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어떡할까
노을이 무서울 정도로 가깝게 깔리고 있었다. 보랏빛, 주황빛의 하늘은 도톰한 구름과 섞여 장관을 보여주다가 금세 자취를 감추고 껌껌해졌다. 껌껌해지자 I가 튀어나왔다. 조금 더 일찍 나오지. 하늘이 엄청 예뻤는데. 응, 보낸 사진 보니까 예쁘더라.
늘 가는 카페에 늘 앉던 자리. 늘 먹던 메뉴를 시켰다. 늘 하던 대로 담배를 열심히 피워가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두서없이 늘어놨다. I는 이런 얘기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뜸을 들였다. 심장이 덜컹했다. 이런 얘기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어, 솔직히 말할게, 진지하게 할 말이 있는데… 뒤에 좋은 이야기가 따라붙는 적은 드물다.
I가 들려준 이야기는 늘 하던 얘기는 아니었다. 그는, 지난 주말에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작업하던 파일들을 휴지통으로 미련 없이 처넣었다고 했다. 그리곤 방을 정리했다. 자기가 죽은 뒤에 더러운 방을 보면 엄마가 너무 속상해할 것 같아서. 엄마가 “슬플 것”이 아니라 “속상할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 단어 선정부터가 I의 무뎌진 마음을 보여주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빌라 현관을 나선 I는 스스로에게 물었다고 한다. 이제 어떡할까. 그리고 그는 내 얼굴을 떠올렸다. 어떡할까.
죽을 수는 없겠네
I는 머뭇거렸다고 했다. I는 엷게 웃었다. 죽으려고 하니까 말이야, 엄마도 친동생도 아니고 언니 생각이 나더라. 예전의 그 아픔을 내가 또 줄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다시 올라가서 휴지통 파일들 복원해 가지고 작업을 했지. 나는 이미 눈물로 얼굴이 엉망이었다.
I는 아 왜 울어! 씩씩한 척 소리를 지르더니만 이내 자기도 울어 버렸다. 우리는 강아지와 사람과 차가 뒤엉켜 아무렇게나 다니는 폭이 좁은 도로에서 담배를 들고 죽죽 눈물을 흘리다가, 눈물을 흘리면서 농담을 하고 웃었다. 정말 이상한 애들이야. 카페의 사장님, 지나가는 사람들은 어쩌면 그렇게 생각했겠지.
현실이 너무 아파서 죽음의 품에 달려가던 사람이, 다른 사람의 아픔을 생각하고 그 걸음을 뚝 멈추는 건 어떤 마음인 걸까. 타인을 아프지 않게 하기 위해서 자기 아픔을 삼켜버린다는 건 도대체 어떤. 집에 돌아오는 내내 그 마음이 궁금해서 곰곰이 생각했다.
자기 전에 카톡을 보냈다. 내가 다음에 이사를 한다면 XX(I가 사는 동네)로 갈 거야. 이 말은 너의 가까이에서 내가 항상 이야기를 들어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궁색한 위로였다. I의 답장이 곧장 날아왔다. 응, XX가 집값이 싸긴 하지.
물음표, 너 왜 이렇게 T발놈이 됐어, 전송. 우리는 카톡으로 ㅋ을 남발하며 한바탕 웃었다. 나도 근래 죽고 싶었던 일이 있었다.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죽지는 못하겠네. 나 때문에 못 죽었다는 놈이 하나 있으니까. 마음의 빚을 크게 졌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