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다녀온 타이베이
행복의 나라, 대만
대만에는 네 번 다녀왔다. 타이베이를 세 차례, 가오슝을 한 차례 다녀왔다. 오늘의 이야기는 타이베이다. 얼마 전에 또 다녀왔기 때문이다.
맨 처음 타이베이를 찾았던 건 9년 전, 2016년 25세 때였다. 부모님과 찾았던 타이베이는 강렬한 인상으로 남았다. 거리에는 따뜻한 기후에서 자라나는 이국적인 나무들이 바람에 잎사귀를 흔들며 있었고, 세월이 두껍게 씐 낡은 건물과 번체로 쓰인 한자 간판들이 즐비했다. 길거리 도처에는 짜고 따뜻한 국물 냄새가 훅 퍼졌다. 지난주에 타이베이에서 귀국하고 그때 사진을 다시 찾아봤다. 부모님은 지금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젊고 탄탄했고(50대에 탄탄하다는 말이 이상할 수도 있지만), 나는 지금을 상상할 수 없게 앙상히 마른 몸을 하고 있었다.
그다음 타이베이를 찾았던 건 2019년이었다. 동생, 친구들과 찾은 8월의 타이베이는 끔찍이도 더웠다. 여행 간다고 신나서 사 입었던 겨자색 꼬까옷이 생각난다. 단 5분의 도보 이동으로 겨자색은 탁한 겨자색이 될 만큼 푹 젖었다. 우리는 두 손 두 발을 들고 걸어가려던 계획을 철회했다. 버스는 한국의 그것만큼 시원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거리보단 쾌적했다. 낮에는 이상하리만치 사람이 없었다. 알고 보니 대만도 여느 동남아에 뒤지지 않게 더워서 낮에 돌아다니는 건 외국인과 개뿐이라는 말이 적용되는 곳이었다.
2025년 1월의 타이베이는... 쾌적했다. 맨날 최저가 비행기를 타고 가느라 한여름에만 대만을 찾아서 몰랐는데, 1월의 대만은 한국의 9월 말~10월 초 정도의 날씨였다. 얇은 티셔츠, 가벼운 아우터면 저녁에도 춥지 않았다. 이번에도 친구들이랑 여행을 떠났는데 둘씩 짝지어서 거의 따로 돌아다니는, 특정 일정에만 다 같이 모이는 특이한 여행의 형태였다. 이런 여행은 처음 가봤는데 이것도 꽤 괜찮았다. 그래도 좀 더 몰려다녔다면 좋았을 텐데. 내 여행의 영상과 기록에 보다 더 자주 등장했다면.
예나 지금이나 대만은 거리마다 맛있는 냄새, 혹은 무슨 맛인지 짐작이 안 가는 향신료 냄새가 풍겼다. 우리는 유튜브 따위에서 열심히 찾아온 맛집을 찾아 들락거렸다. 버블티를 계속 들이켰고 길거리에서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먹어치웠다. 다행히 평소에 틈나는 대로 많이 먹어서 ‘돼지력’을 향상해 온 덕에 배가 불러서 못 먹는 불상사는 없었다. 6년 전에는 낯설어서 감히 시도하지 않았던 음식들을 이번엔 시도해 보았고 예상외로 정말 맛있는 것들이 많았다. 한국과 다를 바 없는, 한국 간판을 그대로 달고 있는 인생네컷 류의 가게들을 힐끔댔다.
동행은 대만이 처음인 사람도 있어서 타이베이의 대표적인 관광지들을 찾았다. 늘 밤에만 찾던 용산사를 낮에 찾았다. 소망을 기원하고 미래를 점치는 대만 사람들의 고요한 일상을 훔쳐보면서 그들을 따라 나도 괜히 소원을 빌고 빨간 나무조각(점치는 데에 쓰이는 것)을 던졌다. 천등을 또 구매해서 소원을 적고 날려 보냈다. 내 소원에 지구를 아프게 할지도 모른다는 껍데기뿐인 걱정을 한 소큼 마음에 뿌리면서. 여행 중간에 몸살로 크게 앓았지만 여행은 행복했다. 여전히 동전을 많이 쓰고, 한국말이 많이 쓰여 있고, 한국에 비해 묘하게 모든 일상이 천천히 물러가는 대만에서는 늘 행복했다.
