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
국문과를 졸업했지만 아직도 맞춤법에는 자신이 없다. 글을 쓰고 맞춤법 검사를 돌릴 때마다 생각하지 못한 곳에서 맞춤법 오류가 발견되곤 한다.
그래서 누군가의 맞춤법을 교정해주지는 않는 편이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 계속 같은 실수를 되풀이할 때가 아니고서야.
“자기야 자기 부장님은 카드를 너무 잘 긁으시는 거 아니야? 카드 결제한다고 할 때 ‘결제’라고 쓰는 거야. “
20대에 만났던 남자친구는 상사에게 문서 결재를 맡아야 한다고 할 때마다 ‘결제’라는 단어를 썼다. 진심으로 그가 잘 되길 바랐던 나는 그 단어만큼은 고쳐주고 싶었다. 다행히 남자친구도 수줍게 웃으며 ‘알려줘서 고맙다‘라고 했다. 그리고 어느 날 남자친구는 나에게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자기야. 대박이야. 나 시험문제에 ‘결재‘와 ’ 결제’ 중 옳은 거 고르는 문제 나왔다? 자기 덕분에 그 문제 정답 맞혔잖아! “
이직 시험을 보러 다녔던 그는 내가 지적했던 맞춤법이 시험문제 1번으로 나오는 놀라운 경험을 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나 역시 신기하고 재밌었던 기억이 난다.
“오타 아직도 안 고쳤어? 내가 오타 있다고 고치라고 했는데 그대로네.”
부장님은 말했다. 퇴직이 1년 반밖에 남지 않았지만, 중요하지 않은 부분까지 검토를 해 주실 만큼 일에 열심이셨다. 잘 읽지도 않는 메일에 그만큼 공을 들이는 것은 소모적이긴 했지만 나는 그를 통해 <부장님의 글쓰기>를 배울 수 있겠다는 기대감도 있었다. 내가 보수요청서를 보낼 부서에 쓴 메일 내용을 미리 읽고 싶다고 하셔서 보여드린 상황이었다. 부장님은 메일 내용에 오타가 많다고 했다.
“그럴 리가 없는데… 혹시 어디가 잘못되었을까요?”
오타 검토를 완료한 메일 내용이라 나는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궁금했다.
“이염이라는 오타가 계속 있네. 오염으로 안 고쳤어. “
내가 작성한 메일은 가구 소재가 ‘이염’이 잘 되는 소재라는 문제점을 언급하며 다른 소재의 가구로 교체를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아. 부장님. 그거 오타 아닙니다. 물이 들어 색이 변했다는 의미의 ‘이염’입니다. 오염과 비슷한 말이긴 한데…….”
부장님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염? 나는 살면서 이염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봤는데?”
당황한 나는 대답했다.
“아. 넵. 오염으로 고치겠습니다.”
오염이나 이염이나. 보수를 요청한 부서에서는 제대로 읽지도 않는다는 걸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부장님의 섬세한 터치를 곁들인 메일은 결국 그렇게 담당 부서로 전달되었으나 늘 그랬듯 보수 계획은 요원했다.
부장님은 살면서 ‘이염‘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봤고, 나는 살면서 ‘이염‘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을 처음 만났다. 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그에게 지금까지 그것을 알려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일까? 신기했다.
오랜 시간 관리자 업무를 수행한 것 같은 그는 부장님 답게 ’결제’와 ‘결재’ 업무에 특화된 사람이었다. 그를 알게 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 나는 파악할 수 있었다. 그동안 관리자로서의 업무를 잘 수행하셨을 것이라는 것도 예상이 되었다.
지시하고, 고치는 일만 하다 보면 그 사람의 세계에는 새로운 단어가 들어올 기회가 없어지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분명 그도 젊은 시절 “자기야, 카드 결제는 결제고, 문서 결재는 결재라고 쓰는 거야!”라고 가르쳐줄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런 사람은 없어졌고 ‘이염’이라는 단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도 사라졌을 것이다.
일정한 나이와 권위를 획득하면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직장인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문과 졸업 후 처음으로 <우리말 어법 사전>을 도서관에서 빌려왔다. 나의 세계에는 올바른 말이 들어올 기회가 아직 많이 남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