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에 첫 연애-4화

찌질한 상상

by 거짓말의 거짓말

한 번도 여성의 지적인 매력에 끌려본 적이 없었다. 굉장히 똑똑하거나 머리 회전이 빠른 여자를 봤을 때 내 감상은 머릿속으로 '책상 위에 사과가 3개 있네' 혹은 '사과가 참 빨개'라는 생각을 할 때와 비슷했다. 그러니까 어떤 풍경이나 사실을 외부에서 단순히 인지하는 정도, 딱 그 수준이었다. 거기에는 어떤 감정적인 동요도 없었다. 속된 말로 '꼴리게 하는' 그 무언가가 전혀 없었다.


물론 지적인 여자를 보고 바로 발기를 하거나 사정하는 남자는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남자들은 분명 여성의 지성을 성적인 매력과 연결시킨다. 단순히 지식과 교양이 넘치는 여성과의 대화가 즐거운 것인지, 아니면 똑똑한 여성의 등을 침대 위에서 내려다보며 정복욕과 성취감에 빠져 더 큰 쾌락을 느끼는 것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내 경우는 반대에 가까웠다. 때때로 가만히 있어도 지성이 흘러넘치는 여자를 볼 때면 '참 피곤하게도 세상을 사는구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하지만 곧바로 '어쩌면 그들에겐 너무 당연한 일일 테니 피곤하지 않을 수도 있겠네, 뭐 그러거나 말거나 관심 없지만' 이런 순서로 생각이 흘러갔다. 생각이 많다는 건 가끔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더 많은 경우에 그 반대다.


(조금 과장을 보태자면) 어떤 종류의 과도한 지성은 때로 예쁜 얼굴에 나 있는 '여드름'처럼 이물감이 들었다.

‘저것만 없다면 참 좋을 텐데.’


예쁜 얼굴에 거짓 미소를 띤 채로 머릿속으로는 자기보다 멍청한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점수를 매기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정나미가 떨어졌다.


나 역시 어쩌면 겸손의 가면과 바보의 탈을 쓴 채로 연기를 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리고 나와 비슷한 연기를 하는(혹은 그렇게 보이는) 사람을 보면 역겨움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나는 단순한 사람이 좋았다. 나처럼 복잡한 사람은 싫었다.


사람은 결핍된 것에 끌리기 마련이다. 단순히 보고 있는 것만으로 나를 꼼짝도 못 하게 만들 만큼의 아름다움. 감히 만지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 못할 만큼의 압도적인 예쁜 얼굴과 멋진 몸이 그랬다.


반면 지성의 결과물인 대화는 피곤하기만 했다. 그 사람이 쓰는 단어, 문장, 논리를 보면 똑똑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나눌 수 있다. 그렇지만 그래서 뭐. 지식의 양의 많거나, 머리 회전이 빠르다는 것은 단순히 하나의 특징에 불과했다. 그리고 내게 그 특징은 ‘가늘고 긴 손톱’이나, ‘맑고 큰 눈’, ‘하얗고 부드러운 C컵 가슴’ 같은 것과 비교하면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에 불과했다.


여자와 이야기를 할 때 나는 언제나 말을 하는 나 자신보다 상대 쪽에 더 관심을 기울였다. 내가 하고 싶은 말보다 상대가 듣고 싶은 말이 뭘까를 고민하며 눈치를 봤다. 상대에 맞춰 질문, 대화의 소재를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런 적은 거의 없었지만 내가 정말 편하게 말을 하는 여자가 있다면 그 경우는 (조금은 미안한 이야기지만) 일종의 ‘기준’에서 벗어난 케이스였다. 그 ‘기준’이란 말하자면 여자가 남자를 볼 때 ‘과연 이 녀석과 키스를 할 수 있는가 없는가’로 남자를 나누는 것과 비슷했다.


하지만 나와 저녁을 세 번이나 함께 먹고, 그 이후에도 나를 만난 준 이 친구는 달랐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편하게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른 여자와 이야기를 할 때 종종 느껴졌던 ‘내가 하는 말이 잘 전해지고 있지 않다’라는 느낌도 전혀 없었다. 거슬리게 똑똑하다는 느낌도 들지 않았고, 앞서 말한 기준의 범주에서도 안정적인 ‘인(IN)’이었다.


지금에서야 든 생각이지만 내가 이야기를 할 때 그 친구는 언제나 자신의 몸과 얼굴을 내 쪽으로 기울이고 내 이야기에 집중해줬던 것 같다. 실제로 그랬던 게 아니더라도 내 이야기를 들을 때 그 친구의 얼굴이 실제보다 더 크고 가깝게 보였던 것 같다는 느낌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