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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전 꾸리찌바, 지금 다시 생각나는 이유

2001년부터 내가 느낀 꾸리찌바, 지속 가능한 도시

by 혜솔


쓰레기를 자원으로 바꾸고, 버스로 도시를 움직이며, 숲을 품은 꾸리찌바. 20여 년 전 내가 본 그 도시는 오늘날 우리가 배워야 할 미래였다.


2001년부터 4년 동안 나는 브라질의 꾸리찌바를 자주 오갔다. 처음 그곳을 찾았던 2001년, 한국은 2002 한·일 월드컵을 준비하느라 분주했고, 꾸리찌바의 대중교통 시스템을 취재하려는 한국 방송국 취재진들도 현지에 와 있었다.

내가 꾸리찌바라는 도시를 알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축구선수를 꿈꾸던 어린 아들을 브라질로 유학 보내려 하면서였다. 축구 유학이 막 시작되던 시절, 몇몇 한국 유학생들은 상파울루에 모여 있었으나 그곳은 생활환경이 열악하고 치안도 불안했다. 고민 끝에 브라질의 주요 구단들을 찾아보았고, 꾸리찌바에 브라질 리그 1위 구단인 아틀레치코 파라나엔세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결국 나는 아들을 그 유소년 팀에 보내기로 결심했다. 브라질 대사관을 드나들며 절차를 밟은 지 석 달 만에, 나와 아들은 우여곡절 끝에 꾸리찌바 땅을 밟을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한국에서 꾸리찌바를 아는 이는 드물었다. 그래서 현지에 가서야 이 도시의 진면목을 알게 되었다. 내가 아들을 그곳으로 보내려 했던 이유는 무엇보다 축구팀의 환경이었지만, 곁들여 들은 ‘브라질에서 가장 삶의 질이 높은 도시’라는 설명도 마음을 움직였다.

몇 해를 오가며 경험을 쌓는 동안, 꾸리찌바는 점차 우리에게도 배울 점이 많은 도시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 무렵 국내에는 『꿈의 도시 꾸리찌바』(박용남, 녹색평론사)가 출간되기도 했다. 다만 왜 지금에서야 꾸리찌바가 다시 떠오른 것일까. 꾸리찌바가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도시가 된 지도 이미 오래인데 말이다.


차분한 공기, 다른 도시의 풍경


꾸리찌바는 유엔이 정한 환경 생태 도시이자 브라질에서 가장 ‘유럽의 분위기’를 지닌 도시라고 했다. 실제로 상파울루와는 전혀 다른 차분한 공기를 느낄 수 있어 놀랍기도 했다. 그것은 아마 거리가 깨끗하고 차량으로 붐비는 느낌이 적어서였을 것이다.

지하철이 없고, 일방통행 체계로 차량이 움직이며 보행자 거리가 확보된 도시, 그 꾸리찌바를 기억하며 오늘날 우리의 환경을 생각해 본다.

나는 현지에서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 날이 많았다. 전용 차선을 달리는 굴절버스, 원통형 정류장에서 이루어지는 빠른 승하차는 무척 편리했다. 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녹지 공원에 들어섰을 때는, 숲과 호수가 어우러진 풍경 속에서 시민들이 자전거를 타고 산책을 즐기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때의 나는 그저 '이 도시는 참 특별하구나' 하고만 생각했다. 몇 번을 드나들다 보니 솔직히 '이민을 올까?' 하는 생각까지 스쳤으니 그만큼 나하고 맞는 도시였던 것 같다.


교통 혁신, BRT 시스템과 보행자 거리


꾸리찌바를 세계적인 친환경 도시로 만든 상징은 BRT(버스 급행 시스템)였다. 버스 전용 차선을 달리는 굴절버스, 미리 요금을 내고 빠르게 승하차할 수 있는 원통형 정류장은 교통 효율을 크게 높였다. 이 시스템 덕분에 시민들은 자가용보다 버스를 더 편리하게 이용했고, 교통 혼잡과 대기 오염은 눈에 띄게 줄었다. 당시 꾸리찌바의 BRT는 세계 여러 도시가 벤치마킹할 정도로 혁신적이었다.


2001 여름-나는 이 도시의 거리가 정말 좋았다.

