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 금광호수에서 만난 박두진의 시와 손자 로리의 한마디
시인의 호수는 아름다운 가을이었지만,
그 물 위엔 우리의 무관심이 떠다니고 있었다.
추석연휴를 맞아 우리 가족은 안성의 어느 숲 속 캠핑장에서 이틀을 보내기로 하고 출발했다. 비가 내리고 있어 조금 불편했지만 오랜만의 캠핑이기에 모두들 마음은 들떴다.
도심을 벗어나 황금빛 들녘을 지나고 숲으로 들어서자 공기는 금세 달라졌다. 흙냄새와 낙엽 냄새 그리고 개울물 흐르는 소리가 어찌나 정겹던지 오래전에 가 본 아버지의 고향으로 돌아온 듯했다.
캠핑장에 들어서자 젖은 풀 향기와 나뭇잎에 맺힌 빗방울이 반겼다. 손자 로리의 웃음소리도 바람에 섞여 더욱 싱그러웠다. 텐트를 치기 시작하니 빗줄기가 조금씩 굵어졌다. 첫 캠핑을 하던 작년 봄도 비가 내리던 날이었다. 우리 가족은 주로 비를 몰고 다니는 것 같다. 어쨌든 텐트를 치고 점심으로 라면을 끓여 먹으며 "비 오는 날 캠핑엔 라면이지" 하며 모두 웃었다. 텐트 안에서 듣는 빗소리는 그 어떤 노래보다 아름다운 음악이었다. 그 순간 만큼은 시간이 멈춘 듯했다. 내가 아는 세상이 잠시 멈추고 새로운 세상으로 날아온 느낌이다.
박두진 시인의 고향 안성, 시 속을 걷다
밤새도록 비가 내렸다. 아침이 되니 비는 그치고 하늘은 흐렸지만 시원했다. 문득, 어제 캠핑장으로 오던 길목에서 본 호수공원이 생각나 아침 산책으로 금광호수공원을 택했다. '청록파' 시인 박두진의 이름을 딴 문학길이 이어진다는 이야기에 설렘이 일었다.
박두진 문학길, 이곳은 호수를 중심으로 자연과 문화, 휴식이 어우러지게 조성된 시민 공원이었다. 백일홍과 코스모스가 넓게 펼쳐져 호수에서 부는 바람을 따라 하늘거렸다. 마치 시인의 문장처럼 느껴졌다.
청록파 시인 박두진, 고교시절 국어 교과서에서 본 익숙한 이름. 그의 시는 늘 자연과 생명, 그리고 인간의 근원을 노래했다. 그 시인의 고향이 바로 이곳 안성이었다니.
우리는 가벼운 산책으로 시작한 발걸음이 그의 시 속으로 들어가는 여정이 되리라 생각하며 설렜다.
둔덕 위의 나무는 한 편의 시처럼 서 있었고 호수는 부드럽게 숨 쉬고 있었다. 잔잔한 물결 위로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의 모습도 자연의 일부처럼 보였다. 천천히 걷다가 박두진 시인의 시비 앞에 멈춰 섰다. 시의 제목은 '광장'이었다.
광장
뜨거운 침묵의 햇살이 쌓이고
바람은 보고 온
아무것도 말하려 하지 않는다
젊음이 달리던 함성의 파동
열기를 뿜었던 흔적의 피를
증발하며
다만
파랗게 몰고 올 바다의 개벽
이념의 별들의 신선한 폭주를 기다리며
증언의 푸른 나무
정정한 수목들에 둘리워
하얗게 끓고 있다
'광장'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자신의 목소리를 내야 하는 자리였을 것이다. 자연 속에서, 혹은 사회 속에서 침묵하지 않는 존재로서의 인간, 이 호수 역시 그런 목소리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호수의 현실, 시와 멀어진 풍경
하지만 시의 여운은 오래가지 않았다. 물가로 내려서자 문득 비린내가 훅 하고 스쳤다. 호숫가엔 죽은 물고기들이 둥둥 떠 있었고, 그 곁을 쓰레기들이 떠다니고 있었다. 플라스틱 컵, 비닐봉지, 스티로폼, 낚싯줄, 비료 포장지, 찌그러진 페트병까지. 누구의 손에서 버려진 것들일까.
그때 손자 로리가 아빠에게 안긴 채 소리쳤다.
"할머니! 저기 물고기가 죽었어. 컵도 떠다녀… 플로깅은 물속에서 못하잖아. 어떡하지?"
그 말이 너무 단순해서 더 마음이 아팠다. 로리는 어른스러운 말투로 한마디 더 했다.
"이거 누가 이렇게 버린 거야? 이러면 안 되지~"
누가 버린 걸까. 사람의 손이 만든 문명의 조각들이 시인의 호수 위를 떠다니고 있었다.
'바람은 보고 온 아무것도 말하려 하지 않는다'
좀 전에 본 박두진 시인의 시구가 이상하게 현실과 겹쳐 보였다. 이 풍경 앞에서, 나는 침묵해야 하는가. 그럴 수는 없을 것 같다.
이곳은 호수와 산, 숲을 연결해 조성한 수변화원이다. 꽃밭은 계절꽃으로 변화를 주며 정성스레 가꾸어졌지만, 길은 군데군데 빗물이 고여, 가던 길을 막기도 했다. 그리고 호숫가 둘레에는 관리의 손길이 닿지 않았다. 아름다운 겉모습 뒤에 가려진 관리의 사각지대, 그 속에서 자연은 조금씩 상처받고 있었다.
시인의 정신을 닮은 공간이 되길
이 공원은 '박두진 문학길'이라는 시인의 이름을 걸고 있다. 멀지 않은 곳에 박두진 문학관이 있고, 그곳과 이어지는 문학의 길이다. 많은 이들이 그 이름을 따라 그의 시를 떠올리며 이곳을 찾는다. 그렇기에 더더욱 이 공간은 시인의 정신을 닮아야 한다.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 생명을 존중하는 시선, 그것이야말로 시비보다 더 큰 '문학의 기념비'가 될 것이다.
박두진의 시세계는 일관되게 '자연으로의 귀의'를 향하고 있다. 그에게 자연은 생명의 근원이며, 인간이 돌아가야 할 본향이었다. 사실 그 본향으로 가는 길은 멀리 있지 않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일들을 성실히 해내는 일이다.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쓰레기 하나를 줍는 일, 플라스틱 대신 텀블러를 드는 일, 그런 사소한 행동이 바로 시인의 문장으로 들어서는 길이 아닐까. 금광호수의 바람은 여전히 부드러웠다. 손자 로리의 손을 잡고 데크길을 걸으며 나는 괜스레 미안해졌다.
산책을 마치고 다시 캠핑장으로 돌아오며 생각했다. 자연의 품속에서 쉬고 싶어 하는 캠핑이 정작 자연을 훼손시키는 일은 아닌지,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고.
그때 로리가 또랑또랑하게 말했다.
"할머니, 다음엔 물속에 있는 쓰레기도 같이 주우면 좋겠어요."
나는 웃었다. 세살 아이의 작은 목소리였지만, 그 말이 오래 맴돌았다. 어쩌면 시(詩)가 해야 할 일도, 인간이 해야 할 일도 그 한마디에 다 들어 있는지도 모르겠다.
'자연은 시(詩)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가 지켜야 할 생명'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