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여러분
지도 교수님 U
U 교수님을 강의실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매우 젊었고 나는 어렸다. 첫인상은 유쾌하고 부드러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편안한 인상과 달리 읽어야 할 책을 잔뜩 안겨주고, 매주 과제가 있으며, 성적에 관대하지는 않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선배들은 그의 수업을 들으려면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고 으름장을 놨다. 그래서 처음 입학했을 때 나는 그의 수업을 최대한 피해서 시간표를 짰다. 통한의 반수 실패로 유급 복학을 했을 때, 나는 기왕 이렇게 된 거 공부를 정말 열심히 해보자고 생각한 참이었다. 비장하고 용감하게 그의 수업에 들어갔다.
그는 매우 두꺼운 안경을 쓰고 있었다. 안경을 정수리까지 올리고 거의 코 앞에 출석부를 대고 한 명씩 이름을 불렀다. 한 명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안경을 내려서 눈을 맞추고 다시 안경을 정수리로 올리는 번거로운 행동을 했다. 그의 그런 행동은 이름보단 번호로 불리던 고등학교, 재수 학원을 갓 졸업한 나로서는 굉장히 낯선 것이었다. 대학은 그야말로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는 곳이구나, 느꼈던 첫 순간인 듯하다.
그의 수업은 듣던 대로 쉽지 않았다. 매주 두껍고 어려운 책을 읽고 한쪽 이상의 과제물을 내야 했다. 한 주가 지나면 빨간 펜으로 맞춤법 교정과 교수님의 한 줄 평, 점수가 적힌 과제물을 돌려받았다. 소설이 아닌 책을 읽는 것도, 내 생각을 표현하는 것도, 그리고 받아들이기 쉽지만은 않은 점수를 받아 드는 것도 모두 어려운 도전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U 교수님의 수업을 포기하지 않았다. 졸업할 때까지 그의 수업을 거의 모두 들었다. 농활에 가서도 그가 내준 과제를 붙들고 끙끙대던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있다. 농촌 봉사활동의 무대였던 논산에서 쏟아질 것 같이 펼쳐져 있던 별을 보다가, 술 취한 선후배 동기들을 구경하다가 하면서 읽었던 책은 J.S. 밀의 <자유론>이었다.
U 교수님은 수업 외의 부분에서도 학생들을 살뜰히 챙겼다. 내가 어딘가에 추천서를 내야 할 때 쭈뼛하게 부탁하면 그는 잊어버리지 않고 사무실에서 추천서를 건네줬다. 관심 있는 분야에서 일하는 선배들과 연결해 주려고도 부단히 노력했다. 그땐 그게 엄청난 기회란 걸 왜 몰랐을까! 그의 노고에 나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은 채로 술을 마시고 놀러 다녔다. 두어 번쯤 U 교수님과도 과 행사의 뒤풀이에서 한 테이블에 앉아 술을 나눈 적이 있다. 철학 얘기만 할 것 같던 그는 의외로 가벼운 심심풀이 농담을 많이 했다. 여러 모로 과에서 가장 좋아했던 교수님이었다.
"혜윤이 답게 지내길 바란다!"
대학을 졸업할 때 스스로 많이 초라하다고 느꼈다. 이렇다 할 결과를 얻지 못했다. 으리으리한 곳에 취직하지도 못했고 대학원에 간 것도 아니었다. 다음 행보가 정해지지 않은 채로 졸업을 해버렸다. 취업할 때까지 졸업을 유예해 놓는 게 추세였지만 이미 1년을 유예하고도 소득 없던 나는 더 이상의 유예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본래는 졸업식에도 가지 않고 몰래 졸업을 하려고 했지만 부모님의 만류로 졸업식에 갔다. 그때 친구들과 남긴 사진을 아직도 가끔 열어본다. 졸업식 안 갔으면 어쩔 뻔했어.
그때 U 교수님과도 사진을 찍었으면 좋았으련만, 그때 그는 마침 출장이 있어 졸업식에 불참했다. 하긴 그가 졸업식에 왔어도 내가 그를 피했을지도 모른다. 악수를 하면서 곰살맞게 혜윤이는 어떻게 됐니, 말을 붙여 올까 봐 먼저 꽁지를 내뺐을 것이다. 학사모의 끈을 넘겨준 교수님(이 분과는 그다지 가깝지 않았다) 말고 다른 교수님들과 마주치지 않아서, 질문을 받지 않아도 되어서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었다. 우선 졸업을 하고 뭔가를 이루면 교수님을 찾아뵙겠다고 생각했다. 세월은 정말 빨랐다. 순식간에 2년이 지났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로.
그런 내가 어느 날 메일함을 보다가 교수님에게 메일을 쓴 건 희한한 일이다. 여전히 으리으리한 곳에는 취직하지 못했었다. 작은 기업에서 일하면서 나의 부족함을 매일, 매 순간 마주하며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왜인지 나는 메일함을 열어서 그에게 긴 메일을 보냈다. 내가 기억하는 U 교수님과의 일화, 나의 근황과 마음을 전했다. 그는 매우 바쁜 사람이라서 답장을 받기까지 오래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음날 메일을 열어보니 답장이 도착해 있었다. 그는 메일에 이런 말을 썼다. '혜윤이 답게 지나길 바란다!'. 또 이렇게도 덧붙였다. '가끔 시간 날 때 산책이라도 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혹시 아니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단하게 될지?'
오, 교수님. 여전히 학생들을 크게 독려하고 계시군요. 나는 그의 답신을 중요 보관함에 넣었다. 가끔 그의 메일 말미를 다시 읽는다. 코로나 핑계로, 그다음엔 내가 준비하고 있는 여러 일들을 핑계로 아직 그를 찾아뵙진 못했다. 올해는 책을 만들어서 진짜 만나 뵙고 직접 전해드리려고 한다.
교수님, 저는 대단치는 못해도 교수님 말씀대로 '혜윤이 답게' 살고 있습니다. 간간이 글 쓰는 재미를 좇으면서 말이죠. 학부생 땐 교수님이 하라고 해도 절대 안 하던 운동도 하고요. 여전히 책은 안 읽고요. 교수님, 올해는 꼭 뵙겠습니다. 안녕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