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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밈혜윤 Apr 30. 2024

브런치와 함께 한 930일&Like Water

오늘은 수요일

   벌써 930일

   내 브런치 계정의 첫 번째 글은 2021년 10월 14일에 게시되었다. 아마 내 기억이 맞다면 그전에도 글을 몇 개 썼을 터인데, 삭제했으니 그건 없는 걸로 치겠다. 작가 승인을 받자마자 활동을 개시했으니 작가 승인을 받은 것도 얼추 930+@일 것이다. 문득 내 브런치는 몇 년이나 묵었는지 궁금해서 스크롤을 내리고 내려 첫 번째 글을 찾은 참이다.


   오늘은 브런치와 함께 한 지 930일, 이 글은 111번째로 올라가는 글이다. 왠지 마음에 쏙 드는 숫자들이다. 930일에 걸쳐서 나는 담금주 같이 나를 절이던 절망으로부터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양치하다가 이유 모를 눈물로 볼을 적시던, 살아보지 못한 미래를 만나고 싶지 않던, 스스로를 을러대던 마음들과는 무사히 헤어졌다. 언젠가 이를 뿌득뿌득 갈며 돌아와 나를 발끝으로 툭툭 칠 것 같아서 무서웠던 마음들은 나를 두고 갔다. 마지막으로 죽고 싶었던 때가 언젠지 기억하지 못한다. 여생 내도록 스스로를 증오할 것만 같은 불확실한 믿음을 언제 마지막으로 되새겼는지 알 수 없다. 모두 날개가 부딪치는 소리조차 남기지 않고 날아갔다. 만 31세의 나는, 나를 아프게 하는 데에 정통했던 31세(만 29세쯤)의 나를 용서한다. 


   결과적으로 그렇다는 말이고, 물론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다. 내 마음을 이겨내는 일 말고도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아빠가 아팠고 그다음엔 반려 토끼가 아팠다. 혈육이자 내 가장 친한 친구인 여동생이 대학 과정을 수료했다. 막내 남동생이 국가고시에 합격했다. 연말부터 연초까지 다양하게 이명, 말초신경의 경미한 마비, 심장 통증 등으로 온갖 병원을 다니며 고생했다. 생각해 보니 너무 바쁘고 아파서 우울할 틈이 없었던 것도 같다. 


   대략 두 달 뒤, 그러니까 2024년 7월 10일이 되면 브런치 첫 글 게시로부터 1000일이 된다. 태어나 목숨을 부지하는 것을 제외하면 1000일의 여정을 마친 적이 없다. 심지어 그토록 사랑했던 지난날의 누군가들도 1000일을 이어간 적은 없다. 그러니 브런치 계정을 1000일 동안 유지한 것은 내게 아주 유의미한 경험이 되리라. 바라는 바가 있다면 브런치 서비스가 없어지기 전까지(혹은 브런치가 내게 작가 자격을 내놓으라고 할 때까지) 계정을 없애지 않고 시답잖은 이야기를 계속 올리는 것이다. 그리고 팔로워 수가 세 자리가 되어 보는 것이다... 


   Like Water

   누구나 바라는 자신의 모습이 하나쯤은 있을 텐데, 나의 경우에는 누구에게든 미움받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게 말이 돼? 당연히 안 되지. 말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러고 싶었다. 나는 그럴 수 있다고 은근히 기대한 걸 수도. 미움 사지 않으려고 부러 더 상냥하게 굴었다. 내가 참을 수 있는 이상으로 상냥하게 굴다가 스트레스가 폭발하면 어느 날 갑자기 마구 성질을 냈다. 그렇다. 그냥 이상한 애가 돼버린 것이다. 


   미움받지 않는 방법은 대책 없는 상냥함이 아니라 조금 무심해도 일관된 사람이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게 절대적인 답도 아니고 유일한 답도 아니지만. 말은 쉬운데 그렇게 되려면 많은 게 필요했다. 일관된 감정. 커다란 진폭으로 날뛰는 감정을 한 번 걸러내서 표현할 수 있는 자제력. 순간의 감정에 내 일상을 송두리째 빼앗기지 않기 위해 몸을 단련하는 일. 시간은 자꾸만 내게 채비할 틈도 주지 않고 저 멀리 뛰어갔다. 그냥 그렇게 시간을 흘려보낼 뿐인 인생을 살고 싶은 순간의 달콤함을 퉤, 퉤 신물이 날 만큼 뱉어내면서 걸었다. 별 것 아닌 것 같다가도 힘들었던 시간이었다. 


   아무도 안물안궁이겠지만 레드벨벳 웬디를 매우 좋아한다. 그녀의 첫 번째 솔로곡 <Like Water>를 들으며 나는 자꾸 내게서 달아나는 시간을 간신히 따라잡았다. <Like Water> 가사에는 눈을 감아도 돼,라는 부분이 있다. 눈을 모로 뜨고 모든 것, 그러니까 내 삶의 모든 괴로움과 즐거움과 무감함을 샅샅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피로감을 그러안은 나날이 있었다. 그렇지, 가끔은 눈을 감아도 되지, 나 대신 전방을 살펴줄 누군가의 뒤에 잠시 숨어도 되지. 그런 생각을 했다. 


   '파도친다'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일정한 리듬으로 철썩, 처얼썩 흔들리는 파도는 우리가 쉬는 해변가에서 조그맣고 귀엽지만 끝을 좇으면 커다랗고 깊은 바다가 있다. 아무것도 아닌 내가 파도치듯 하루하룰 보내다가 문득 돌아보면 나는 바다가 돼있을 것이다. 나를 집어삼킬 듯했던 파고는 지나온 내겐 잔잔할 것이고, 내 바다의 바닥에 누군가를 잠시 숨겨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상상을 하며 즐거워하고 다짐하던 어느 날들이, 웬디의 Like Water를 들으면서 생각났다. 나는 왜 내가 파도치기를 잊어버렸던 걸까.


   비현실적인 것만 같아도 닿고 싶은 지점을 계속 생각하고 바라야 하는 이유. 내일의 나는 이뤄줄 수 없어도 2년 , 10년 뒤의 나는 어쩌면 이뤄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브런치를 만들 때만 해도 매일 울고 불고 내 글을 누가 읽냐며 쓸모없는 슬픔을 죽죽 흘리던 저를 보세요. 930일 만에 어엿한 성장을 했잖아요. 또 930일이 흐르면 지금보단 깊은 웅덩이가 돼있겠죠. 930일의 기록을 보관해 준 브런치와, 제 글에 찾아와 준 여러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이렇게 듣보잡 글에 들어온 김에 레드벨벳 웬디의 <Like Water>도 들어보세요. 비긴어게인에 나와서 부른 <Everybody hurts sometimes>도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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