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ght Train to Lisbon
푸른 사각의 시간들이 벽을 덮고 있다
금이 간 틈 사이로
백 년 전의 비명이 스며들고
이끼 낀 골목마다
누군가 흘리고 간 고독이
푸른 무늬로 피어난다
깨진 조각을 맞추는 일은
기억의 파편을 줍는 일
우리는 저마다의 흉터를 가린 채
빛나는 벽면이 되기를
꿈꾸는
외로운 타일들이다
그곳의 골목은 거대한 푸른 전시장이었다. 건물의 외벽을 장식한 아줄레주 타일들, 화려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제각기 다른 균열을 품고 있다. 바닷바람에 깎이고 세월에 마모된 그 틈새가 오히려 푸른색을 더욱 깊게 만들었나 보다. 푸른빛, 하늘, 바람, 조화로운 것은 아름답지만, 균열이 있는 것은 왠지 눈물겹다.
도시의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보다 이름 없는 이들이 남긴 삶의 흔적에서 더 진하게 배어 나온다. 젖은 보도블록 위로 비치는 불빛이 타일의 표면에 닿아 부서질 때, 여행자는 깨닫는다. 도시란 건물의 집합이 아니라, 그곳을 거쳐 간 무수한 이들의 숨결이 켜켜이 쌓인 시간의 층이라는 사실을.
이방인의 발길이 닿는 곳마다 낡은 종소리가 울린다.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이 지점에서, 삶은 다시 한번 정교한 타일 한 장으로 구워진다. 부서지기 쉬우나 결코 사라지지 않는, 저 푸른 기억의 문양처럼.
생각날 때마다 짐을 쌌고 바람을 쐬듯 머물렀던 서른몇 개의 나라, 백몇 개의 도시를 걸었다. 한 도시에서 몇 개월을 산 적도 있었고 한번 갔던 나라와 도시를 다음 해에 다시 간 적도 많았다.
지나 온 시절의 나는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용기를 잃었지만, 길은 늘 한 걸음 더 내밀라고 속삭였다. 오래전 묵은 여권의 스탬프들, 얇은 수첩 한 귀퉁이에 적힌 문장들, 기억의 틈 사이에 붙은 먼지 같은 순간들까지 문득 되살아나 내 안의 시간을 흔들어 깨웠다.
이 글은 잊힌 듯 흩어져 있던 여정의 조각들을 다시 주워 모으는 과정에서 시작되었다. 바다에서 들려온 파도소리, 산등성이 위에서 맞았던 새벽빛, 골목 끝 작은 카페에서 들었던 알 수 없는 음악들. 풍경은 지나갔지만 감정은 남았고, 그 감정은 오랜 시간 침잠해 있다가 마침내 시와 문장으로 길을 찾았다.
여행은 어느 순간 ‘밖으로 나아가는 일’이라기보다 ‘안으로 되돌아오는 일’이 되었다. 수많은 길이 그 사실을 조금씩 깨우쳐 주었다. 이제 그 여정의 흔적을 차분히 담아보려 한다. 누군가의 마음에도 잠시 머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도록.
https://youtu.be/v0bUrV4EoUo?si=Kb9u0lECye8_YZAD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오리지널 스코어입니다. 낯선 생의 문장을 찾아 떠나는 여행자의 심동(心動)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집니다. 다음주 여정은 포르투갈의 리스본부터 시작합니다.