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방송의 일부 스크립트입니다. 전체 방송이 궁금하다면 아래 링크에서…
https://www.podbbang.com/channels/1785492/episodes/25005141
자유, 그리고 로코물
저희는 계속해서 90년대의 변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왜 하필 90년대에 이렇게 변화의 바람이 불었을까요? 시대적 배경이 영향을 미친 걸까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근현대사 과목에서 배웠듯이, 한국은 70년대 오일쇼크 당시 3저 호황을 누리며 경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80년대에는 민주화를 향한 약진이 있었죠. 79년 박정희 유신정권의 종식 이후로 민주화가 찾아오나 했는데 전두환의 군부정권이 이어지면서 5.18 민주화운동, 6월민주항쟁 등이 일어납니다. 풍요로운 경제 상황과 자유에 대한 투쟁 경험이 90년대의 영화 문화 역시 바꿔놨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영화 제작의 분위기 역시 자유, 민주화의 분위기가 물씬 스며들었습니다. 본래 영화 감독이 되려면 도제 기간을 필수로 거쳐야 했는데요, 386 세대의 사회 진출과 동시에 영화 전공자, 동아리, 아카데미, 유학처럼 출신이 다양해졌습니다. 자연스레 도제 제도는 저물어갔어요. 386세대 영화인들은 영화 제작 뿐만 아니라 홍보, 기획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한국에는 ‘기획영화’라는 것이 생깁니다.
기획영화의 대표적 장르는 로맨틱코미디입니다. 사실 로코를 누가 싫어하겠어, 당연하지. 이렇게 생각했는데 로코물이 성장한 데에는 높아진 여성의 교육 수준과 사회 생활이 기여했다는 사실. 정말 놀랍지 않나요? 역시 사회의 현상은 단면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여성이 교육을 받고 사회에 진출해 능력을 갖추게 되면서, 여성은 영화의 소비 주체가 되었습니다. 영화에서 다루는 여성 캐릭터의 직업 또한 다양해졌습니다. 그전에는 여성이 사회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너무나 한정적이다 보니까 매춘여성으로 그려지거나, 집에서 매맞는 여성 캐릭터가 대부분이었다고 합니다. 반대급부로 남성 또한 영웅이 아니면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억압적인 캐릭터였다고 하네요.
90년대부터 만들어진 로맨틱코미디 영화는 상극인 남녀가 서로 티격태격하면서 미운 정 들어서 커플이 되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권리를 주장하는 당당한 여성, 그리고 남성과 동등한 여성 캐릭터가 당연하지 않은 시대가 있었다는 게 새삼 기분이 이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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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영화와 여성영화
80년대까지 한국 영화 흥행순위를 꼽으면 10위 안에 에로영화가 한 편은 있었대요. 그런데 90년대에 들어서 TOP10 작품에서 에로영화는 자취를 감춥니다. 에로영화는 비디오 시장이라는 음지로 넘어갔습니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비정상적인 유통 경로를 갖추고 매우 저렴하게 만들어지기 시작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어차피 극장에 걸릴 게 아니니까 대충 만들어도 된 거죠.
이 에로영화의 빈자리를 메운 게 여성영화입니다. 여성이 주인공으로서 자신의 삶에 대해 고민하는 영화가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한 걸 발견했어요. 1996년 개봉한 여성영화 중에 <코르셋>이란 영화가 있어요. 외모 콤플렉스에 시달리는 주인공이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자기의 가치를 찾아가는 내용이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