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여러분
“그게 너다운 거겠지”
글스타그램을 했었다. 주변 사람에게 알리지 않고 비공개 계정으로 썼다. 글이란 건 주변 사람에게 알아달라고 쓰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로 나뉜다. 나는 양 극단을 왔다 갔다 하는 편이고, 그때는 나를 모르는 사람들이 읽기를 바라는 주기였다. 한창 친구들과 책 얘기를 많이 나눴지만 그들에게 글스타그램 계정을 숨긴 건 그런 이유였다. 글스타그램은 두 달 정도 바짝 열심히 쓰다가 금세 제 풀에 꺾여 계정을 삭제했다. 여하튼 그때 글스타그램에서 교류하던 사이버 친구들이 꽤 있었는데 그중 하나인 D와는 온라인을 벗어나서도 친구로 발전했다.
우리가 언제부터 어떻게 맞팔을 했는진 모르겠다. 다만 D는 언제부턴가 내 글에 거의 꼬박꼬박 댓글을 달았다. 댓글에 답글을 잘 달지 않는 나의 습관, 어찌 보면 싹수없지만 또 어찌 보면 일관성 있다고 쳐줄 만한 면모에도 불구하고 D는 한결같이 반응을 남겼다. D의 아이디가 눈에 익기 시작한 후부터 나는 D의 지난 글을 좀 더 살펴서 읽었다. 댓글도 달았다. 그러니 영 싸가지가 없는 파렴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근데 어차피 댓글을 달 거면 답글도 하나 달면 될 텐데. 왜 이렇게 답글엔 선뜻 손이 안 움직이는지 모를 일이다.
D는 글을 잘 올리지 않았다. 주로 남의 글들을 읽기 위해서 쓰는 계정인 듯했다. 그 당시 나는 배설하듯이 거의 매일 한 편씩 글을 올렸다. D의 댓글은 길진 않았지만 내가 의도적으로 숨겨둔 실없는 농담을 곧잘 파악했다. 진지한 척하다가 싱거운 소리를 하며 삼천포에서 끝맺곤 하던 나의 글들은, 지금 돌이켜 보아도 무지막지하게 못 썼다거나 부끄러울 정돈 아니었지만 다른 사람들의 것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랐다. 비유하자면 다른 사람들의 것은 신춘문예 공모작 감성, 내 글은 트위터 감성이었다. 피드를 구경하노라면 나도 이렇게 써야 하나, 순간순간 위축되기도 했다. 내가 중심을 잡게 도와준 건 D였다.
D의 제안으로 우리는 커피를 한 잔 마셨다. D는 생각보다 무뚝뚝하게 생겼었고 생긴 것 이상으로 딱딱한 말투로 말했다. 말수가 적진 않았다. 말의 내용은 무척 정중하고 온화했다. D는, 피드에서 ID를 확인하지 않고 대충 읽어도 누구 글인지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자주 쓰는 표현, 글이 흐르는 방향만으로도 ‘아, 그 사람’, 했었다고. 너무 패턴이 뚜렷하냐는 내 질문에 D는 잔잔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게 너다운 거겠지. 어쨌든 개성이 있는 건 좋은 거 아니겠어. 그 말에 몹시 기뻤다. 그 말 덕분에 지금껏 글을 찌그려대고 있다고 생각한다.
D와 헤어지고 집에 가면서 내가 했던 생각은, 이 사람도 강아지에겐 부드럽게 어르고 달래는 말투로 말을 걸까? 였다. 강아지에게 어떻게 말하는지 미처 알아내기 전에 D의 강아지는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팥색 코를 가졌던 예쁜 강아지가 지금은 강아지별에서 행복하기를.
“책은 언제 내니?”
여러 번 썼지만 나는 <친애하는 여러분>의 자비 출판을 기획하고 있다. 이 세상 누가 내 책을 내주겠는가 괴롭게(별 게 다 괴롭다) 생각하다가, 내가 내 돈 내고 찍으면 되잖아?라는 용감한 결심을 했기 때문이다. 대략 40부 정도 찍어서 각 글의 주인공에게 나눠주고자 한다. 본래 계획했던 건 2022년 하반기였다. 이 기획은 중간에 의욕을 잃어버린 나 때문에 중단됐었다. 대신해 줄 사람이 없었으므로 폐기의 위기에 처한 프로젝트를 다시금 끌어올린 건 또한 D였다.
D와 오랜만에 만나서 커피를 마셨다. D는 언제나 불필요한 미사여구를 붙이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사람이었다. 여느 때처럼 거침없이 물었다. 책은 언제 내니? 헉, 이렇게 갑자기 물어본다고, 생각하면서 왠지 안절부절못한 채 답했다. 글쎄, 모르겠어. 안 할 수도 있고. D는 다시 물었다. 왜 안 하려고 하는데? 그냥. 나의 ‘그냥’에는 내 시시한 글을 세상에 보여도 되는 건가, 안 그래도 쓰레기로 넘쳐나는 이 지구에 쓰레기 하나 더 얹는 일이 아닌가 하는 내 누추한 마음이 얹혀 있었다. D는 내 숨은 뜻을 단번에 알아차렸을 것이다. D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말없이 커피를 꿀꺽 삼켰다. 잠시 후 침묵을 깼다. 하는 게 좋을 거 같애, 누가 너 보고 상 타오라니? 헉, 이렇게 정곡을 찔러 온다고.
내 글은 언제 쓸 건데 이 시끼야. D는 좀 더 웃는 얼굴로 또 물었다. 몰라, 안 쓸 수도 있고. 맘에도 없는 대답을 부러 했다. 우리는 바보 같은 얼굴로 시시덕거리면서 치즈 케이크에 포크질을 했다. D의 강아지 얘기, 내 토끼들 얘기, 우리 주변 사람들 얘기, 저출산과 나라의 존망 같은 걸 얘기하다가 헤어질 시간이 됐다. 글을 통해 친해졌지만 글 얘기는 거의 하지 않는 우리였다. 쟁반을 카운터에 가져다주다가 궁금해져서 D에게 물었다. 너는 요즘 글을 쓰냐고. D는 심드렁했다. 쓰겠냐?
우리는 반대 방향으로 지하철을 타야 했다. 카드를 찍고 잘 가, 인사를 하자마자 D는 몸을 휙 돌려서 다시 한번 말했다. 책, 꼭 내. 기다리고 있으니까 내 글도 써라. 그러곤 마침 도착한 지하철에 잽싸게 올라탔다. 내가 뭐라고 답할 시간도 주지 않고 지 할 말만 하고 가버렸다. 나도 곧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그날 D의 표정, 우리의 대화를 생각하다가 혼잣말을 했다. 그래, 그러지 뭐. 근거 없는 자신감이 솟구쳤다. 이 지구에 쓰레기 한 번 더해보지 뭐. 나 하나쯤이야 티도 안 나겠지.
그날 내가 집에 와서 한 일은, 발행해 놓은 <친애하는> 시리즈의 글을 모두 발행 취소한 것이었다. 새로운 연재 브런치북을 만들었다. 발행 취소한 글들을 퇴고해서 현재까지 연재하고 있다. 지난날 썼던 글들은 조악했다. 그런 글에도 친구들은 기꺼이 기뻐해줬다. 한 번의 퇴고를 거쳐 덜 조악해진 현재의 글들엔 좀 더 기뻐해줄 것 같다. 본격적으로 책을 만들기 전에 한 번 더 퇴고할 예정이다. 두 번이나 퇴고해서 나올 글엔 친구들이 막 우는 거 아냐?
올 가을엔 정말로 종이 책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나눠 줘야지. D에게는 두 권 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