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의 시간, 미취인들이 모이기까지 2.
하지만 겨울은 일 년에 한 번이기에 우린 내년을 기약했다. 우린 모아놓은 돈이 없었다. 어쩌면 하루의 변덕으로 끝날지도 모르는 이 여행을 위해서 우리는 여행 경비부터 계산했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1년, 모아야 하는 돈은 750만 원. 내가 돈을 버는 방법은 과외뿐이었고 나머지 둘은 이미 다니는 직장이 있었다. 나는 우리가 여행을 갈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동행을 구했으니 이미 반은 했다는 강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2014년은 우리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손양은 크게 돈을 쓸 일이 생겨서 통장잔고가 0이 되었고 내가 모으는 돈은 참으로 미미했다. 가장 가능성 있는 친구는 하라쇼뿐이었다. 하지만 손양은 다시 돈을 모을 테니 기다려달라고 내게 말했다.
그래, 친구야. 우리가 1년을 더 번 거야. 그렇게 생각하자.
14년 겨울에 나는 교환학생의 희망을 품고 토플 공부를 시작했고, 친구들은 돈을 모았다. 간간히 만날 때면 여행 얘기를 하며 우리의 미약한 약속을 이어갔다. 그렇게 15년이 왔다.
교환학생은 없던 일이 되었고, 마지막 학기가 개강했다. 운이 좋게 장학금을 받아 여행경비를 벌게 된 건 큰 행운이었다. 막연했던 약속이 힘을 받기 시작했다. 막 학기에 모두의 만류를 무릅쓰고 러시아를 수강했다. 더불어 세계여행이라는 수업도. 학기를 핑계로 여행 준비를 한큐에 끝내겠다는 내 패기였다.
러시아어는 어렵고, 세계여행은 과제가 많았다. 물론 세계여행은 리포트로 여행계획서를 제출해서 패스했지만 러시아어가 문제였다. 배운 지 한 달 만에 키릴 문자로 작문 시험을 볼 줄이야.
러시아어의 동사변화는 6개다. 보다, 느끼다, 공부하다를 외우려면 18개의 단어를 외워야 한다. 그것도 키릴 문자로! 난 그저 생존 언어를 배우러 갔건만! 내가 할 수 있는 회화는 그저 안녕하세요, 한국인입니다, 얼마예요? 정도였다. 그래도 이때 글자를 읽을 수 있게 되어서 나중에 큰 고생은 덜게 되었다. 하지만 러시아어 덕에 대학 마지막 기말고사를 백지로 낼 뻔한 건 사실이다. C+만 주십사 기도했으니까. 다행히 B는 받았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러시아어 교수님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정말 자비로우신 분이다.
그렇게 다시 여름이 찾아왔다. 13년에서 15년. 2년의 시간이 흘렀다. 마지막 학기를 마치고 난 진정으로 미취인이 되었다. 다시 말해 백수가 된 셈이었다. 어느 날 하라쇼는 내게 조심스레 말했다. 계약 연장이 된다면 여행을 가기 힘들 것 같다고. 그래, 직장을 버리고 오라고 할 수는 없지. 백수가 뭐라 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나의 동행은 한 명으로 줄었다.
우리의 여행은 11월 1일에 출발이었다. 우린 모은 돈으로 표를 사고 숙소를 예약하고 짐을 싸기 시작했다. 약속대로 내가 제일 많은 책임을 졌다. 누군가는 나에게 그렇게 준비하면 분명 여행 가서 싸울 것이라 예언했고 누군가는 따로 집에 오는 거 아니냐며 농담을 했다.
나는 이 두 가지가 없는 여행을 계획했다. 배가 고프면 안 되고 너무 힘들어도 곤란하다. 고통을 통한 보람은 한국에서도 충분히 느끼고 있으니까. 싸워도 절대 따로 돌아오지만 말자. 우리가 정한 약속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여행을 준비하던 8월 즈음에 하라쇼에게 전화가 왔다.
"나 재계약 없던 일 됐어. 나도 데려가"
하라쇼는 이제 정직원들끼리만 카톡으로 연락하는 꼴을 볼 필요가 없다며 통쾌해했다. 해고 통보를 받고 머리 속에는 온통 여행 생각뿐이었단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3명이 되었다. 비록 모두가 백수가 되는 결말이었지만 여행 타이밍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여행 직전, 하라쇼의 부모님을 설득해야 하는 미션이 있었다. (하라쇼가 부모님에게 통보만 한 채로 이미 비행기와 숙박을 예약한 상태였다) 나는 마치 따님을 믿고 맡겨달라는 사위의 마음으로 하라쇼의 부모님을 안심시켜드렸다. 나는 순식간에 러시아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고 러시아에 지인도 있는 믿음직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현실은 러시아어를 겨우 구사하고 카톡만 한번 해본 지인이 있는 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우여곡절 끝에 출발일이 다가왔다. 여행을 다녀오면 진로의 답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취직에 대한 고민은 뒤로 한채 우린 '미취인'의 신분으로 15년 11월 1일 블라디보스토크행 배에 몸을 실었다. 꼬박 2년 만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