 보았을 때 기분 좋고 건강한 욕정을 내비치고 있음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예의가 바른 신사답게 그것을 입에 담지는 않았다. 그 편이 나도 좋았다. 


36p

어지간히 나를 바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군! 그래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내가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영리하다는 걸 굳이 알려줄 의리 따위는 없으니까. 그걸 아는 것은 남자의 책임이니까. 


122p

어젯밤엔 고와 너무너무 사이좋게 한 몸이 된 것 같아, 정말이지 누구 몸이 누구 건지 모를 정도로 하나로 녹아내린 것처럼 고가 좋았는데, 하룻밤 지나고 나면, -나는 이 '하룻밤 지나고 나면'이라는 말이 참 좋다. 가랑이 사이로 세상 보기와는 다른 의미에서 단번에 세계관이 뒤바뀌는 것 같거든 -냉정한 지성을 되찾게 되니 신기하다. 


129p

남자의 걸음걸이는 확신에 차 있었다. 그것은 고의 민첩하고 힘 있는 움직임과도, 고로의 애잔한 행동거지와도 달랐다. 이렇게 하는 것이 제일이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식의 움직임. 그것은 강한 매력이었다. 


159p

"아름다워. 젊기도 하고... 몇 번을 봐도 '처음이에요'라고 말하는 것 같아."

"그렇게 '처음이에요' 하는 사람이 많겠죠?"

"아니. 나 정도 나이가 되면 당신처럼 젊은 사람하고는 사귀지 않지. 간혹 사귀는 친구도 있지만... 노는 건 마흔서넛까지면 충분하다는 친구들이 많아. 사람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지금은 오히려 정신적인 요소가 많아져서 젊은 사람은 안 돼. 처음이에요, 보다는 다녀왔어요, 하는 여자를 더 좋아하지." 

그의 교활한 말에 혹해서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191p

고로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한 박자 어긋난 것 같은 표정을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고수하고 있었다. 

진지한 얼굴로 미미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 모습은 가령 미미가 고로의 손을 잡아 자기 치마 속으로 가져가도 달라지지 않을 것처럼 고요한 얼굴이었다. 


231p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 유혹할 수 있는 사람과 유혹할 수 없는 사람. 나에게 고로는 '유혹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진짜 유혹할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 한한다. 


274p

그의 사심 없이 무심한 해맑은 표정은 언제나 나를 절망시킨다. 

그것은 남자가 여자를 보는 눈이 아니다. 오누이 같은 친구, 같이 싸우며 자란 사촌을 보는 눈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우연한 만남을 반기는 눈이다. 


321p

부인은 나를 보고 싱긋 웃었다. 그 웃는 모습도 마음에 들었다. 거짓 웃음이 아니라 아주 어렸을 때부터 자기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말하고 싶은 말을 하며 살아온 사람에게서 보이는 자연스러운 솔직함, 그리고 악의라곤 눈곱만큼도 모른 채 나이를 먹은 것 같은, 속과 겉이 다르지 않은 사람처럼 보였다. 


347p

고로를 잃었다고 해서 미즈노에게 집착하는 것은 -나는 항상 생각하지만 -몸담고 있는 바닷물이 따뜻하다고 해서 육지에 오르지 않는 사람과 같다. 

어차피 몸은 차디차게 식을 텐데. 

잠깐은 차갑더라도 빨리 육지에 오르는 것이 편할 텐데. 


359p

"역시 남자란 착하고 봐야 해." 

"그래, 맞아." 

미미에게 착한 남자 강의를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미미는 청소기를 돌리며 말했다. 

"착한 남자가 어는 날 갑자기 덮쳐올 때가 좋은 거야. 고처럼 오월 장맛비처럼 시도 때도 없이 덮치는 건 안 돼." 


364p

"괘안나, 병원에 안 가봐도?"

고로가 이렇게 걱정하면서 차갑게 적신 타월을 내 멍든 눈 위에 올려주었을 때는 그 상냥함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 뻔했다. 

그것은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의 상냥함이었다. 

그런 상냥함이 5만이 되고 10만이 된다 한들 '유혹'하는 사람으로 질적 변화를 하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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