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여러분
게으름과 부지런함의 양면
I는 대학을 입학할 때 800:1의 경쟁률을 뚫었던 사람이다. I는 본인 일과 능력에 자부심이 있고, 그것들은 근거 없지 않다. 고등학생 때부터 존재했던 I의 높은 자부심은 수고스러운 대학 시절을 지나오며 땅땅히 부풀었다.
I도 나처럼 대학을 오래 다니며 마음의 방황을 갈무리하고자 무던히 노력했다. I는 본인의 학업에 마침표를 찍기 위해서, 또 스스로를 온전히 먹여 살리기 위해서 20대 내내 정말 열심히 내달렸다. 학교를 다니면서 3개의 일을 병행했다. 누구라도 혀를 내두를 것이다. 학교만 다니면서도 골병 나는 사람이 수두룩 빽빽한데, 일을 하나도 아니고 세 개나 하면서 다니다니. I의 알바천국 이력서는 장과 장을 넘어 폭주하는 진풍경을 보여준다. I가 일한 시간만 1만 시간이 넘는다. 무엇이든 1만 시간을 넘기면 전문가라지. 아마도 I는 지구 반대편의 레스토랑에 던져둬도 두 시간이면 식당 홀과 주방을 제 집처럼 훤히 꿰고 있을 것이다. 심지어는 언어가 통하지 않더라도.
한창 일과 학업을 병행할 때 일주일에 한 시간만 잔 적도 많았다고 한다. I가 "나는 치열하게 살지 못했어..."라고 말할 때마다 말문이 턱 막힌다. 반은 치열하지 못한 나의 과거를 참회하는 마음으로 공감했지만 반은 강한 의문이 도졌다. 그 이상 어떻게 치열하게 살 수 있지? 나태지옥에 가서도 부지런히 뛰지 못해 스스로를 비난할 것 같은 인간아. 아니지. 너는 나태지옥에 갈 일이 없단다.
I가 스스로 게으르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모르지는 않는다. I는 10시간을 차근히 엉덩이 붙이고 있는 타입이 아니다. 어떻게 시간을 단축할지 두 시간 정도 누워서 생각한다. 정정한다. 좀 많이 누워있는 편이긴 하다. 대략 네 시간쯤 누워 있다가 다섯 시간 만에 해치우는 사람인데, 누워있는 시간 때문에 자기가 게으르다고 여긴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I는 10시간짜리 일을 9시간 안에 해치우는 사람이다. 나는 그런 실상을 안다. I는 하기 싫어 죽겠다, 를 입에 달고 누워있는 사람이지만 아주 부지런했고 부지런한 사람이다.
우리는 맨날 '좋음'을 이야기한다
I와 나는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자주 이야기한다. 우리는 늘 좋은 사람이고 싶다.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이 우리 가슴을 아프게 하고 회의와 회한 속에 살게 한다. 이런 고민을 하는 게 우리가 좋은 사람이란 방증이야! 했다가, 역시 우리는 좋은 사람은 아니야 했다가, 그래도 우리 정도면 좋은 사람이야, 선언하며 산다. 좋은 사람이 뭔지도 모르면서. 꽉 찬 7년 동안 우리는 여전히 좋은 사람이 뭐냐고 서로에게 묻는다. 아직 정의 내리지 못했다는 뜻이다.
좋은 사람이란? 내가 막연하고 두루뭉술하게 제시한다면 I는 구체적이다. I는 꾸준한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꾸준함이 얼마나 어려운 덕목인지 한참 얘기했다. I와 나는 서로가 가진 패배감이나 두려움을 흠뻑 이해했다. 좋은 사람을 속이 넓은 사람, 주변을 잘 돌아보고 즐겁게 해주는 사람, 한결같은 사람... 다양하게 제시해 왔으나 모든 이야기가 종국에는 두려움을 가리킨다고 생각한다. 상처받고 무너질까 봐, 쿨해 보이지 않을까 봐 주변 사람에게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 한결같을 수 없는 나를 마주해야 하는 쓰린 마음. 그럼에도 직면으로부터 영원히 도망칠 수 없다는 생각에 문풍지를 쓸어내리는 찬 바람처럼 스며드는 무서움. 우리는 좋은 사람이 되겠다고 말하면서 실은 두려움을 극복하자고 말해왔던 것 아닐까.
우리는 마침내 두려움을 극복했는가 물으신다면, 그렇지는 않다고 겸연쩍게 대답해야겠다. 하나의 산을 넘으면 다음에 더 험준한 산이 기다리는 우리네 삶에서 과연 무엇도 두렵지 않은 언젠가가 오긴 할까? 시간이 흐르고 상황이 변하면서 우리의 두려움은 진해지기도 연해지기도 했다. 색을 달리하면서도 없어지지는 않았다. 내가 I의 모든 두려움과 시련을 알았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I 또한 나의 모든 바닥을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I와 나는 서로의 인생에서 정말 괴로운 시기들을 함께 보냈다. 우리를 괴롭히는 것들이 우리를 ‘좋은 사람’에서 얼마나 멀어지게 하던지. 그런 걸 나누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I와 있을 때 나는 상대적으로 ’T발롬‘이 된다. 다른 친구들 사이에서 제일가는 공감형 인간인 내가 한 수 접어줄 정도로 맞장구와 공감 없이 말을 못 하는 I. 늘 맞장구를 쳐주고 공감해 주는 사람이 되기로, 일단 자기가 할 수 있는 좋은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 것일 테지. 너는 다른 건 몰라도 그것만큼은 꾸준히 하고 있어. 가끔 내 말을 듣지도 않고 무지성으로 “맞아”라고 말해버리는 것 같긴 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