망각과 진리
타이베이 시내에서 한 시간 조금 넘게 기차를 타고 달려가면 단수이라는 곳이 있다. 그곳 관광 코스 중에는 왜인지 ’진리대학‘이라는 곳이 포함돼 있다. 예전에는 옥스포드 칼리지가 이름이었고, 현재는 ’Aletheia University'다. 해당 단어는 철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낯설지 않은 단어다. 혹시라도 관련 철학에 관심 있으신 미친 분(...)이라면 하이데거와 알레테이아를 검색해 보면 되겠다.
그리스로마 신화에는 레테 강이 나온다. 망각의 강이라고도 불리는 레테 강은, 건너가는 순간 기억을 몽땅 잃는다. 전생의 기억은 새로운 세상에서는 필요 없는 탓일까. 기억은 지워지고 없는 것이 되지만 진리라면? 진리는 잊힐 수 없는 것이다. 혹은 잊혀서는 안 되는 것. 따라서 진리는 잊힐 수 없는 것, 망각의 반대인 것으로 부정의 접두사 ‘a'를 붙여 ’aletheia'가 된 것이다. 철학 전공자로서 다른 모든 것은 수상할 정도로 까먹어 버렸지만 이것만큼은 또렷한데, 레터링으로 새길지 말지 오래도록 고민한 탓이다. 여하튼. 진리 대학의 원 이름이 ‘알레테이아 유니버시티’인 것은 바로 이런 뿌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단수이의 진리 대학을 지나며 간판에 쓰인 알레테이아Aletheia를 읽을 때마다 대학생 때 종종 몸을 뉘이던 퀴퀴한 과방 냄새가 나는 것 같다. 그 냄새는 지긋지긋하다. 학교 다닐 땐 과방을 더럽게 쓰는 놈들이 지긋지긋했고, 당장 내일 내야 하는 발제문이 지긋지긋했다. 지금은 지긋지긋하게 그립다. 과방에서 몸을 옹송그리고 있다가 변변찮은 밥집을 가기 위해 계단을 내려가던 것이나, 라운지에서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엎드려 졸기나 하던 것이나, 조교님들이랑 맞담배를 피우며 쓸데없는 대학원 농담을 주고받으며 하하 웃던 것. 순진하게 슬프고 즐겁던 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대로 돌려준다고 하면 절대로 가지 않으리. 지금 가진 이 지긋지긋한 그리움은 그 당시 여러 아픔과 고난을 망각했기 때문이란 걸 알기 때문이다. 즐거운 일만큼 괴롭고 고민되는 일이 많았다. 그 또한 순진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축복은 망각이라던가. 신께서 주신 축복 덕분에 우리는 지난 청춘을 점점 더 무결한 것처럼 생각하게 된다. 때로는 미화가 지나쳐서 그때보다 지금이 훨씬 불행한 것 같고, 죽고 싶어지기까지 한다. 아... 이쯤 되면 신께서 주신 축복이자 저주, 제로썸 게임이라고 봐도 무방하겠는데.
어쨌든 야자수 같이 생긴 나무가 드리워지고, 주황 벽돌 건물이 멋들어지게 햇살을 받고 있는 진리 대학을 걸어 다니면 나는 그 학교를 다녀본 적도 없으면서 이상한 향수가 가슴을 찌른다. 대학생 때 진리 대학 캠퍼스를 봤다면 종잡을 수 없을 변덕과 광기에 사로잡혀 당장 대만으로 교환 학생을 알아봤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하튼 가슴이 절절해진 뒤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지금이나 옛날이나 다를 것 없이 행복하고 불행한 법이라고 스스로 타이른다. 세월이 지나 망각이 나를 다정히 덮어주면 지금도 행복하기 짝이 없는 시간으로 남을 거라는 사실을 잘 기억해야 한다. 그러고 보면 행복과 불행이 고만고만하게 영역 다툼을 하는 일상은 행복에 가깝다고 볼 수 있고, 이것이야말로 잊혀서는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