하지만 교통 혁신은 버스만이 아니었다. 1970년대 초, 꾸리찌바는 차량이 가득하던 중심 상업 지역을 과감하게 보행자 전용 거리(꽃의 거리)로 바꾸었다. 처음에는 반발도 있었지만 결과는 성공이었다. 차 없는 거리는 시민과 관광객의 발걸음을 끌어들이며 상권을 되살렸다. 오늘날 꽃의 거리는 매주 토요일이면 길거리 전시회가 열리고, 예술가들이 작품을 자유롭게 선보이는 문화의 장으로 사랑받고 있다. 교통 정책이 단순히 이동 수단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의 삶과 문화의 질을 높이는 계기가 된 것이다.


쓰레기를 자원으로 만든 정책


꾸리찌바는 1960년대부터 ‘마스터플랜’을 세우고 교통, 녹지, 쓰레기 정책을 체계적으로 추진해 왔다. 특히 쓰레기 정책은 놀라울 만큼 혁신적이었다. 단순히 쓰레기를 줄이라는 구호에 머물지 않고, 시민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냈다.

대표적인 것이 ‘녹색 교환 프로그램’이다. 주민이 쓰레기봉투 다섯 개를 모아 오면 쌀이나 콩, 감자 같은 식료품 한 봉투로 바꿔주었다. 때로는 버스 토큰이나 공책으로도 교환이 가능했다.

쓰레기 트럭이 들어가기 어려운 빈민가에서 이 제도는 더욱 빛을 발했다. 주민들은 거리를 깨끗하게 하면서 동시에 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얻을 수 있었다. 쓰레기는 짐이 아니라 자원의 순환이 되었고, 환경 정책은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와 연결되었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음식물 쓰레기 분리 정책이다. 가정주부들이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실천할 수 있을 만큼 생활화된 제도로, 시행된 지 10년이 넘도록 시민들의 참여율이 꾸준히 유지되었다. 꾸리찌바는 이렇게 쓰레기를 환경 보호뿐 아니라 시민 교육과 습관의 변화로 이어가며 지속 가능한 도시 문화를 만들어왔다. 내가 놀라운 것은 이런 정책들이 이미 1960년대부터 추진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시기 한국은 산업 발전에만 몰두하며 민둥산을 바라보던 때였다. 녹지는 사치였고, 개발만이 미덕이던 시절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브라질보다 더 잘 사는 나라가 되었지만, 그 길 위에서 잃어버린 것은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도시를 숲으로 바꾼 녹지 정책과 생태 회복


꾸리찌바는 1인당 52㎡의 녹지 면적을 확보하고 있는 도시다. 이는 세계에서도 손꼽히는 수준으로, 도심 속 녹지는 단순한 휴식 공간을 넘어 도시의 생태계를 지탱하는 기반이 된다.

도시 규정에 따라 건물을 지을 때는 반드시 일정한 공간을 확보해 나무를 심어야 했고, 그 결과 지금은 백만 그루가 넘는 나무가 꾸리찌바를 푸르게 한다. 공원은 단순한 쉼터가 아니라 홍수를 막는 유수지 역할을 하고, 자전거 도로와 조깅 코스를 통해 시민들의 삶의 질을 높인다.


주목할 만한 사례는 옛 쓰레기 매립장이 식물원으로 변신한 일이다. 혐오 시설이던 공간이 생태적 회복의 장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내가 가 본 곳 중에 특이한 또 하나의 상징은 ‘오페라 데 아라메(철제 오페라하우스)’다. 버려진 채석장을 재활용해 세운 이 공연장은 철과 유리 구조물이 어우러져 있어, 현지에서는 흔히 ‘유리궁전 같은 오페라하우스’라 불린다. 투명한 외관 너머로 자연 풍경이 스며들어 공연장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 작품이다.

시민들은 이곳에서 연극과 음악회를 즐기며, 자연과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의 가치를 체험한다. 꾸리찌바는 단순히 자연을 지켜내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버려진 공간을 생태적·문화적으로 되살리며 도시 재생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보였다. 도심 곳곳에 있는 16개의 대형 공원과 수많은 소규모 공원들은 지금도 꾸리찌바의 상징이자 가장 큰 관광 자원으로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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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하우스와 꾸리찌바 식물원(두 건물 다 철제와 유리로 만들어졌다)


이제야 보이는 도시의 의미


돌이켜보면 꾸리찌바의 모습은 단순히 신기한 도시 설계가 아니었다. 그것은 환경과 미래를 내다본 결단이었다. 내가 꾸리찌바를 알고 난 뒤 스무 해가 흐른 지금, 지구, 환경, 기후 위기는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폭염과 폭우, 산불과 해수면 상승은 우리의 일상으로 파고들었다.

