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야, 그때 너랑 나는 뻔뻔하고 활기찼지

친애하는 여러분

by 밈혜윤

O와의 뻔뻔하고 활기찬

O는 밴드 동아리에서 친해졌다. O나 나나, 동아리 면접에서는 “기타를 배워 보고 싶어요!”라는 구라를 장착하고 실제 동아리 생활에서는 기타는 쳐다도 안 보는 뻔뻔한 행태를 보였다. 기타에 관심은 있었으나 진지하게 배우고 연습할 생각은 별로 없었다. 푸하하.


원래는 인문대 동아리였으나 당시 회장이 중앙 동아리로 키우겠다는 야심으로 타 단과대 학생들을 받았다. 그 덕분에 인문대 소속인 나와 경영대 소속의 O는 만나서 활기차다 못해 광기에 가까운 술자리를 가졌다. 이 술자리, 저 술자리, 장소와 차수를 사뿐사뿐 건너 다니는 걸로 모자라서 둘이 걸어 다니면서 툭하면 서로를 찔러봤다. 맥주? 딱 한 잔?


O와 내가 대단히 재미있는 유형은 아니지만 우리는 잘 웃었다. 그리고 수다스러웠다. O는 아는 사람이 많아서 이 사람 저 사람의 여러 재미난 일화가 두둑이 준비돼 있었다. O의 이야기에 간잽이 같이 빠르게 치고 빠지는 나의 리액션, 말도 안 되게 이야기를 부풀려 만드는 티저 짜깁기 능력으로 우리는 늘 성황리에 모객을 성공했다.


우리는, 밤새 술 마실 것처럼 술자리를 만들어놓고 막차 즈음에 떠나는 뻔뻔함마저 갖췄다. 말술을 말아먹는 친구들은 우리의 뻔뻔함에 질려 우리를 신용하지 않고 술자리에 응하지 않는 정도에 이르렀다. 오히려 술을 안 먹거나 조금만 먹는 친구들하고는 매우 돈독해졌다.


그래서 O와 나와 다른 두 친구까지 넷은, 20대 초반에 내일로 여행을 떠났다. 경주에서 비가 주룩주룩 오는 바람에 안압지 야경을 못 봤다. 방에서 교촌치킨을 시켜 먹으며 <짝>이라는 방송을 본 기억이 있다. 3박 4일의 여행 중 제일 기억에 남는 게 그거라니. 참내.


그런 우리가

O는 나보다 일찍 취직했다. 맨날 나처럼 아무 생각 없이 놀러 다니는 척하더니 학점도 취준도 살뜰히 챙기는 거. 정말 배신감 들었어. 그러나 이 친구도 저 친구도 다 제 앞길을 성실히 간 것 보면, 그때의 내가 진정으로 대책 없이 굴었던 게 맞다. 이걸 종이책으로 내놓으면 엄마아빠가 끊임없이 아연질색할 것이고 나는 여러 화에 걸쳐 내 무덤을 파는 중이다.


O는 취직을 하면서, 그리고 나는 백 여 개의 자소설 집필과 불합격을 거듭하면서 우리는 연락도 만남도 하지 않았다. O와 마지막으로 만난 날, 자기 취직했다며 피자를 사줬었다. 언니도 좋은 데 취직하면 맛있는 걸 사달라고 했다. 맛있는 건 못 사줬다. 좋은 데 취직하면, 취직하면, 아니 이번 면접만 잘 넘기면… ‘잘’ 넘겨지는 일은 없었다. 딱히 O가 아니더라도 여러 친구들을 피했다.


우여곡절 끝에 나는 작은 회사를 다녔다. 그새 O는 어려운 시험을 합격하고 전문인의 길을 걷고 있다. 마침 나도 그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한 참이었다. 나는 더 이상 미루지 말자고 생각하며 O에게 축하한다고 카톡을 보냈다. O는 곰살맞은 답을 줬다. 그걸 계기로 우리는 어느 날 정말로 만날 뻔했는데 내가 급하게 일이 생겨서 또 만남을 미뤘다.


몇 달 전에 우리는 드디어, 다른 두 친구를 포함해서 만났다. 약 8년 만이었다. 무시무시하다. 대학 생활이 엊그제 같은데 우리는 약 10년 만에 만나서 건강 염려증을 늘어놓는 30대가 되었더라. O는 그때보단 말수가 조금 줄었다. 아무래도 이십 대만큼 장황하게 말을 하기는 너도 나도 체력이 꺾였지.


세월은 숫자에 불과하단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체력은 꺾였지만 정말 재밌는 자리였다. 넷이 서로 말하려고 아우성치면서 순식간에 새벽 두 시가 넘었다. 자연스레 택시를 불러 타면서 각자도생 하는 모습마저 진짜 30대 같았다. 우리는 끝까지 왁자지껄하게 헤어졌다.


O는 그때그때 늘 자기만의 유행어가 있었다. 요즘 O에게는 ‘훌륭하다’가 입에 붙어 있는 것 같다. 한 시간에 60번 이상 쏟아지는 듯한 O의 “훌륭하다”를 듣고 있으면 훌륭하지 않은 내 인생이 어떻게든 굴러갈 거라는 이상한 용기가 나는 것 같기도… 옛날처럼 웃음기 섞어 O의 유행어를 따라 주워 섬기면서, 여전히 우리는 괜찮은 콤비 같다고 생각했다. 일단 내 생각은 그렇다.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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