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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밈혜윤 May 12. 2024

아무 것도 아닌 글을 쓰는 것은…

   아무것도 아닌 글

   현타가 자주 다녀간다. 내가 이걸 왜 쓰고 있지? 대단치도 않은 글을 한 편 뽑겠다고 이렇게 아등바등하는 건 무슨 의미가 있나. 모든 곳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덤비면 나동그라지고 마는 게 사는 거란 걸 알면서도 입이 막 근질거린다. 보통 연재작의 새로운 글을 쓰고 있을 때 드는 생각이다. 누가 내 글을 기다린다고 이렇게 대굴빡을 굴리면서 쓰나. 그렇지만 막상 완성해서 올리고 보면 자랑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꼭 학교 다니면서 레포트 쓸 때 같기도 해서 웃기다. 그때도 잘해봐야 B나 맞을 건데 뭣하러 이렇게 열심히 쓰나 했었지. 그리고 A를 맞은 과목이 많았어요. 안 물어봤다고요? 네.


   가끔 질문을 받는다. 왜 그렇게 브런치를 열심히 해? 나를 오래 알아온 친구들이 물을 때도 있고 이제 막 알게 된 사람들이 물을 때도 있다. 전자의 경우는 내 인생에 글이 그 정도로 중요하냐는, 자기의 생각 이상이라는 추켜세움이 묻어 있다. 후자는 보통 신기하다고 한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들어는 봤지만 진짜 거기서 작가 달고 활동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나. 그런 말을 들으면 이상하게 마음이 부푼다. 브런치 내에서 날고 기는 작가들을 보면서 쪼그라들었던 마음이 다림질이 싹 되는 느낌이라고 할까.


   흔적을 잘 남기지는 않지만 브런치 내에서 여러 사람들의 글을 본다. 다양한 주제, 다양한 사람, 다양한 시야. 늘 새로운 자극을 받고 싶어 하는 나에게 이만큼 좋은 플랫폼이 없다. 이 분 정말 글을 잘 쓴다, 혼잣말을 더러 한다. 이름 알려진 유명 작가 뺨치게 글 잘 쓰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언젠가는 나도 이런 걸 쓸 거라면서 고무되기도 하고 내 글이 부쩍 초라하게 느껴져 슬쩍 숨겨놓고 싶기도 하다. 고무되는 마음보다 초라하고 창피한 마음이 대체로 비대하다. 창피함을 무릅쓸 줄 알아야 실력도 느는 거라던 말을 몇 천 번이나 아로새겼는지 모른다. 창피함을 무릅쓸 가치가 있게 글씀새가 나아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겐 수요일에 올리는 운동 관련 연작, 금요일에 올리는 ‘친애하는’ 연작이 있다. 일주일에 두 번인데도 각 연작의 새 글을 지으려면 일주일이 꼬박 걸린다. 어차피 아무도 모를 텐데 이번 주만 모른 체 넘어갈까, 그런 생각을 안 하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공을 들여 쓰게 된다. 심적으로는 덜 영근 글인 것 같은데, 좀 더 손보고 싶은데, 하면서도 올린다. 대작도 아닌, 아니 ‘작품’이라는 타이틀을 달아주기도 뭣한 글을 멋쩍게 등록한다. 언젠가 대거 발행 취소하고 수정하더라도 약속대로 쓰긴 써야 한다는 게 내 지론이다. 부끄러워도 언젠가를 도모해 보려면 해야 하니까. 지금  없는 내일은 없으니까.


   잡탕 맛집

   브런치에서 글을 꾸준히 쓴다고 생각하면 파생 질문들이 따라붙는다. 가장 많이 들어본 건 ‘뭐에 대해서 쓰냐’였고 그럭저럭 자주 들어본 건 ‘영감을 어디서 얻느냐’였다. 여담이지만 ‘영감’이라는 말이 나에게 매우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푸학 웃었다. 영감이라니. 너무 거창한 말이다. 딱 한 번 들어본, 그리고 나를 가장 놀라게 한 질문은 ‘스스로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하느냐’였다. 절대 공격적인 어투는 아니었다. 다만 순수한 호기심으로 무장한 그 말이 너무나 순수한 나머지, 내가 얼마나 솔직하게 대답해주어야 하는지 고민이 됐다. 고민하다가 우물쭈물 말했다. 산해진미는 아니고… 잡탕 정도는 돼.


   그 질문을 한 사람은 산해진미라는 말에 웃기 시작했다. 그 말을 오랜만에 들어봤다고, 역시 글 쓰는 사람들은 어휘 선택이 남 다르다며 한참 웃었다. 나는 처음엔 그게 뭐가 그렇게 웃긴가 눈을 껌벅거리다가, 눈물까지 훔치며 웃는 그 사람이 웃겨졌다. 그의 웃음에 전염되어 나 역시 배꼽을 잡고 막 웃었다. 그 기저에는 그가 추켜올린 ‘글 쓰는 사람들’에 내가 포함됐다는 일말의 자랑스러움도 있었다. 얼떨결에 말했지만 잡탕이란 말이 내 글과 꼭 맞는 것 같아 그 또한 즐거웠다. 그래, 내 글은 잡탕이다. 김치찌개도 아니고 부대찌개도 매운탕도 아닌, 잡스럽게 이것저것 넣고 끓여낸 탕.


   브런치에 올릴 글을 적으면서 자주 한 생각이다. 과연 나는 감성적인 글을 쓰고 싶은 건지, 밈에 절은 헛소리를 잔뜩 하고 싶은 건지, 그냥 글 씁네 폼을 잡고 싶은 건지. 오랜 고민이었는데, 그에게 내 글은 잡탕이라고 말하면서 번뜩 생각이 정리됐다. 나는 다 하고 싶은 거였다. 감성에 젖은 척도 하고 싶고 폼도 잡고 싶고 은은하게 나의 실없는 개그 본능을 살리고도 싶었던 것이다. 왜? 왜냐면. 나는 그런 사람이니까. 힘주어서 폼을 잡다가도 농담을 반죽에 섞어서, 누구 하나라도 농담을 알아듣고 웃으면 그게 그렇게 좋은 광대니까.  


   이런 걸 해도 되는가? 안 될 건 없지. 전에 내 절친한 친구가 그런 말을 했다. 김치찌개 맛집은 김치찌개를 해야지. 누가 이 집엔 왜 이렇게 메뉴가 없어? 한 마디 했다고 돈가스도 팔고 곱창도 팔면 그게 대체 뭐 하는 집이냐고. 잡탕이 정체성인 내가 브런치에서는 감성만 다섯 스푼을 풀어 글을 쓰려니까 마뜩잖았던 것 같다. 요즘은 브런치에서도 힘을 좀 빼려고 노력한다. 감성 두 스푼, 실없는 소리 두 스푼, 심심하니까 실없는 소리 한 스푼 더. 딱 좋다. 힘을 빼니 쓰는 게 좀 더 자유롭고 재밌어졌다. 너무 의식의 흐름대로 쓴 것 같은데, 이런 글은 장르를 뭐라고 해야 하냐, 습관적으로 생각하다가 멈췄다. 어차피 아무것도 아닌 글이고 아무도 아닌 작가다. 내 글의 장르? 잡탕! 장점? (내가) 재밌는 거! 중요한 건? 그냥 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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