이제야 깨닫는다. 꾸리찌바가 일찍이 선택한 길이야말로 우리가 미리 준비했어야 할 길이었다는 것을. 만약 그때 전 세계가 동시에 이런 도시를 꿈꾸었다면 지금 지구의 모습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이 모든 이야기는 브라질에서 나온다. 일찍부터 환경 생태 도시로 변모한 꾸리찌바와, 개발로 황폐해져 가는 아마존은 너무도 대조적이다. 꾸리찌바의 시장들이 보여준 결단이 더욱 크게 다가오는 이유다.


우리도 달라져 가고 있다


기후위기의 현실 앞에서 꾸리찌바의 사례는 분명한 메시지를 준다. 지속 가능한 도시는 거대한 기술이 아니라, 시민과 함께하는 작은 실천에서 출발한다는 것.

2001년, 나는 그저 꾸리찌바를 ‘특별한 도시’라며 감탄했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 모두에게 묻고 싶다. 왜 우리는 조금 더 일찍 꾸리찌바의 길을 배우지 못했을까.

다행히 2002년 월드컵을 계기로 우리에게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당시 꾸리찌바를 취재했던 방송이 TV로 방영되었고 서울시는 꾸리찌바의 버스 시스템을 일부 도입해 버스 전용차선을 만들었다. 대중교통 중심의 도시로 나아가는 첫걸음을 뗐던 것이다.

“조금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때”라는 말처럼, 변화는 이어졌다. 전북 완주의 로컬푸드 생태마을, 충남 홍성의 유기농 공동체가 하나둘 자리를 잡았고, 서울 은평구·성북구 등에서 시도되는 생태 친화적 마을 만들기 정책은 아직 작은 걸음일지라도 희망의 불씨가 되고 있다. 탄소를 줄이고, 녹지를 늘리고, 시민이 함께 참여하는 실험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꾸리찌바의 쓰레기 매립장이 식물원으로 변신한 것처럼, 서울 한강변의 난지도 역시 거대한 쓰레기산에서 2002년 월드컵공원으로 다시 태어났다. 또 도농 교류를 위해 폐교를 문화공간으로 바꾸어 도시민을 맞이하는 지역사회도 늘어나고 있다.


'늦지 않았다, 지금이 시작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꾸리찌바가 쓰레기에서 길을 찾았듯, 우리도 일상의 선택 속에서 꾸준히 미래를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우리의 아이들이 우리에게 같은 질문을 던질 것이다.
“왜, 더 일찍 시작하지 않았나요?”


그러나 아직 늦지 않았다. 국제사회는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이고, 2050년까지는 탄소중립 사회를 달성해야 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남은 시간은 길지 않지만, 여전히 10년 이상이라는 시간이 있다. 지금부터 탄소중립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딘다면 기후위기의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꾸리찌바는 2000년대 초반에도 정책의 힘으로 이미 생태도시의 기반을 갖춘 도시였다. 이는 시장과 행정의 뚝심 있는 결단의 결과였다. 그리고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꾸리찌바는 멈추지 않았다. 태양광 발전 단지 같은 청정에너지 사업에 주력하고 있으며, 2020년에는 유엔 해비타트가 주관한 ‘기후스마트시티 챌린지’에 참여할 세계 4개 도시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꾸리찌바는 교통 부문에서도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2030년까지 전체 버스의 3분의 1을, 2050년까지는 전부를 전기버스로 교체해 배출가스를 없앨 계획이라고 한다.

꾸리찌바는 여전히 앞서가고 있다. 문제는 우리다. 더 늦기 전에, 한국의 도시들도 탄소중립을 향한 실질적 변화를 서둘러야 한다. 지금 우리가 내딛는 작은 걸음이 미래 세대를 위한 유일한 희망이 될 것이다. 그 시작은 오늘, 바로 우리의 선택에서 출발한다.



※ 이 글은 제 개인의 체험과 도서 <꿈의 도시 꾸리찌바>, <녹색 평론>을 참조하여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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